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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난순의 필톡]'SKY 캐슬'과 입신양명

우난순 기자

우난순 기자

  • 승인 2019-01-16 16:17

신문게재 2019-01-17 2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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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ky'는 우리말로 '하늘'이다. 윤동주는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 없기를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나는 괴로워했다'고 고백했다. 시인은 '하늘'을 우러러보며 식민지 조국 앞에서 괴로워했다. 'SKY'는 서울대, 고려대, 연세대의 영문 이니셜로 한국 최고 명문대학의 대명사다. 'sky'가 'SKY'로 변주되는 이 놀라운 시점! 드라마 'SKY 캐슬'이 장안의 화제다. 보통 사람은 감히 넘볼 수 없는, 하늘처럼 높은 성 안에서 부와 지위를 물려주려는 갑들의 욕망이 요동치는 곳. 부모들에게 자식의 성공만큼 중요한 건 없다. 갑은 갑대로, 을은 을대로 똑같은 마음이다. 이 드라마를 보는 서민들은 도무지 믿기지 않는다. 자신들의 삶과는 너무 다르기 때문이다. 어느 신문에서 드라마 작가는 현실은 이보다 더하다는 걸 취재과정에서 봤다고 밝혔다. 도대체 명문대가 뭐길래.

한국에서의 대학 졸업장은 바코드인 셈이다. 출신 대학은 그 사람을 판단하는 근거가 된다. 레벨을 가르는 기준이 된다는 얘기다. 인사철 법무부 명단을 떠올려 보자. 판·검사들의 프로필은 입이 딱 벌어질 지경이다. 한국의 내로라하는 대학 출신이 도배를 한다. 80%가 서울대, 그리고 고대·연대…. 정부 고위직은 물론이고 정·재계, 문화계 등 어느 조직이든 대학 졸업장은 꼬리표처럼 따라 다닌다. "나 이대 나온 여자야?" 영화 '타짜'의 명대사로 등극한 이 한마디는 우리 사회가 얼마나 명문대에 목을 매는지 보여준다. '입신양명'은 조선시대부터 한국 사회를 관통하는 상징어다. 과거 급제가 가문의 체통을 세워주는 거라면 지금은 명문대 합격으로 바뀌었을 뿐이다. 자식이 서울대를 나와 출세가도를 달리는 걸 어느 부모가 마다할까. '학벌주의'라는 지독한 이데올로기에 매몰되는 건 당연한 건지도 모른다.



실력보다 학벌이 우선인 나라. 지성보다 학력으로 보장받는 사회. 노무현 대통령은 상고를 졸업하고 사시에 합격한 수재였다. 그럼 뭐하나. 대통령 재직 당시 보수 언론과 기득권층은 걸핏하면 깔보고 깎아내리기에 혈안이 됐었다. 감히 '그들만의 리그'를 침범한 노무현이 눈엣가시였던 것이다. 2008년 미국 금융대란 때 실물경제를 정확하게 예측한 인터넷경제논객 '미네르바'는 전문대 출신이었다. 어느 경제학자보다 정확한 전망 앞에서 주류 언론과 경제 관료, 학계는 허를 찔린 셈이다. 자존심에 상처를 입은 그들은 '전문대'를 들먹이며 일고의 가치도 없다고 미네르바의 입에 재갈을 물렸다. 신정아씨도 그의 학력이 가짜라고 밝혀지기 전엔 미술계의 '신데렐라'였다. 사건 전후 그녀는 달라진 게 없었다. 단지 예일대 박사학위증이 없어졌을 뿐이다. 거짓말이 들통나지 않았다면 신정아씨는 실력을 인정받으며 승승장구했을 것이다. '진짜 실력'이란 뭘까.

'SKY 캐슬'이 점입가경이다. 혜나의 죽음으로 고상함을 떨던 캐슬 내 인간들이 본성을 드러내며 전전긍긍하고 있다. 한꺼풀 벗긴 상위 1%의 허상이 적나라하게 까발려지는 꼴이 재밌어진다. 지난해 가을 후배와 이와 비슷한 얘기를 나눴다. 부유한 부모 밑에서 비싼 사교육으로 명문대 나온 애들이 앞으로 사회지도층 역할을 제대로 할 수 있을까가 요지였다. 과연 그들이 판사가 되면 올바른 판결을 내릴 수 있을까. 의사로서의 인술을 베풀 수는 있을까. 정치지도자로서의 자질은? 물론 전문지식이야 뛰어나겠지만 인성도 갖출 지는 의문이다. 원하는 건 다 가질 수 있는 부류 아닌가. 그런 그들에게서 사회적 약자에 대한 공감 능력을 찾을 수 있겠는가 말이다. 박스 줍는 노인이 보일 리 없고, 심석희·신유용 성폭행 사건에 분노할 리가 없다. 어쩌면 그들은 부모의 욕망이 투사된 희생양이지 않을까. 그렇지만 사람은 보고 배운 대로 산다. 현실의 'SKY 캐슬'은 강철처럼 견고하다.<미디어부 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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