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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나 때는 말이야

김흥수 기자

김흥수 기자

  • 승인 2020-11-23 09:22

신문게재 2020-11-20 1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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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승조 충남도지사
2020년 한국 사회에서 가장 널리 사용된 유행어 중 하나는 '라떼는 말이야'일 것이다. 에스프레소에 우유를 곁들인 커피를 뜻하는 이탈리어인 '라떼'가 우리 말 '나 때'로 변했다. 발음의 유사성을 포착해 만든 이 문장은 특유의 운율과 리듬감 때문에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학교와 회사, 모임과 회식 등에서 전 세대가 따라 하면서 올 한 해 종전의 히트를 기록했다.

그러나 이 말이 단순히 그 표현상의 재미 때문에 널리 사랑받은 것은 아닐 것이다. 지나간 시절, 소위 말해 왕년을 그리워하며 사사건건 간섭하고 가르치려 드는 '꼰대 문화'에 대한 비판이 큰 공감대를 형성했기 때문일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 때는 말이야'가 간절히 필요한 분야도 있다. 비록 꼰대 소리를 들을망정 우리 모두의 생존을 위해, 또 후손의 미래를 위해 듣기 싫은 소리를 감내해야만 하는 상황도 있는 것이다. 그것은 바로 기후변화 문제이다. 맑은 하늘과 깨끗한 공기, 푸른 바다와 밤하늘의 별빛들을 되찾아 오기 위해 온실가스가 없던 그때 그 시절 얘기를 하고 싶어서 서두가 길어졌다.



나는 1959년에 태어났다. 천안 광덕면 광덕리에서 나고 자랐다. '나 때'는 사계절을 모두 자연과 함께 보냈다. 봄에는 들에 나가 소꼴을 베고 여름에는 논에서 피사리를 했다. 가을에는 볏짚 위에서 참새 떼와 놀았고, 겨울에는 언 강에서 종일토록 썰매를 탔다. 낮에는 들판을 뒹굴었고 밤에는 별빛과 함께 잠들었다. 그때는 우리 모두가 그랬다.

그로부터 50여 년이 지난 지금, 그 시절 이야기는 추억 속 '나 때는 말이야'가 돼버렸다. 이제 우리의 아이들은 마스크 없이 학교에 가지 못한다. 학부모들은 아침마다 미세먼지 농도를 확인하고, 놀이터에는 뛰어 노는 아이들도 잘 보이지 않는다. 미세먼지 창문필터와 핸드워시는 히트상품이 됐고, 공기청정기는 필수품이 되고 있다.

올 여름 대한민국에는 50일 이상 폭우가 지속되었고, 태풍도 연이어 네 차례나 지나갔다. 미국에서는 동시다발적으로 초대형 산불이 났고, 9월 콜로라도에서는 갑자기 기온이 영하 2도로 떨어지며 폭설이 오기도 했다. 이 모든 것이 다 뜨거워진 지구의 탓이다. 일부 학자들은 코로나19 바이러스 역시 기후변화가 불러온 대유행 현상이라고 진단한다.

산업혁명을 지나 개발의 시대를 거쳐 마천루의 신화를 쌓아 올린 인류 문명의 발전과 화려한 경제성장의 이면에는 바로 화석연료의 무분별한 사용이 자리하고 있다. 편의와 풍요를 얻기 위해 자연과 환경의 희생을 치른 대가는 결코 작지 않다. 산업화 이전 시대보다 지구의 평균 기온은 1.5도 이상 상승했고, 이 기후온난화가 인류의 생존마저 위협하고 있는 것이다. 이대로 가다가는 아이들의 미래는 불투명할 것이다. 더 늦기 전에 그때로 되돌리기 위한 노력을 서둘러야만 한다.

충남도가 전국 최초로 '기후비상상황'을 선포하고 탄소 중립과 온실가스 제로를 선언한 것은 그래서다. 또 '탈석탄 컨퍼런스'를 통해 국제사회의 연대와 동참을 촉구하고, 전국 56개 기관과 '탈석탄 금고선언'을 이끄는 가운데, '노후석탄 화력 조기폐쇄'와'정의로운 에너지전환'정책을 적극적으로 펼치는 이유도 모두 이 같은 배경에 뿌리를 두고 있는 셈이다.

2020년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가장 절실한 단어는'탄소제로'일지도 모른다. 대통령께서 '2050 탄소중립선언'을 공식적으로 선언한 만큼, 이제 기후위기 대응은 범국가적 차원의 과제로 풀어나가야만 할 것이다. 더 늦기 전에 지방정부와 시민사회가 함께 연대하고, 모두가 힘과 지혜를 모아 지구의 지속가능한 미래를 그려나가야만 한다. 모든 것에는 때가 있다. '나 때는 말이야'로 되돌리고 싶은 지구의 목소리에 정녕 귀 기울여야 할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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