• 오피니언
  • 여론광장

[수필 톡] 할머니의 젖의 유언

남상선 수필가, 대전가정법원 조정위원

김의화 기자

김의화 기자

  • 승인 2019-03-08 00:00
가난한 할머니 한 분이 농촌에서 농사를 지으며 살고 있었다. 중년에 미망인이 된 할머니는 홀몸의 억순이로 온갖 고생을 다해서 7남매를 대학까지 보냈는데 등골이 휘다 못해 부러질 뻔하였다.

할머니는 못 배운 한 때문에 당신은 무학의 목불식정(目不識丁)이면서도 자식들은 모두 다 훌륭하게 가르쳤다.

백수(白壽)(99세)의 나이가 되어 거동을 제대로 못하고 잡숫는 것이 시원치 않으니 기력은 날로 쇠약해져 가고 있었다. 소화가 잘 안 되어 마을에 있는 약국에서 약을 사다 드신 지가 벌써 3개월이나 지났다. 약국에서 약만 사 드시면 며칠 안에 낫겠지 했던 것이 열흘이 지나고 한 달이 지나 벌써 3개월이나 된 것이었다. 날짜는 많이 지났는데도 몸이 좋아질 기미는 보이질 않았다. 하찮게 생각했던 속 더부룩한 것이 날이 갈수록 상태가 점점 안 좋아지자 살림나서 사는 자식들한테 연락하여 병원 검진을 받았다. 검진 결과는 위암 말기였다.



연세가 많아 수술은 못하고 읍내 병원 중에서는 좀 괜찮다는 병원을 물색하여 입원 시켜 드렸다. 아들 딸 며느리들이 교대로 매일 같이 2개월 정도 병간호를 해드리다 가 그 생활이 하도 어려워 노인 요양 병원으로 모시게 되었다. 할머니가 병원에서 입원해 계실 때 매일같이 보시던 가족들의 얼굴이 요양병원으로 오신 뒤에는 뜸해졌다. 생활들이 바빠서인지 처음에는 주말에 한 번 정도 볼 수 있었던 자식들의 얼굴을 지금은 이삼 주 아니면 한 달 되어서도 한 번 볼 둥 말 둥이었다.

할머니는 답답한 공간에 매일 보는 것이 노인 환자들뿐이었으니 가족이 그립고 집 생각만 골똘히 나는 것이었다. 할머니는 날이 새면 병상 침대에 앉아 눈물만 흘리다가 병실 간병인에게 부탁하여 휠체어를 밀게 하여 복도로 나가곤 했다. 복도 베란다 창을 열고 고향 하늘 쪽만 바라보면서 한숨에 눈물을 흘리는 것이 일과가 돼 버렸다.

할머니는 요양병원 생활 1년이 가까워오자 그 생활이 진저리가 날 정도였다. 허술하고 좋지도 않은 당신이 살았던 농촌 집이었건만 그래도 그 집이 그리웠다. 흙냄새 나는 벽에 곰팡이까지 슬은 당신이 살던 방이었지만 그 공간이 그렇게도 그리울 수가 없었다. 할머니는 내심 당신이 살던 농촌 집에 가기로 마음을 굳혔다.

어느 날 주말에 자식들이 왔을 때 단단히 맘먹고 죽어도 집에 가서 죽겠다며 집에 데려다 달라고 떼를 썼다. 하도 완강하게 떼를 쓰는 할머니 고집이라 자식들은 할머니를 이길 수 없었다. 그로부터 일주일 후에 할머니는 퇴원하여 집으로 가시게 됐다.

촌집은 여러 날 비워서 표가 날 정도였다. 여러 날 쓰지 않은 방은 곰팡내에 퀴퀴한 냄새까지 덤으로 흠뻑 배어 있었다. 그래도 할머니는 그 방이 일류호텔보다 낫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마도 당신이 평생 기거하시며 고운 정 미운 정 다 든 방이라서 그랬을 것이다.

할머니는 당신께서 그렇게 그리워했던 고향 집에 와서인지 한 달 정도는 마음 편하게 생활하셨다. 물론 할머니 옆에는 돌봐주는 요양보호사의 손길이 떠나질 않았다.

앞산의 뻐꾸기 울음소리가 유난히도 청승맞게 들리던 그날에 뜰 안의 영산홍도 무슨 연유에서인지 유달리 아름답게 피어 있었다.

