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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도시평]이성남 선생님, 평생 소년의 길

이승선 충남대 언론정보학과 교수

이승선 충남대 언론정보학과 교수

  • 승인 2017-04-18 16:36

신문게재 2017-04-19 22면

▲ 이승선 충남대 언론정보학과 교수
▲ 이승선 충남대 언론정보학과 교수
소년은 커서 선생이 됐다.

대학 본고사를 치르던 시절, 최고 난이도의 본고사 문제도 선생의 손에 쥐어지면 술술 풀렸다. 선생은 수학 담당이었다. 선생의 글씨는 정자로 정갈했다. 선생께서 칠판에 일필휘지 써 내려간 수학풀이 글씨들의 정렬은 사관학교 생도의 열병식보다 더 정교한 질서였다.

선생의 말에는 군더더기가 없었다. 꽉 다물고 있던 입과 형형한 눈빛이 전체적으로 무표정한 선생의 얼굴을 살아 넘치게 만들었다. 가끔, 선생은 문학작품을 소개했다.

미소를 지으며 “파스테르나크의 닥터 지바고를 읽어봐”라고 나직이 말하던 때는 영락없이 소년이었다.

초등학교를 졸업한 소년은 나무꾼이 됐다. 지게를 지고 산에 올랐다. 나뭇짐 위로 소에게 먹일 꼴이 얹혀 있었다. 지게에 동여 맨 나무단과 풀 짐 사이에 소년이 읽던 책이 꽂혀 있었다.

소년은 그 때 목동이었다. 그가 베어 온 풀을 먹고 자라나는 한 마리 황소는 소년에게 온 우주였다. 소년이 후에 근엄하게 수학 문제를 풀다가 뜬금없이 알퐁소 도테의 별 이야기를 한 것은 다 근원이 있었다.

소년은 선생이 되는 꿈을 세웠다. 그냥 선생이 아니라 어떠어떠한 선생이 되겠다는 포부를 새벽 산 이슬에 담그고 강의 낮 바람에 두드려 야무지게 벼렸다.

거푸 시험을 치러 기차가 쉬었다가 가는 도회 외곽의 고등학교에 진학했다. 학생대표가 됐다. 명문이 아닌 그의 고등학교 학생 몇몇이 같은 기차로 도심의 명문고를 통학하던 패거리들에게 수시로 주먹다짐을 당했다.

소년은 기차에 올랐다. 소년이 기차에서 내린 뒤, 그의 동료들은 더 이상 손찌검을 당하지 않았다. 소년은 기차의 전설이 됐다.

소년은 대학을 졸업하고 사립학교 수학 선생이 됐다. 공부하는 선생이 많은 학교였다. 그른 것을 옳다고 말하지 않고 바른 것을 비틀어졌다고 가르치지 않은 선생들이 여러 분이었다.

바른 것은 바르고, 그른 것은 그를 수밖에 없는 수학문제의 명쾌한 이치를 선생은 학생들에게 풀이해주었다. 그 때까지 학생들은 선생이 수학의 정석만 가르치는 줄 알았다.

쿠데타로 권력을 찬탈한 군인들이 시민들에게 잔혹하게 폭압 세례를 퍼붓던 시절의 어느 날, 선생은 역 광장에 운집한 시민들에게 바르지 않으면 풀리지 않는 바른 길을 이야기했다. 직필정론의 수학문제 풀이하듯 말하였다.

군인들에게 잡혀갔고 투옥됐다. 석방된 뒤 학교에 돌아온 선생은 학생들이 아무리 물어도 붙잡혀 조사받고 감옥살이하던 이야기를 꺼내지 않았다. 소리 소문 없이 사람들이 사라지던 어둡던 때라 사람의 말들도 자세를 낮춰 은밀히 포복했다.

선생은 다만, 다른 장소에서 잡혀가 옥살이를 하고 온 제자의 등을 수업 시간에 말없이 두드려줬다.

‘웃음으로 눈물을 덮고 눈물로 세상의 웃음을 창조하던’ 그 제자는 단지 스무 해를 더 살고 서른일곱에 세상을 떠났다. 제자는 딸을 두었다.

선생이 지부 회장을 맡아주는 것을 조건으로, 학교 선생들 전부가 노동조합에 가입했다. 전국 최초의, 유일한 일일 듯했다.

학생 제자들은 물론 선생에 대한 동료 교사들의 신망은 매우 두텁고 강고했다. 선생은 강직했다. 정년을 여러 해 남겨 둔 선생은 돌연 사표를 썼다.

학교가 자꾸, 교감이 되어달라 요청했다. 소먹이고 나뭇짐 꾸리던 소년 시절에 벼린 평생 평교사의 꿈을 포기할 수 없었다. 선생은 교감이 되는 대신 사표를 내고 학교를 떠났다.

소년의 다른 꿈이 또 있었다. 동료들과 학교는 그 때까지 생소한 명예퇴직 제도를 ‘억지’로 만들어 선생에게 처음 적용했다. 선생은 엉겁결에 명예퇴직을 했다.

이미 학교 선생자리에서 물러난 선생은 다시 동네 선생이 됐다. 수강료 때문에 학원을 가지 못한 아이들에게 무료로 수학을 가르쳤다. 한 강산이 변한다는 10년 간이었다.

이젠 그 일도 그만 접게 됐다. 학원사업자들이 영업 손실을 이유로 관청에다가 민원을 제기했다. 더 이상 선생에게 수학을 배우지 못하게 되었을 때 아이들은 소매로 눈물을 훔쳤고 선생은 크게 울었다.

소년이 이슬과 바람에 벼렸던 어떠어떠한 선생의 꿈은 예순 여덟에 동네 선생을 그만둘 때까지 훼손되지 않았다.

길게 드리운 선생의 그림자는 여전히 거대하다. 선생은 선생보다 더 강인하고 속이 너른 김경숙과 오십년 세월을 건너왔다.

지그재그로 걷지 않는 선생의 바른 걸음새 유전자를 두 아들과 딸이 이어 받았다. 그들도 선생이 됐다. 한 나라의 경제수석이 한갓 ‘안 선생’으로 불렸다는 선생 오명의 불온한 시대에, 오롯이 거룩한 선생의 이름을 감히 적는다.

이성남 선생님, 일흔 일곱 평생 소년 그의 이름이다.

이승선 충남대 언론정보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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