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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리즘] 왜곡과 굴절, 역사는 진보하는가?

김종선 대전과기대 교수

김종선 대전과기대 교수

  • 승인 2017-08-15 10:14

신문게재 2017-08-16 23면

▲ 김종선 대전과기대 교수
▲ 김종선 대전과기대 교수
동양 역사의 사(史)라는 한자의 어원은 객관성을 상징하는 중(中)과 기록을 상징하는 수(手)의 합성어로서 “객관적으로 공명정대하게 기록하는 행위” 자체를 의미한다. 즉, 어떤 일·사실을 기록하는 사관(史官)의 의미로, 연구자의 자의적 해석을 금기시하고 원전을 충실히 인용함을 중시하여, 자신의 견해는 사론·찬(贊)·안(案)·평(評)이라는 제목 하에 역사의 기록과 구분하여 기록했다.

상대적으로 서양의 히스토리(history)는 저자의 주관적인 서술이 중심을 이루는 학문으로 종래의 사학과는 그 방법이 크게 다르지 않다. 오늘날에는 역사학과 사학은 같은 개념으로 사용되고 있어 일반적으로 역사라고 할 경우, 과거 및 현재의 인간이 지적·예술적·사회적 활동을 한 산물의 총체 및 부분을 역사라고 한다.

역사는 인간과 문화, 사회의 속성을 정확히 이해하기 위한 현대적 효용성이 있기 때문에 국가와 문화의 정체성을 정립하기 위해서 배워야 한다는 중요한 의미가 있다. 과거 개인의 옳고 그름을 구분해 주는 기록으로도 이해되었기에 역사의 기록을 정확히 남기는 시기에 군주는 이를 기록하는 사관을 가장 두려운 존재로 인식하기도 하였다. 이는 자신에 대한 후대의 평가가 역사 기록에 의존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기록은 왜곡되고 굴절되기 쉽다. 시대적 흐름과 여론에 따라 역사를 기술하는 이에게도 영향을 끼치게 마련이다. 보편적인 생각이나 말 따위가 어떤 것에 영향을 받아 본래의 모습과 달라지는 경우를 굴절이라 하고, 사실과 다르게 해석되거나 그릇되게 본래의 의도대로 이뤄지지 않는 경우를 왜곡이라 한다. 물체만이 아니라 사람들의 관계에서도 이런 현상이 종종 발생하고 특히나 본인의 개성처럼 생각해 다른 사람의 생각을 받아들이는 습관은 불편한 관계로 남게 될 수 있다.

비록 본인은 악의나 나쁜 감정의 결과물이 아니더라도 상대방을 힘들게 한다는 사실을 깨닫지 못하면 원만한 관계형성이 어려워진다. 좋은 관계란 결국 굴절이나 왜곡이 많이 정제된 상태를 유지할 때만이 가능하다고 할 수 있다.

'역사란 무엇인가'의 저자 에드워드 카(E.H.Carr)는 '역사는 시대와 상황의 산물이므로, 역사적 사실을 그 시대와 상황에 비춰 평가하고 판단해 재구성된 의미있는 사실'이라고 설명했고, 조선상고사(朝鮮上古史)에서 단재(丹齋) 신채호 선생은 '국가의 역사는 민족의 소장성쇠(消長盛衰)의 상태를 가려서 기록한 것으로, 민족을 버리면 역사가 없을 것이며, 역사를 버리면 민족의 그 국가에 대한 관념이 크지 않을 것이니, 역사가의 책임이 그 또한 무거운 것이다'라고 역사 인식의 중요성을 언급하고 있다.

매년 8월 15일은 우리나라의 광복(光復)을 기념해 국경일로 여러 행사가 개최되고 있다. 최근 국내·외적으로 역사적 사건을 배경으로 한 여러 영화들이 개봉되어 세간의 이목을 집중시키고 있다. 필요한 역사적 사실을 취합해 재구성한 인과관계 과정에서 과거를 그대로 보존하는 것이 아니라, 시대적 상황에 맞추어 미래에 그 가치기반을 두고 있다.

최근 문재인 정부가 4차 혁명에 부합한 융복합 인재상을 위한 교육과정에 한국사의 중요성을 언급한 것도 그 해답일 것이다. '역사는 진보하는가'라는 물음에 답하고자 한다면, 먼저 '역사가 진보하는 목적지가 있는가'를 생각해봐야 한다. 진보한다고 하는 것은 나아가고자 하는 목표가 있고, 목표가 정해져 있다면 나아가는 방향이 올바른지를 알 수 있을 것이다.

궁극적으로 역사의 진보를 믿고 싶은 이유는 인간의 이성이 지속적으로 발전하고 있다는 것을 믿는 신념이 내재되어있는 것은 아닌가 한다.

김종선 대전과기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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