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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충식의 지역프리즘] 김영란법, 좋지만 싫은 이유

최충식 논설실장

최충식 논설실장

  • 승인 2016-06-29 13:45

신문게재 2016-06-30 22면

▲최충식 논설실장
▲최충식 논설실장
브렉시트(Brexit, Britain Exit. 영국의 유럽연합 탈퇴)를 보며 '아기돼지 삼형제' 생각을 한다. 늑대에는 강했던 막내 돼지의 벽돌집이 지진이 나면 지푸라기나 나뭇가지 건축 공법보다 안전하지 않다는 염려도 섞어 본다. 이야기 탄생지인 영국의 지역성에도 생각이 미친다. 안철수·천정배 국민의당 공동대표를 물러나게 한 리베이트 의혹과 새누리당과 더불어민주당의 친인척 보좌진 채용 의혹에서는 '양치기 소년과 늑대'를 읽고 간다. 거짓말만 부각되고 양치기 소년의 외로움은 묵살당하지 않았는지 또 의심한다.

다양한 각도에서 이해하려 애쓴다. 국민총생산의 2%가 될까한 농업이 다뤄질 때면 '시골 쥐와 도시 쥐'를 반추한다. 김영란법(부정청탁 및 금품 등의 수수 금지법)으로 연간 8000억~9000억원의 농수축산 선물용 매출이 감소한다고 하니 소갈비 선물 누가 받느냐며 소가 웃을 일이라는 도시 쥐 같은 처신이 얄밉다. 시골 쥐는 다시 행복할 자격이 있다. 농민도 행복해야 한다.

그리고 농민도 자기 입장이란 것이 있다. 어젯밤 재방송 '라디오스타'에서 가수 테이가 들려준 얘기다. 송아지 때 250만원에 사서 1년 키운 엄마소가 자유무역협정(FTA) 여파로 도로 250만원이 되더라는 것. 약이 잔뜩 올라 FTA 시위 행렬에 자진 가담했다. 입장이 바뀌면 이처럼 줄거리가 바뀐다. 언론인과 배우자를 김영란법에서 특정한 것보다 이상한 줄거리가 있다. 이해관계의 한가운데인 국회의원, 자치단체장, 지방의원 등 선출직, 그뿐 아니라 부패가 공직을 닮은 금융권, 병의원, 시민단체가 쏙 빠진 것이다. 안이한 법 인식은 더 이상하다. 3만(음식)-5만(선물)-10만원(경조사) 규정 중 음식비는 비싼 것 먹고 더치페이로 비켜간다고 속 편케 말하는 공무원도 봤다.

김영란법이란 15만원짜리 도자기 화분 하나 선물할 것을 5만원짜리 3명에게 선물하는 변화에 불과했다. 이 변화가 크게 체감되는 사람들이 있다. 초안에 없던 선물액 신설로 변변한 사과 한 상자, 선물 세트 한 짝 선물하기도 힘들게 됐다. 농림축산식품부는 5만-10만-20만원 기준 상향 안을 내놓는다. 경제단체들, 농협, 수협, 한국화원협회, 전국한우협회도 합리적 개정을 촉구했다. 잘못 거들면 문자적 해석에 갇혀 반부패법을 흐린다고 천방지축 난리법석이다.

신생아 유전자 검사에 비유하며 몰아세우는 스토리 전개에는 숫제 참여 자체가 어렵다. 김영란 전 대법관 입장은 어떨까. 언론인 등의 적용은 “점차 확대될 부분이 일찍 확대됐을 뿐”이라며 원안 후퇴에 불만스러워 한다. 누구에게나 가까운 언덕은 크게 보인다. 송대 문인 소동파가 여산을 보고 “가로로 보면 고개요, 세로로 보면 봉우리라”고 읊었다. 산중에 몸이 있어 산의 진면목을 모르듯 언론에 몸담아 언론의 본모습을 못 본 것인가. 가끔 그런 자문을 해본다.

지역 경찰이 내건 플래카드에 (건축 관련) 사이비 기자 갈취 척결 문구를 보고도 그랬다. 가정해보자. 비리 경찰 잡자고 여기 긁어대면, 가족과 외식하는 식당 앞에 현수막으로 펄럭인다면 왜 아니 참담할까. 김영란법처럼 공직자의 범위, 아니 공직유관단체라는 공공성(?)을 취급해주는 것도 아니다. 엇나간 비유지만, 총각 와이셔츠에 묻은 립스틱은 애교지만 유부남 와이셔츠의 립스틱은 독약이지 않던가.

꿀릴 것, 오금 저릴 것 없으면서 그 플래카드가 부끄럽다. 언론도 국회의원도 헌법재판관도 경찰도 중요한 전체를 가리는 좁고 얕은 시야는 피해야 한다. 공무원, 언론인, 교사만이 아닌 '온 국민 청렴법'을 만들어도 찬성할 용의가 있지만 과잉 입법, 입법 오류는 문제가 다르다. 나쁜 관행과 습관과 문화도 고치지만 비례 원칙을 벗어나 산으로 가는 법도 고쳐야 한다. 지금까지의 견해와 다른 헌재 판결이 나온다 해서 워싱턴포스트의 칼럼 필자처럼 이 글이 실린 지면을 삼킬 생각은 물론 없다. 신문을 사랑하지만 먹지는 않는다.

최충식 논설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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