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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안게임 3전 전승… ‘베트남의 히딩크’ 박항서는 누구?

서혜영 기자

서혜영 기자

  • 승인 2018-08-21 10:35
  • 수정 2018-08-21 10:39
박박
19일 오후(현지시간) 인도네시아 자와바랏주 브카시 치카랑의 위봐와 묵티 스타디움에서 열린 2018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게임 남자축구 조별리그 D조 베트남과 일본의 경기에서 1대0으로 승리한 베트남 박항서 감독이 경기가 끝난 후 선수들과 인사하고 있다./연합뉴스
그야말로 '박항서 매직'이다. 2018 자카르타-팔렘방에서 열리고 있는 아시안게임 남자축구에서 베트남 축구대표팀이 일본을 꺾고 조 1위로 16강에 진출하자 베트남이 열광하고 있다. 베트남이 U-23 경기나 A매치에서 일본을 꺾은 것은 이번이 처음으로, 예선전 3전 전승을 이뤄내며 아시안게임 남자축구의 다크호스로 떠올랐다.

베트남의 놀라운 성적 뒤에는 박항서 감독이 있다. 박항서 감독은 지난해 베트남의 대표팀 감독으로 선임된 후, 올해 초 아시아축구연맹 U-23 챔피언십에서 준우승 신화를 이루며 베트남 축구 역사를 다시 쓰고 있다.

박항서 감독은 국내에서도 축구팬들에게 친숙한 존재다. 1981년 제일은행 축구단에 입단하며 데뷔한 박항서 감독은 군 복무 이후 1984년부터 1988년까지 럭키금성 황소에서 뛰며 7년 간의 선수생활을 거쳤다. 길지 않았던 선수생활로 이때 까지는 그리 눈에 띄지 않는 선수였다.



그의 진가가 발휘되기 시작한 것은 코치 시절부터다. 1988년 선수를 은퇴한 직후에 LG 치타스와 수원 삼성 블루윙즈로 옮겨 코치 생활을 겪었다. 이후 2000년 국가대표팀 수석코치로 발탁되었고, 12월 한·일 정기전에는 임시 감독을 맡기도 했다.

이후 허정무 감독의 후임으로 거스 히딩크 감독이 선임되자, 감독과 선수들의 가교 역할을 하며 선수단의 융화를 일궈내는 등 2002년 FIFA 월드컵 4강을 이룩하는데 큰 공헌을 하였다.

특히 2002년 한일월드컵 폴란드전에서 황선홍이 첫 골을 넣고 나서 달려가 당시 코치였던 박항서 감독의 품에 안기며 국민들에게 인상깊게 남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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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항서의 베트남 축구 대표팀에 SNS 응원글 쇄도 [페이스북 캡처]/연합뉴스
하지만 시련도 있었다. 박항서 감독은 '히딩크호'에서의 활약을 바탕으로 2002년 부산 아시안게임에서 생애 첫 감독직을 맡았지만, 박지성, 이천수, 이운재, 이영표 등 최정예 월드컵 멤버들로 동메달을 땄다는 이유로 해임됐다.

그후 포항 스틸러스에서는 코치를, 전남 드래곤즈에서는 기술고문을 거쳐 2005년 경남 FC의 초대 감독으로 취임해 2007 시즌 K리그에서 별볼일 없었던 경남을 4위까지 끌어올리는 성과를 거두기도 했다. 하지만 구단 프런트와의 갈등으로 감독직에서 물러나게 된다.

이후 2010년까지는 전남 드래곤즈 감독으로, 2012년부터 2015년까지는 상주 상무 감독을 거치다가 지난해 9월 베트남의 제의를 받아 성인 대표팀과 U-23 대표팀을 겸임하게 됐다.

베트남 감독을 맡은 박항서 감독은 선수들과의 소통을 위해 노력했다. 베트남 선수들의 약점으로 끊임없이 제기되던 선수들의 체력 향상을 위해 체력 강화훈련을 병행하고, 일찍 일어나 활동하는 베트남 문화 특성에 맞게 훈련스케줄을 계획했다. 또한 쌀국수 위주의 식단에서 우유와 단백질 위주의 식단으로 바꾸기도 했다.

베트남 '박항서호'는 조 1위를 확정지으며 23일 바레인과 16강전을 치르게 된다. 한국의 부진으로 아쉽게도 한국과의 16강전은 무산된 상태지만, 한국과 베트남이 계속 승리를 거둘 경우 한번은 한국과 맞붙을 수도 있다. 베트남의 국민 영웅으로 떠오른 박항서 감독의 매직이 언제까지 이어질지 기대해 보자.

서혜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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