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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에 만들어진 폐터널, 역사 현장 공간"

경부선 폐터널 3곳 중 2곳은 방치… 1곳도 별다른 활용 방안 없어
전문가들, 폐터널 역사적 관점으로 근대문화 자산…체험공간 돼야

김소희 기자

김소희 기자

  • 승인 2021-01-18 22:23
  • 수정 2021-01-22 09:28

신문게재 2021-01-19 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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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전 동구에 위치한 증약터널 입구 암각글씨. 사진=이희준 대전대 건축학과 객원교수 제공
"일제강점기에 우리나라가 어떠한 탄압을 겪었는지, 현장에서 배울 수 있는 곳이 바로 대전에 있는 폐터널입니다."

대전 곳곳에 여러 폐터널을 역사적 공간으로 활용하지 못하고 있고 아쉬움이 커지고 있다. <중도일보 1월 15일·18일자 5면 보도>

호남선 폐터널 1곳은 문화재청과 국가철도공단이 협의해 발굴 문화재 전시공간으로 사용하지만, 경부선 폐터널 3곳 중 2곳은 방치하고 있으며, 비교적 상태가 양호한 1곳도 별다른 활용 방안이 없는 상태다. 남아있는 한 곳 중 옛 구정리터널 하선(상·하선 존재)은 철도 안전 점검 신기술 체험장으로 조성 추진 중이다.



폐터널은 단순히 낡고 방치된 하나의 터널로 바라볼 순 있지만, 역사적 관점으로 근대 문화 자산 중 하나다. 옛 폐터널들은 호남선, 경부선 개통 시기에 준공했다. 때문에 철도공사 현장을 통해 일본인들이 한국인의 신앙과 문화를 말살하려 했던 흔적을 짚어볼 수 있다. 또한 6·25 한국전쟁 시절의 총탄 자국이 고스란히 남아 있어, 전쟁의 참상도 엿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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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 증약터널에는 6.25 한국전쟁의 참상도 엿볼 수 있다. 터널 곳곳에 남아 있는 총탄 자국. 사진=이희준 대전대 건축학과 객원교수 제공
대표적으로 옛 증약터널(대전 동구 세천동, 신상동 위치)을 꼽을 수 있다. 증약터널 입구 위에는 '악신경분'이라는 문구가 새겨져 있다. 산신이 놀라 도망갔다는 의미로, 당시 주한 공사였던 '하야시 곤스케'가 남긴 글귀다. 증약터널을 조성할 때 조선인 인부들은 산신을 전통 신앙으로 믿었다. 터널을 만들면 산신이 노해 인부들이 죽을 수도 있다는 믿음에 공사를 거부한 것으로 전해진다. 이를 일본인 간부가 비웃으며 강제로 노동을 지시한 것이다. 2021년 현재까지 존재하는 옛 터널 암각 글에는 일제강점기에 한국인의 신앙과 문화를 조롱한 역사가 남아 있는 셈이다.

지역에 남아 있는 소중한 역사 자산인 만큼, 폐터널을 보존해 문화 체험 현장으로 조성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이희준 대전대 건축학과 객원교수는 "일부 터널이 매몰된 상황이긴 하지만, 없어졌다고 볼 순 없다. 옛 증약터널도 입구를 제외하고 흙이 다 덮여 있는 상황이지만 역사적 의미가 충분하기에 복원할 가치가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일본이 조선의 문화와 정신을 말살했다는 건 누구나 다 아는 역사의 기록이지만 우리가 그 현장을 생생하게 체험할 수 있는 공간은 많지 않다. 이 공간이 바로 폐터널이라고 볼 수 있으며, 지자체 차원에서라도 등록문화재로 지정해 역사적 공간으로 사용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할 것"이라고 했다.

이런 역사적 가치를 인정해 문화재청도 근현대 산업시설에 대한 조사를 시작했다. 해당 산업시설에는 폐교와 폐터널 등이 포함됐다. 전국에 있는 모든 시설을 대상으로 조사한 건 아니며, 역사적 가치가 있어 조사가 필요하다고 판단된 곳으로만 진행했다. 대전에서는 옛 증약·마달령·구정리 터널이 조사대상이었다.

문화재청 관계자는 "근현대 산업시설 중 문화유산의 가치가 있는 곳들에 대한 조사를 진행했으며, 그중 폐터널도 문화·역사적 가치가 있기에, 이를 보존하기 위해 진행 했다"며 "옛 증약·마달령·구정리 터널도 조사했지만, 국가 등록문화재로 지정하기엔 아쉬운 부분이 있었다. 다만, 가치가 있는 만큼, 시·도 등록문화재 등을 통해 관리한다면 의미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김소희 기자 shk32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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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전 동구에 위치한 옛 증약터널 모습. 관리가 되지 않아 대부분의 터널이 매몰됐다. 사진=이희준 대전대 건축학과 객원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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