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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화살롱]이것은 파이프가 아니다?

[백영주의 명화살롱] 마그리트 '이미지의 배반'

백영주 갤러리 ‘봄’관장

백영주 갤러리 ‘봄’관장

  • 승인 2015-05-20 15:03
▲ 마그리트 '이미지의 배반', 1961
▲ 마그리트 '이미지의 배반', 1961


몇 년 전 학교에서 돌아온 아이가 책에 나온 미술작품이 나왔다며 가방에서 교과서를 꺼내보인 적이 있다. 교과서에 실린 글은 윤세진의 <파이프가 아닌 파이프>였다. 작품명보다는 ‘이것은 파이프가 아니다’라는 글귀로 더 유명한 마그리트의 <이미지의 배반>을 통해 언어와 지시 대상의 관계에 대해 생각해 보게 하는 글이다.

그림은 정말 간단하다. 파이프를 그려놓고, 밑에는 프랑스어로 ‘Ceci n'est pas une pipe.(이것은 파이프가 아니다)’가 쓰여 있다. 파이프를 그려놓고 파이프가 아니라고 한다면 중학생이 아닌 성인이더라도 처음엔 그 의미를 이해하기 힘들 것이다.


하나의 파이프 그림… 그 밑에 쓰여진 '이것은 파이프가 아니다'
초현실주의 화가 마그리트, 20세기 독특한 예술영역 개척해내
익숙한 오브제 통해 우리가 믿어왔던 상식, 철학 등 뒤흔들어



감상자들은 당연히 혼란에 빠질 것이다. 초현실주의 화가 마그리트는 이처럼 익숙한 오브제에서 사람들에게 당황을 불러일으킨다. 이와 비슷하게 <꿈의 열쇠>에서는 달걀, 여성용 구두, 중절모, 불을 붙인 양초, 유리컵, 망치를 그려놓고 밑에는 순서대로 아카시아, 달, 눈(雪), 천장, 폭풍, 사막이라 썼다.

<이미지의 배반>은 이 작품보다 1년 앞서 만들어졌는데, 두 작품은 모두 ‘언어의 사회성’, 좀 더 자세하게 짚자면 ‘부정확성’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우리가 어떤 사물에 이름을 붙이는 것은 일종의 약속이다. 예를 들어 ‘쥐’에서는 실제 ‘쥐’의 생김새나 성질을 유추할 수가 없다. 다만 ‘쥐’라 부르자고 그 언어를 사용하는 이들이 약속해서 쓰는 것이다. 영어권에서는 ‘mouse’, 스페인어로는 ‘rata’가 모두 ‘쥐’라는 하나의 뜻을 갖고 있지만 그 발음과 형태는 다른 것과 같다.

▲ 마그리트 '꿈의 열쇠', 1962
▲ 마그리트 '꿈의 열쇠', 1962

1년 앞서 그린 '꿈의 열쇠'… 6개의 그림과 6개의 해설단어
계란-아카시아, 검은 구두-달… 일치하지 않는 제목과 내용
부정확한 세상의 진실 드러내는 장치가 회화라고 말하는 듯



이처럼 실제 ‘파이프’와 단어로서의 ‘파이프’도 성질에 있어 연관성을 찾을 수가 없다. 그러나 우리는 이를 당연히 여겨 왔다. 마그리트는 바로 이 일상을 깨면서 미술작품으로 기존 언어 질서부터 흔든다. 이에 감상자는 사물을 가리키는 언어와 사물 사이에 대해 의문을 갖게 된다. 당연하게 여기던 것들을 향한 의문을 남긴 것.

그렇다면 왜 마그리트는 기존 질서에 맞섰을까? 그는 언어의 부정확성을 회화의 본질에 빗대려 했을지도 모른다. 언어와 사물의 관계가 임의적이고 부정확한 것은 제목과 내용이 일치하지 않는 그의 예술세계 같을 것이다. 바로 그런 부정확한 세상의 진실을 드러내는 장치가 회화일 수 있다고 그림으로 말하고 있는 게 아닐까.

아이들 문제집이나 교과서를 가끔 들여다보다 비문학 쪽에서 <이미지의 배반>같이 미술을 주제로 한 글이 나오면 괜히 반갑곤 했다. 그림을 가지고 언어의 사회성을 논하는 것이 전혀 다른 주제로 빠지는 것 같지만, 결국에는 그림에 수렴되는 이야기다.

백영주 갤러리 ‘봄’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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