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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경소리] 대만의 선거제도

강병호 배재대 교수

조훈희 기자

조훈희 기자

  • 승인 2026-01-12 14:52
강병호 배재대 미디어콘텐츠학과 교수 풍경소리
강병호 배재대 교수
대만의 선거·투표 제도를 들여다보면, 그것은 편의가 아니라 주권을 지키기 위한 처절한 선택에 가깝다. 대만은 1996년 첫 직선제 총통 선거 이후 지금까지 단 한 번도 일반 유권자를 대상으로 한 사전투표 제도를 도입하지 않았고, 우편투표나 전자투표 역시 허용하지 않았다. 1996년부터 2024년까지 치러진 여덟 차례의 총통 직선제 선거는 모두 예외 없이 '단일 투표일·현장 직접 투표' 원칙으로 운영됐다. 이는 기술적 미비가 아니라, 의도적이고 전략적인 선택이다.

대만의 선거는 하루에 끝난다. 지정된 시간 동안 투표가 진행되고, 종료와 동시에 각 투표소에서 수작업 개표가 이뤄진다. 개표 과정은 공개되며, 정당 참관인과 시민들이 이를 직접 지켜본다. 중앙 서버는 결과를 집계하는 보조 수단일 뿐, 핵심 판단 장치가 아니다. 이 방식은 분명 느리고 불편하다. 그러나 대만은 그 불편함을 기꺼이 감수한다. 선거는 편의의 문제가 아니라 국가 존립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이처럼 불편한 선택의 배경에는 '중국 공산당'이라는 실체적 위협이 존재한다. 중국은 군사적 압박뿐 아니라 정보전, 여론 공작, 정치자금 침투, 통일전선 전략을 통해 대만 사회 내부를 지속적으로 흔들어 왔다. 대만 안보 당국은 2018년 지방선거와 2020년 총통 선거 전후로 중국발 허위 정보와 조직적 여론조작 시도가 급증했다고 공식 보고한 바 있다. 이러한 환경에서 사전투표나 우편투표, 전산 의존적 개표는 '편의성 확대'가 아니라 침투 경로의 확장이 될 가능성이 크다.

그렇다고 대만의 투표율이 낮은 것도 아니다. 2016년 총통 선거 투표율은 약 66%, 2020년에는 약 74.9%에 달했고, 2024년 선거에서도 70% 안팎을 유지했다. 사전투표나 우편투표 없이도 선거 참여는 높았다. 이는 투표율 제고를 위해 사전투표 확대가 필수라는 통념이 절대적 진실은 아님을 보여준다.

이 지점에서 대한민국의 현실은 뚜렷한 대비를 이룬다. 한국은 2014년 지방선거부터 전국 단위 사전투표제를 도입했고, 이후 사전투표율은 가파르게 상승했다. 2020년 제21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사전투표율은 26.69%, 2022년 제20대 대통령 선거에서는 36.93%로 사상 최고치를 기록했다. 2024년 제22대 국회의원 선거에서도 사전투표율은 약 31%에 달했다. 이제 한국의 선거는 전체 유권자의 3명 중 1명 이상이 본투표 이전에 이미 투표를 마치는 구조가 됐다.



문제는 사전투표의 확대와 함께 사전투표와 본투표 간 득표율 차이가 반복적으로 관측되고 있다는 점이다. 여러 전국 단위 선거에서 두 투표 유형 간 특정 후보나 정당의 득표율 차이가 두 자릿수 퍼센트포인트에 근접하거나 이를 넘는 사례가 누적됐다. 이에 따라 일부에서는 통계학의 '대수의 법칙'을 근거로, 동일한 모집단에서 이런 차이가 반복되는 현상은 설명이 쉽지 않다는 문제를 제기한다.

더 심각한 문제는 이 논쟁이 2020년 이후 거의 모든 전국 선거마다 되풀이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는 개별 선거 결과의 문제가 아니라, 선거 제도 전반에 대한 신뢰가 구조적으로 흔들리고 있음을 보여주는 신호다.

대만에서는 이러한 논쟁이 거의 발생하지 않는다. 그 이유는 대만의 제도가 지나치게 단순하기 때문이다. 투표는 하루, 장소는 고정, 개표는 현장 공개. 결과는 눈으로 확인된다. 별도의 설명이 필요 없는 구조다. 반면 한국의 선거는 점점 더 많은 설명을 요구한다. 서버는 안전하다고 말해야 하고, 절차는 합법이라고 반복해서 강조해야 하며, 의혹이 제기될 때마다 방대한 해명 자료가 뒤따른다.



한국의 사전투표 제도는 법적으로 합법이다. 그러나, 민주주의에서 신뢰는 법조문이 아니라 누구나 이해할 수 있는 절차에서 형성된다. 대만은 그들은 최악의 시나리오를 상정하고 제도를 설계한다. 그래서 불편함을 선택했다.

대만 선거제도의 투박함이야말로 대만 민주주의의 방패다. 선거에서 한 번 주권이 흔들리면, 그다음은 군사력이나 외교로 되돌릴 수 없다는 사실을 그들은 알고 있다. 그래서 오늘도 불편한 제도를 유지한다. 민주주의는 편리함 위에 세워지지 않는다. 민주주의는 끊임없는 긴장과 경계 위에서만 유지된다. 한국이 지금의 사전 투표 제도를 올해 2026년 지방선거에서도 그대로 유지한다면, 선거 이후 동일한 논쟁은 반복될 것이고, 민주주의와 투표 제도, 특히 선거관리위원회에 대한 의심 또한 역시 계속될 것이다. /강병호 배재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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