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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중겸]내가 아직도 꿈꾸고 있는 세상에 대하여

[논단]김중겸 전 충남지방경찰청장

김중겸 전 충남지방경찰청장

김중겸 전 충남지방경찰청장

  • 승인 2012-10-18 14:23

신문게재 2012-10-19 20면

▲ 김중겸 전 충남지방경찰청장
▲ 김중겸 전 충남지방경찰청장
수평선까지 이어져 있는 바다. 방파제에서 해 떨어지는 수면을 바라본다. 하늘이 빨갛게 변하면 바닷물도 닮는다. 이윽고 외삼촌 출현. 나란히 앉아 황금빛 꿈 그려나간다. 하모니카 꺼내 부는 외삼촌. 콩쿠르에서 상 탄 솜씨 뽐낸다. 가수되려는 꿈이 울려 퍼졌다. 집안에서 질색. 결국 시청 공무원 되고 말았다. 만나면 단골화제가 그 가수 꿈.

중학교 들어가자 야구했다. 투수였다. 내 친구 포수 현겸 폼에 매료돼서다. 눈 나빠져 탈퇴. 웬걸, 외삼촌 영향 받았나. 밴드부 들어갔다. 튜바 불었다. 반년 하다가 도중하차. 도서관 반원 됐다. 이상주의자 주혁 형 만났다. 평생친구 영옥이 만났다. 탐색과 방황. 뭘 꾸준하게 하지 못했다. 꿈 많았기 때문이다. 그때까지 딱 한 가지는 다부지게 대처했다.

초등학교 4학년 2학기 초에 서울로 전학했다. 왜 그리 춥던지. 콧물 질질 흘렸다. 손등이 얼어 터졌다. 장항바닥선 잘 나갔던 몸. 졸지에 촌놈 됐다. 시시때때로 그 소리 들었다. 내가 생각해도 촌놈인 게 맞았다. 서울 애들은 피부는 하얗지. 말씨는 나긋나긋하지. 나야 “했시유” 달고 산다. 어디 근처에라도 가겠는가. 그래도 듣기 싫었다. 충돌이 잦았다. 그런데 웬일이냐. 담임이 적군이라니. 오십 넘긴 여선생께서는 시골출신을 혐오하나. 나만 나무랐다. 벌도 서고. 우군은 없지. 자구책이 필요했다. 적군 대장을 공격키로 작정.

왕초는 덩치도 컸다. 주변엔 쫄랑거리는 왈패 서넛. 조개탄 난로 위 남의 도시락을 몇 개씩 뺏어 먹곤 했다. 학용품도 뺏고. 누가 이를 말리랴. 방관자들. 선생도 모른 체 했다. 한판 붙자 했다. 교실이 발칵 뒤집혔다. 뭘 믿고 저러나. 저게 죽으려고 환장했지. 그런 반응이었다. 걱정이 아니었다. 체념이었다. 늘 괴롭힘 당하는 재균이. 그 녀석만 말렸다. 장소는 교사 뒤 조개탄 야적장. 내가 먼저 갔다. 손바닥에 쏘옥 들어가는 단단한 탄 한 개를 쥐었다. 그쪽에서는 패거리가 왕초 모시고 나타났다. 내 쪽은 단 한 명. 재균이다. 좀 있자 급우들이 주뼛주뼛 머리 내밀었다. 두 주먹 올리고 마주 섰다. 서울의 꿈 실현하느냐 마느냐의 갈림길. 개전하자마자 그 조개탄으로 코를 갈겼다. 일격에 피 쏟아졌다. 승리.

내 인생 최초이자 최후의 폭력행위였다. 다들 시원하다는 분위기였다. 나는 쌈질만으로는 만족하지 못했다. 공부를 죽어라 했다. 2등으로 올라섰다. 비로소 제대로 인정받는 느낌이었다.

6학년 때는 담임선생님을 잘 만났다. 방과 후에도 지도해 주셨다. 훌륭하다 생각했다. 한때 초등학교 교사를 꿈꾸었다. 그분 덕분에 대학까지 가능했다. 스승이 꾼 꿈이 실현은 된 걸까. 아들 녀석 중학생 때 담임이 공교롭게도 고교 선배 연수 형이었다. 복장불량으로 걸린 얘기 들었단다. 아버지가 그때 바람 좀 들었었지. 크게 엇길 간 건 아니고. 불량배도 아니고.

유행 탔었어. 학생모 뒤 터서 삐딱하게 썼고. 맘보바지도 애용. 중고 군홧줄 매지 않은 채 질질 끌고 다녔다. 가방은 옆구리 끼고. 교칙위반. 그냥 그렇게 하고 다녔다.

깡패에게 당하기도 했다. 새 책 값 받아 헌 책 사서 남기려다 헌책방 으슥한 골목에서 다 털렸다. 이후 그런 짓 하지 않았다. 내 행동의 대가가 뭔지 알게 됐다. 인과응보 말이다. 담배 피우는 녀석 따라 해본다. 야, 이거, 무슨 맛야, 난 안한다 물리쳤다. 중국집 고량주 맛도 본다. 그러나 서로 선 더 넘으려 하지 않았다. 그런 친구들의 그런 한때감각이었다.

그러다 하필 고3 대학입시 앞둔 때. 태원이와 구하와 공산주의를 연구했다. 모두 잘 사는 사회라면 좋은 사회다. 혁명가가 되자. 역시 꿈. 경찰관 되고 세무서원 되고 공장사장 되고.

대학 가자 자본주의에 대해 품고 있던 의문이 분출했다. 영헌 형이 가는 독서클럽에 따라갔다. 자본론을 읽고 있었다. 일본어와 독일어로 된 헌 책이었다. 어디서 구했는지. 경제적 박탈은 정치적 분개를 양성한다고 믿었다. 궁핍은 적개심과 통한다던 영헌 형은 은행원 됐다. 그 시절 그 꿈들은 그렇게 흘러갔다. 그리고 그 꿈들은 자주 되돌아온다.

후생에게 그런 꿈들 있었다고 전한다. 인생길 손잡고 얼굴 맞댔던 동행에게서도 그런 꿈들의 존재를 논한다. 아직도 꿈꾸고 있는 세상은 서로 부축하는 세상. 함께 잘사는 세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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