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피니언
  • 중도시평

[중도시평] 영상보도 가이드라인, 한국의 영상기자들이 이정표를 세우다

이승선 (충남대 언론정보학과 교수)

고미선 기자

고미선 기자

  • 승인 2018-12-11 12:35

신문게재 2018-12-12 22면

이승선교수
이승선 충남대 언론정보학과 교수
최근 국내외 현장을 취재하던 방송 카메라 기자들이 목숨을 잃을 뻔했다. 이글거린 뙤약볕 속에 하루 종일 뻗치기를 하던 기자가 졸도했다. 그는 교대 인력 없이 혼자 현장을 지키다가 변을 당했다. 다른 한국 언론사 기자들이 적절한 응급처치를 해 준 덕분에 생명을 건졌다. 외국의 기자들은 혀를 내둘렀다. 일본의 방송사만 하더라도 3명의 카메라 기자가 3교대로 현장에 대기했다. 다른 위험지역에 특파되었던 다른 카메라 기자도 열악한 취재지원 시스템이 겹치면서 자신의 목숨이 더 위험해진 상황에 빠졌다.

재난이나 테러, 전쟁 등 위험 지역에 특파된 한국 방송 카메라 기자들의 고충을 세세히 들으면 온몸에 소름이 돋는다. 우리가 따사한 방안에서 게으른 자세로 편히 받아보는 현장 영상은 그들의 목숨이 담보된 것이다. 마음이 불편하다. 한편으론, 위험한 지역에 기자들을 특파하면서 기자들의 안전에 무감각한 언론사 경영진과 간부들, 한국 언론의 쓸모없이 아주 낡은 취재보도 관행에 화가 난다. 김장용 고무장갑으로 날아오는 총알을 막을 수 있다고 생각하는, 파괴된 원자력 발전소에서 뿜어져 나오는 방대한 방사능을 공사장용 빨간 목장갑 한 켤레로 차단할 수 있다고 믿는 언론사 간부들이 아직도 많다. 그들은 취재원의 인권은커녕, 취재하는 기자들의 인권을 보호하는데도 무척 취약하다.



현장의 카메라 기자들에게도 개선할 것들이 많다. 속보경쟁에 떠밀리면서 가려야 할 취재원의 초상을 가리지 않고 함부로 촬영하거나 어려운 대안 대신 손쉬운 몰래카메라 방식을 선호한다는 비판을 받는다. 알고도 범하는 그릇된 취재행위가 있는가 하면 알지 못하여 저지르는 위법한 촬영도 있다. 법을 알고 인권에 먼저 눈 뜬 시민들의 따가운 시선을 마냥 피하기도 어렵다. 무엇보다 인권의 보루가 되겠다며 언론인이 된 카메라 기자들의 자존심이 야금야금 상처를 입었다. 그래서 방송 카메라 기자들이 팔을 걷고 나섰다. 방송카메라기자협회를 한국 영상기자협회로 이름부터 바꿨다. 취재보도 현장에서 영상기자들이 참고할 수 있는 '영상보도 가이드라인'을 만드는 작업이 시작되었다.

여름 초입에 시작된 일이 첫눈이 펑펑 쏟아진 뒤에도 계속되었다. KBS 윤성구 기자, MBC 나준영 부장, SBS 조춘동 차장이 참여했다. 계명대 최우정, 중앙대 정준희 교수, 언론중재위원회 양재규 변호사도 필진이었다. 필자도 자잘한 심부름을 조금 거들었다. 가이드라인을 만들기 위한 연구모임은 주로 낮 근무를 끝내고 저녁 7시에 열렸다. 공휴일에도 머리를 맞댄 회의가 열렸고 토요일 낮에도 만났다. 지역에 사는 필진들은 막차를 타기 위해 서울역까지 헐레벌떡 뛰었다. 양재규 변호사는 두 시간 동안 자전거를 타고 한강을 건너와서 그 자전거로 다시 한강을 넘어갔다. 영상기자협회 한원상 회장의 불굴의 투지와 결단력, 희생이 없었다면 이 모든 작업은 한 걸음도 내딛지 못했을 것이다. 그는 발행된 책에다가 그 흔한 발간사 한마디 쓰지 않으며 자신을 낮추었다.

실무 현장에 쓰임이 되는 실질적인 가이드라인을 만들기 위해 전문가들을 초청한 토론회도 열렸다. 국가인권위원회, 민주언론시민연합, 경찰청, 방송통신심의위원회에서 일하는 전문가들이 참여해 정교한 의견을 제시했다. 한국의 방송사들이 만든 방송제작 가이드라인, 일본의 NHK, 영국 BBC의 제작가이드라인, 뉴욕타임스의 가이드라인을 참고했다. 한국의 언론기관단체들이 만든 강령과 취재보도 준칙의 내용도 반영했다. 군사작전과 자살, 재난을 취재 보도하는 기준, 양성평등 실현을 위한 기자들의 다짐도 녹여보려고 노력했다. 드디어 며칠 전 한국 영상기자협회는 <영상보도 가이드라인>을 펴냈다. 취재보도 현장에서 언론인들이 직면할 법한 100여 개의 질문에 대한 답이 책에 촘촘하게 담겼다. 비매품이다. 프라이버시와 초상권에 관심이 있는 일반인들에게도 도움이 될 듯하다. 부실한 언론사의 취재지원에 목숨을 위협받는 한국의 영상기자들이 세계적으로 견주어 당당히 어깨를 펼만한 언론사의 빛나는 이정표를 세웠다. 이를 계기로 목숨을 걸어야만 취재 현장을 지킬 수 있는 고질적인 문제가 해소되길 간절히 기대한다. 더불어 겁 없이 현장을 지켜 온 이 땅의 기자들에게 뜨거운 감사를 전한다.

/이승선 (충남대 언론정보학과 교수)

중도일보(www.joongdo.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 금지

기자의 다른 기사 모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