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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역사]11월25일:조선왕조 마지막 황세손 이구... 고국의 땅 밟다

1996년 국내 영주위해 귀국

김은주 기자

김은주 기자

  • 승인 2016-11-24 21:30
▲ 젊은시절 이구/사진=sbs 캡쳐
▲ 젊은시절 이구/사진=sbs 캡쳐

평생을 남의 땅에서 떠돌다가 외로이 생을 마친 이구는 죽고 나서야 비로소 고국의 땅에서 깊은 잠을 이룰 수 있었다. 조선의 마지막 혈족들이 기울어가는 나라를 닮은 곤한 삶을 살았던 것처럼 이구 또한 별반 다르지 않았다.

이구의 부친 이은(영친왕)은 1907년 황태자로 책봉되자 볼모로 일본에 끌려가 왕족 나시모토의 맏딸 이방자(마사코)와 정략결혼을 했다. 이방자가 이은의 배필이 된 것은 그녀가 아기를 낳지 못한다는 이유 때문이었다. 조선 왕실의 핏줄을 끊기 위한 속셈이었다.

일본의 간교한 계략과 달리 이은과 이방자는 첫 아들을 얻었지만, 1년을 넘기지 못하고 떠나보내야 했다. 그 후 10년 만인 1931년 두 번째 아들을 낳았고, 그가 ‘이구’였다.

‘망국’의 황세손으로 적의 땅에서 숨죽이며 살던 이구는 고등학교 때 조국의 ‘광복’을 맞이하게 됐다. 이제 눈치 보며 살아야하는 일본 생활을 접고 ‘내 나라’로 돌아갈 날만을 손꼽아 기다렸지만, 돌아온 대답은 ‘돌아오지 말라’는 답변이었다.

당시 이승만 정권은 영친왕이 귀국하면 임금으로 다시 복위시키자는 여론이 일어날 것을 두려워했기 때문에 귀국을 막고 나섰던 것이다.

▲ 1996년 11월 25일 낮 영구귀국한 ‘마지막 황세손’ 이구씨가 귀국후 곧바로 종묘에서 자신의 모국정착 사실을 선왕들에게 알리고 있다./ 사진=동아일보 1996년 11월26일자 캡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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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96년 11월 25일 낮 영구귀국한 ‘마지막 황세손’ 이구씨가 귀국후 곧바로 종묘에서 자신의 모국정착 사실을 선왕들에게 알리고 있다./ 사진=동아일보 1996년 11월26일자 캡처

꿈에 그리던 조국 땅을 밟아보지도 못하고 이구는 또다시 남의 나라로 떠났다. 맥아더 사령부의 배려로 1953년 미국 유학길에 올라 MIT 건축과에 입학했고 8세 연상의 우크라이나계 미국인 줄리아 멀록을 만나 결혼했다.

그리고 1963년 이구는 ‘조선’이라는 나라가 아닌 ‘대한민국’으로 돌아왔다. 서울대와 연대 등에 출강하면서 아이들을 가르쳤고 신한항업주식회사를 세워 야심찬 삶을 꿈꿨지만, 얼마지나지 않아 부도가 난 후 일본으로 도망치 듯 떠났다. 부인 줄리아와의 결혼생활에도 시련을 맞아 이혼을 하게 됐고, 이후 일본에서 무당 아리타 키누코와 재혼해 살았지만 사기혐의로 피소되는 등 시련은 끊임없었다.

1996년 11월 25일 파란만장한 타국 생활을 마치고 이구는 고향에 뼈를 묻기 위해 영구 귀국했다.

“다시는 조국 떠나지 않겠다”며 종묘에서 선왕들에게 고유제를 지내며 다짐하기도 했다. 전주이씨대동종약원에서도 그의 품위유지를 위해 재혼을 추진하는 등 애쓰기도 했지만, 또 다시 사업실패로 일본으로 돌아갔다.

집세도 못내는 궁핍한 삶에 도쿄 시내 호텔 등을 전전하다가 2005년 7월16일 아카사카 프린스 호텔에서 숨을 거뒀다. 아카사카 프린스 호텔은 자신이 태어난 자리였다. 죽음마저 기구했다./

김은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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