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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역사]8월24일:‘광복 1호 귀국선’ 우키시마호 진실은?

1945년 침몰사건

김은주 기자

김은주 기자

  • 승인 2016-08-23 20:00
▲ 일본 해군 수송선 우키시마호/사진=YTN캡쳐
▲ 일본 해군 수송선 우키시마호/사진=YTN캡쳐

'떠 있는 섬'(浮島)이라는 뜻의 우키시마 호에는 강제징용된 한국인 노동자 8000여 명(일본 외무성 기록문서 ‘함정조난표류관계잡건’의 ‘우키시마 호 인양요청서’ 기록)이 타고 있었다. 그들은 귀국에 대한 꿈을 싣고 배에 올랐다. 나라를 빼앗아간 원수의 나라에서 이제 더 이상 외로이 떠 있는 섬처럼 살지 않아도 된다는 희망은, 귀향자들로 가득 찬 비좁은 공간이었지만 그 어는 곳보다도 편했으리라.

그러나 ‘귀국 1호선’이었던 우키시마 호는 71년 전 ‘오늘(24일)’ 그들이 그리도 그리워했던 고국 땅을 밟아보지도 못하고 깊은 바닷속으로 가라앉았다.

당시 일본 정부는 사고의 원인을 미군 기뢰에 의한 폭발로 지목하고 한국인 희생자가 524명이라고 밝혔다. 그러나 그들의 말을 그대로 믿기에는 석연찮은 부분이 있었다.

▲  일본 해군 수송선 우키시마호/사진=YTN캡쳐
▲ 일본 해군 수송선 우키시마호/사진=YTN캡쳐

아오모리(靑森) 현 군사시설에서 강제노동했던 조선인 노동자와 가족을 태우고 부산을 향해 귀국길에 오른 우키시마 호는 일본 열도의 연안을 따라 내려갔다. 부산으로 가기 위해서는 동해를 횡단하는 것이 가장 빠른 항로임에도 기뢰가 부설돼 항해가 조심스러운 연안을 따라 항해했다는 것은 이해할 수 없는 대목이었다.

심지어는 항해 도중 갑작스럽게 방향을 돌려 일본 중부 연안의 교토부 마이즈루항으로 입항하던 중 폭발을 일으켜 배가 침몰했다. 기뢰가 도처에 깔려있는 곳을 안내선도 없이 들어갔다는 것은 자살행위나 다름이 없는 일이었다.

상부의 지시로 배를 돌려 마이즈루항으로 들어가다가 기뢰에 의해 배가 파손됐다는 일본의 주장과 달리, 한국인 생환자와 유족들은 일본의 고의 폭발사고로 보며 오랜 시간 진실규명을 요구해 왔다.

지난 8일 우키시마 호 폭침 한국인희생자 추모협의회는 우키시마 호에 폭발물이 실려있었다는 정황이 기록된 일본 방위성 내부 문건을 발견하기도 했다. 이는 일본의 고의 폭침을 뒷받침할 수 있는 중요한 부분이기도 하다.

고의 폭침에 대한 이유는 여기저기서 감지됐다. 갑작스런운 패전에 잔재 폭발물 처리가 급했으며, 부산에 도착한 우키시마 호의 귀항이 보장되지 않는다는 점, 일본 승무원이 25명밖에 사망하지 않았다는 것도 이해할 수 없는 대목이었다.

수천의 사람들이 수장됐지만 가라앉아 있는 진실은 아직도 인양되지 못하고 있다. 깊은 바다로 잠겨가며 조국의 산하를 눈에 담았을 슬픈 영혼들의 한은 언제나 풀릴 수 있을지. 아직도 그치지 못한 그들의 눈물이 바다를 적시고 있다./김은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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