그날따라 할머니의 병세는 최악으로 치닫고 있었다. 편안한 마음으로, 호텔보다 낫다는 생각으로 사시는 할머니의 집이었건만 그래도 거기가 병원 병실이 아닌 것을 알아보는 것 같았다. 상황이 심각해짐을 느꼈는지 간병하는 요양보호사가 할머니 자식들에게 급히 연락을 했다. 7남매의 아들 딸 며느리들이 허겁지겁 발걸음을 재촉하여 다들 모여들었다.

통증으로 시달리는 할머니의 앙상한 뼈에 창백한 얼굴은 보는 이의 마음을 애잔하게만 했다. 통보를 받고 모여든 7남매 아들 딸 며느리들은 할머니의 임종 시간이 가까워졌음을 모두들 실감하는 눈치였다.

할머니는 막내딸이 생신 선물로 사다준 재킷을 하루도 빼놓지 않고 그것만 입고 계셨다.

할머니는 당신이 숨 쉴 시간이 얼마 남아 있지 않음을 아시는지 안간 힘을 다하여 눈꺼풀 풀린 희미한 눈으로 자식들 얼굴을 멀건이 바라보시는 것이었다. 당신의 젖을 빨고 자란 얼굴들 하나하나를 놓치고 싶어 하지 않는 그런 눈빛이었다. 희멀건 그 눈동자 안에 당신의 자식들 얼굴을 모두 다 담아가시려는 듯 했다. 무언가를 말씀하시려는데 그 말소리가 그륵그륵 가래 끓는 가쁜 숨소리에 떠밀려 나오질 못하는 것이었다.

할머니는 세상에서 가장 힘없는 손으로 당신께서 입고 있는 풀어 젖혀진 재킷자락을 끌어내리고 계셨다. 드디어 뼈에 가죽만 붙은, 가슴이라고도 할 수 없는 할머니의 젖가슴이 드러났다.

7남매가 빨고 자란 할머니의 탐스럽고 위대한 젖이었건만 지금은 볼품없는 앙상한 뼈 위에 가죽만 붙어 있는 할머니의 젖이었다.

할머니는 안간힘을 다하여 7남매 앞에 노출되어 있는 할머니의 젖가슴에 힘없는 손을 꺼질 듯 갖다 대는 순간 할머니는 마지막 숨을 몰아쉬는 것이었다. 숨을 재촉하는 자리에서 할머니는 젖가슴에 손을 얹고 무엇인가를 말씀하시려 했다. 안간 힘을 썼지만 말소리는 들리질 않았다. 그 소리가 들리질 않았지만 7남매는 할머니가 젖으로 보여준 소리 없는 그 모두를 다 알아차린 눈빛들이었다.

글을 모르는 할머니는 자식들이 빨고 자란 젖을 보이며 한 말씀 하시려 했는데 안타깝기 그지없는 노릇이었다. 하지만 할머니는 어떤 임금님도 위대한 철학자도 하지 못했던 가르침을, 자식들이 빨고 자란 당신의 젖으로, 보여 주고 가셨다. 글을 모르고 배운 적도 없는 정철의 훈민가로 유언을 남긴 채 멀고 먼 길을 재촉해 가셨다.

훈민가(정철) - 형아 아우야

형아 아우야 네 살을 만져보아라.(형아 아우야 네 살을 만져보아라.)

뉘손에 태어났관대 모양조차 같을손가. (누구한테서 태어났기에 모양조차 같으냐?)

한 젖 먹고 길러 나서 딴 마음을 먹지마라. (어머니 한 젖 먹고 자라나서 어찌 딴 생각을 할 수 있겠냐?)

할머니의 젖의 유언!

7남매들이여 할머니께서 주신 유언의 가르침 잊지 말고, 화목과 우애하는 삶으로써 보은해야 하지 않겠는가!

※목불식정(目不識丁) : 아주 간단한 글자 '丁(고무래정)' 자를 보고도 그것이 '고무래' 인 줄을 알지 못한 다는 뜻으로, 까막눈을 이르는 말. - 낫 놓고 ㄱ 자도 모른다.-

남상선 수필가, 대전가정법원 조정위원

남상선210-수정

중도일보(www.joongdo.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 금지

기자의 다른 기사 모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