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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도칼럼] 사법 신뢰, 어떻게 회복할 것인가?

손종학 충남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방원기 기자

방원기 기자

  • 승인 2018-06-20 08:56
손종학 01086489915
손종학 충남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사법부가 사법행정권의 남용 여부로 분쟁의 소용돌이에 빠져 있다. 사회적 분쟁을 법적으로 해결하는 기관에서 분쟁이 발생하고, 더하여 우리 시민들이 이말 저말로, 이 생각, 저 생각으로 사법부를 판단 아니 심판하게 되었으니, 모순도 이런 형용 모순이 없을 것이고, 비극도 그런 참 비극이 없을 것이다.

주지하다시피 대한민국은 민주주의 국가이고, 민주주의는 법치주의를 요체로 한다. 그에 따라 최고법인 헌법에서는 국가의 권력을 크게 3분하여, 집행권은 대통령을 정점으로 한 행정부에, 입법권은 국회에, 사법권은 법원과 헌법재판소에 주고는 위 삼자로 하여금 상호 견제와 균형을 통하여 권력의 남용을 방지하고 시민의 자유와 재산을 지키게 하고 있다. 그러나 사법부가 대통령이나 국회와 근본적으로 다른 점은 소위 선출된 권력이 아닌 임명된 권력으로 민주적 정당성이 부족하다는 점이다. 시민이 선출한 권력기관이 아님에도 사법부의 재판에 승복하여야 하는 모순점을 안고 있다는 말이다.

이처럼 민주적 정당성이 취약한 사법부임에도 우리로 하여금 법원의 판단결과에 따르도록 하는 권위와 근거는 어디에서 오는 것일까? 법적으로야 당연히 헌법을 위시한 제반 법령에서 재판의 정당성의 권위와 승복의 근거를 찾을 수 있지만, 그 뒤에 존재하는 진정한 권위는 어디에서 오는 것일까? 그것은 다름 아닌 법원은, 재판부만큼은 공정하게 재판할 것이라는 시민 모두의 신뢰일 것이다. 이 신뢰를 잃으면, 더 이상 재판의 권외와 승복의 정신은 발붙일 데가 없어지게 된다.



이 사회적 신뢰가 지금 대한민국의 사법 영역에서 바람 앞의 촛불처럼 흔들리고 있다. 위기다. 아니, 정말 위기다. 피선출 권력인 대통령이나 국회의원에 대한 신뢰 상실로 인한 위기와는 비교도 될 수 없을 정도로 우리 사회를 뿌리째 흔들 수 있기에 그렇다. 왜? 옳고 그름의 판단기관이기에, 선출된 권력이 아니기에 그렇고, 그래도 법원이야말로 정의 수호와 시민의 기본권 보장을 위한 최후의 보루라고 굳게 믿었기 때문일 것이다.

어떻게 하여야 할 것인가? 의견이 백가쟁명이다. 소장 판사와 고위 법관의 의견이 다르고, 법원 안쪽 의견과 법원 바깥 의견이 다르며, 진보와 보수의 그것도 다르다. 그 방법도 각양각색이다. "내부에서 해결하자." "아니다. 외부에 맡기자." "수사에 맡기자." "아니다. 징계로 처리하자." "국회의 국정조사나 특검에 맡기자." "제도적 해결책을 모색하자." 등등. 그만큼 어려운 문제라는 방증일 것이다. 다 좋다. 이러한 절차 등이 필요하다면, 그리고 사회적 의견이 모아진다면 하여야 할 것이다. 그러나 불행히도 어느 것 하나 속 시원한 해결책 같아 보이지는 않는다. 위와 같은 절차를 통과한다고 하여 지금 땅 밑으로 내려온 시민의 사법 신뢰를 회복할 수 있을 것 같지는 않다는 말이다.

위기 해결은 기본에서 출발해야 하지 않을까? 재판은 법이라는 대전제에, 확정된 사실인 소전제를 대입하여 결론을 내는 구조이다. 대전제에서는 법의 올바른 해석과 적용의 어려움이, 소전제에서는 실체적 진실 발견의 어려움이 따른다. 그렇기 때문에 진실을 찾는 사실 확정과 확정된 사실에 법을 올바르게 적용하는 것이야 말로 재판의 양대 축이라고 할 수 있다. 법원이 할 일도, 법관이 할 일도 여기에 있다. 그렇기에 사법 신뢰의 회복도 여기서부터 시작하여야 하지 않을까? 법원은 사실 확정의 정확성을 위하여 온 힘을 다하고, 법령의 정확하고도 타당한 적용을 위하여 치열하게 고민하여야 한다. 재판 절차 곳곳에, 판결서의 한 획 한 획에 녹아 있는 판사의 고뇌와 연민의 깊이를, 비록 그것이 보이지 않아도 재판 당사자는 안다. 그리고 이 재판이 살아 있는 재판인지, 아닌지를 시민은 느낄 수 있다. 살아 숨 쉬는 재판으로부터 신뢰가 싹튼다. 혹시 오늘의 사법부 위기를 선배 법조인들도 예상하고 있었을까? 우리가 취할 위기의 해결책을 미리 말해 놓았다. 초대 대법원장 가인 김병로는 취임 인사에서 사법에 몸을 두는 사람은 자기 몸을 갖는 데 있어서 어떠한 사람도 의심하지 않는 확신성을 가져야 된다고 하면서 자가 수양을 강조하는 한편, "온 국민으로 하여금 부족한 감을 주지 않도록 반드시 거기서 심신한 연구와 단련이 있지 않으면 안 될 것입니다."라고 하여, 법을 올바르게 해석함으로써 국민의 신뢰감을 잃지 않으려면 법에 대한 깊은 연구와 단련을 게을리 하여서는 안 된다고 역설하였다. 어디 그뿐이랴. 우리 지역인 대전고등법원에서 재직 중 불의의 사고로 너무도 일찍이 세상을 달리하신 한기택 판사는 "내가 뭐가 되겠다는 생각을 버리는 순간 남들이 나를 죽었다고 보건 말건, 진정한 판사로서의 나의 삶이 시작될 것으로 믿습니다. 내가 목숨 걸고 악착같이 붙들어야 할 것은 '그 무엇'이 아니라, 법정에 있고, 기록에 있는 다른 그 무엇이라 생각합니다."라고 고백하였다.

결국 늦더라도 사법부의 신뢰회복은 재판의 기본으로 돌아가는 데서부터 시작하여야 한다. 끊임없는 연구와 치열한 심리만이, 진실을 찾기 위하여 목숨까지 거는 마음가짐으로 하는 재판만이 이 위기를 해결할 구원자이다. 법복을 처음 입던 그 날의 그 마음이 한없이 소중한 때이다. 손종학 충남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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