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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평용 전 국제라이온스협회 총재 |
충남대학교 발행 <유학연구>(2020년) 차민경 교수의 논문에는 '화(和)'자의 기원은 갑골문이 쓰여진 은대(殷代)로 추정된다고 했다. 그는 '고대에는 음식의 조화로움을 의미하는 '화'자와 음악의 조화로움을 의미하는 '화'자가 '화(和)'자와 함께 통용되다가 점차 소멸하고 '화(和)'자로 통합되었다'는 것이다.
'和'자가 들어간 단어는 나쁜 의미가 없다. 필자도 예기 중용에 나오는 다음 글이 마음에 와 닿는다.
'화라는 것은 천하에 도가 이룩된 것이다(禮記.中庸. 和也者,天下之達道也)'
또 좌전 은공 4년 기록에는 '신이 듣기로는 백성이 화합하면 난을 듣지 못했다(左傳.隱公四年 '臣聞以德和民,不聞以亂)'고 하여 화가 정치의 요체임을 기록하고 있다.
조선은 중기에 이르러 당쟁으로 조정이 '화'를 잃은 나머지 난을 불러왔다. 조정에는 화합이 사라지고 분당하여 서로 음모하고 상대편을 죽여 없애려는 모의에만 집착했다.
임진왜란은 역사상 가장 참담했던 비극적인 전쟁이다. 당시 조선은 왜국이 침략할지도 모른다는 우려를 했음에도 임금부터 애써 부정하면서 일본의 침략을 막지 못했다. 당쟁으로 인한 갈등은 나라의 장래나 백성들의 고통은 생각하지 않았다.
이조정랑이라는 인사를 다루는 직책 하나로 야기된 당쟁이 나라의 운명을 좌우할지 모르는 국난을 불러올 줄은 아무도 몰랐다. 상대 당 인물이 벼슬길에 오르면 끌어내리려고 무조건 폄하하고 유생들을 시켜 무차별 상소를 하여 임명권자인 왕의 시야를 흐리게 했다.
일본군의 칼날이 시골 백성들을 난도질 할 때도 조정에 웅크리고 있던 신하들은 음모로 일관하여 바다에서 왜적을 소탕하는 충신 이순신 장군마저 후환이 두려워 역적으로 모함하지 않았는가.
그런데도 임금에게 올바른 소리로 직간하여 나라의 불화를 바로 잡을 간관들은 제대로 이를 바로잡지 못했다. 편당에 집착하고 상대편을 매도해 없애려는 일에 동원되고 말았다.
당시 당파에는 초연한 입장인 영의정 백사 이항복은 어느 날 아침 조정에 도착하여 중신들에게 농 섞인 말을 한다.
'아침에 출근하다보니 중과 환관이 싸우고 있는데 환관은 중의 머리채를 잡고 중은 환관의 아랫도리를 잡고 싸우더라'
중신들은 박장대소했으나 사소한 일로 싸우는 조정을 빗댄 뼈아픈 농담이었던 것이다.
공자의 가르침에 '화이불류(和而不流)'라는 글이 있다. 제자 자로(子路)가 공자에게 '강(强)함이란 무엇입니까?' 라고 질문했다. 그때 공자는 ‘화이불류 중립이불의(和而不流 中立而不倚)’라고 대답했다. ‘주변 사람들과 다투거나 싸우는 일이 없이 화합을 이루며 중용을 지키는 것이 진정 강하다’는 뜻이다.
언론인은 시대의 지성으로 사회적 존경의 대상이다. 원로 언론인은 현직에서 물러났지만 오랜 경륜을 쌓아 온 만큼 후배들의 모범이 되어야 하며 때로는 지역 언론 발전을 뒷받침해야 한다. 후배들이 올바른 언론 의식을 갖고 일 할 수 있도록 격려하고 때로는 의욕을 북돋워 줘야 한다.
원로 언론인들이 상대를 폄하하고 때로는 비하하는 발언은 후배들에게도 부끄러운 모습이다. 또 지역 언론계의 화합을 저해하는 요소가 될 수 있다. 특히 봉사단체인 언론인들 모임에서 갈등과 불화를 조장하는 것은 더욱 원로답지 못하다. 봉사단체를 이끄는 자리를 놓고 편이 갈려 상대를 모함하고 불화를 조장한다면 이는 원로답지 못한 자세다. '화(和)란 천하의 도로서 화합하는 곳에서는 난(亂)이 없다'는 고사를 음미했으면 한다.
2026 병오년은 '붉은 말의 해'라고 한다. 붉은 말은 열정, 용기, 생명력을 상징한다고 한다. 우리 지역 현직 언론인들과 일선에서 물러난 선배 언론인들도 모두 말의 기운을 안고 언론 발전과 지역사회 발전의 견인차로서 소임을 다해 주길 소망한다.
한평용(전 국제라이온스협회 총재·명예경영학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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