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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국에서] '무례한 관심은 집어치워!'

박새롬 기자

박새롬 기자

  • 승인 2020-03-18 12:08
  • 수정 2020-06-30 11:32

신문게재 2020-03-19 22면

아파트 주차장을 지나가는데 휠체어를 탄 여성이 보였다. 운전석 쪽 차 문을 열어 둔 그는 물건을 꺼내려는 듯 분주했다. 처음 보는 사람이지만 마음에 걸렸다. 혹시 지금 도움이 필요한 상황은 아닐까. 도움이 필요한지 묻지 않으면 차가운 사람으로 보이지 않을까 고민에 빠졌다.

잠시 망설이다 도움이 필요한지 물었다. 그는 웃으며 괜찮다고 대답했다. 호의를 거절당했다는 생각에 머쓱했지만, 그래도 친절한 사람으로 보였을 거라며 스스로 격려했다.

몇 년이 지난 그 일을 떠올린 건 그래픽 노블 『자유로운 휠체어(한울림스페셜, 2020)』를 읽고 나서다.



자유로운휠체어
 한울림스페셜 제공
『자유로운 휠체어』에는 사고로 한쪽 다리를 절단한 토니오와 그의 비장애인 친구가 등장한다. 토니오는 괴팍하고 냉소적으로 보이는 사람이다. 공원에서 농구하는 학생들에게 시비를 걸고, 느닷없이 사라져 버리기 일쑤여서 이웃에 사는 친구를 당황하게 한다.

친구는 그런 토니오가 걱정된다. 남은 다리도 잘라야 하는 그의 마음을 상상하니 곁에 있어 주고 싶다. 밤에 혼자 비를 맞고 있는 토니오를 발견하자 다가가 우산을 씌워주고, 바람을 쐬게 해주고 싶어 먼 길을 가야 할 때 차에 태우고 간다. 혹시 길을 잃거나 위험한 곳에 떨어질 까봐 꼼짝 말고 제자리에 있으라고 당부한다.

그러나 토니오는 친구에게 재수 없다며 화를 낸다. 얄팍한 동정 따윈 필요 없으며, 휠체어를 밀면서 하는 네 설교는 지긋지긋하다, 착한 사람 노릇하면 기분이 좋냐고 따진다.

책을 덮고 난 며칠 후 영화 '언터처블:1% 우정'이 머릿속에 떠올랐다. 사고로 전신불구가 된 백만장자 필립과 그를 24시간 돌보는 자리에 채용된 드리스의 우정을 주제로 한 작품이다.

극 과 극 생활환경으로 어울리지 않던 두 사람이 가까워진 건 드리스의 무심함 덕분이었다. 장애인을 배려해야 한다는 의식 없이 눈치 보지 않고 농담을 던지는 드리스는, 필립에게 자신이 장애인임을 잊을 수 있는 힘이 됐다. 두 사람은 남들이 전신마비 장애인에게 위험하다고 생각하는 일을 아무렇지 않게 했다. 필립은 자신의 몸을 가둔 사고의 원인이었던 패러글라이딩도 다시 즐길 수 있게 된다.

『자유로운 휠체어』 표지 위 '무례한 관심은 집어치워!'라는 부제가 그제야 눈에 들어왔다. 주차장에서 친절한 사람이 되고 싶었던 비장애인은 무례했다. 호의라고 생각했던 감정은 장애인을 도움이 필요한 존재로만 보는 오만이었다. 영화 속 필립은 무례한 관심이 없는 관계 덕분에 행복해졌다. 휠체어를 탄 사람에게 필요한 건 마음껏 혼자 있어도 위험하지 않은 무장애 환경이다. 호의는 무장애 환경이 부족함을 알고, 늘리는데 먼저 써야 할 마음이다.
박새롬 기자 onoin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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