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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남도정회고록] 남기고 싶은 이야기(2) 스마트한 손수익 前 충남지사

도정 방침 ‘사랑으로 봉사, 증거로 행정’
도정 슬로건 ‘전통을 빛내는 충남’
김용교 전 아산시 부시장(전 충남도정책기획관)

한성일 기자

한성일 기자

  • 승인 2026-01-13 15:38

신문게재 2026-01-14 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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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용교 전 아산시 부시장
(전 충남도정책기획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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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8~79년도 당시에 설치된 예산의 특산품 사과탑 조형물은 손수익 전 충남도지사의 지시로 설치됐다.
김용교 전 아산시 부시장(전 충남도정책기획관)의 충남도정회고록,남기고 싶은 이야기 2편’은 지난주에 이어 스마트한 손수익 전 충남지사 이야기이다.



(4) 농막(農幕) 설치 등 농심(農心)을 위로하다



부여군수의 예산(안)보고 때 손 지사는 경지정리사업을 하였거나 경지정리사업 예정지역에 일정 면적을 확보하여 정자(亭子) 형태의 농막을 비교적 크게, 미적(美的) 감각도 살려 콘크리트로 설치하도록 지시하였다.

지금도 충남 관내를 지나다 보면 경지정리지구 이곳 저곳에 정자(亭子) 형태의 농막이 눈에 띄게 되는데 그때 설치해 놓은 것이다.

모내기 때의 경우, 소농(小農)이든 대농(大農)이든 아낙들이 농민들의 점심을 광주리에 가득 담아 머리에 이고 논으로 오면 좁은 논두렁길에 쪼그리고 앉아 식사를 한 후 쉴 곳이 없다 보니 태양열이 내리쬐는 들판에서 앉아있다가 오후 작업에 들어가는 것이었다.



모내기뿐인가, 농업 기계화가 이루어지지 않았던 때라 병충해 방제, 잡초제거, 벼 수확 등 벼농사 단계마다 들판에는 점심과 새참의 장소가 없고 쉴 곳도 전혀 없었다.

조선시대 반상 제도 아래서 양반 인권을 100이라 할 때 평민은 50%, 노비는 인간으로서의 대우를 30%도 받지 못했다는 설이 있다. 그 후로도 사농공상(士農工商) 중 농민들의 인권과 복지에 대한 행정의 손길은 섬세하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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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수익 前 충남지사
손 지사는 이를 안타깝게 여겼다. 농민들에게 인간의 존엄과 가치, 사람답게 살 권리, 휴식권을 보장해 주자는 것이다.



농막이 설치되고 나니 시원한 농막에서 편안히 앉아 식사를 할 수 있게 되었고, 잠시 누워서 오수를 취하며 고단한 몸을 풀어주는 아주 긴요한 장소가 되었다. 또한 갑자기 천둥 번개와 비바람이 몰아치면 피신할 수도 있었다.

이 같은 농막의 설치는 손 지사의 도정방침인 ‘사랑으로 봉사, 증거로 행정’을 실천한 실례였다.

또한 예산군수의 예산(안)보고 때는 예산 사과는 전국적으로 알아주는 특산품이자 명품으로 가시적 홍보물 설치가 필요하다며, 큰 길가에 대략 3m 높이로 콘크리트 탑을 세운 뒤 탑 위에 예쁜 사과 모양의 조형물을 올려놓으면 오가는 사람들에게 사과의 고장 예산을 알리는데 도움 될 것이라며 사과탑 설치도 지시하였다.

지금도 예산읍 시가지를 지나다 보면 45년이 지난 지금도 사과 상징탑이 눈에 띄게 되는데 1978~79년도 당시에 설치된 조형물이다.

박찬무 청양군수는 예산(안)보고에서 청양의 국도변 산림 속에 ‘청양은 살아 움직인다’라는 홍보문구를 넣어 대형 철판으로 게시판을 설치하겠다고 제안하였는데 그것은 "해서는 안되는 일"이라며 즉석에서 철회토록 지시하였다.

"산림 속에는 나무와 숲의 자연이 있어야 할 뿐 송전선 철탑은 어쩔 수 없다고 하지만 쇠, 철, 판 등 쇠붙이가 입지해서는 안되며 임도에 시멘트 포장도 필요한 곳에 최소로 규제해야 한다"는 것이다.

산림은 솎아주고, 가지 쳐주고, 병해충 방제해 주고, 임도를 개설해주는 육림의 방향으로 가야 한다는 점을 다시 한번 강조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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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수익 전 충남지사가 초가집 등 농촌 주택 개량 사업장 현지를 시찰하고 있다.
(5) 도정 슬로건으로 ‘전통을 빛내는 충남’을 내세우다

손수익 지사는 1932년 전남 장흥에서 태어나 2022년 90세로 생을 마감하였다.

故 박정희 대통령은 헐벗은 민둥산을 푸른 숲으로 가꾸기 위해 치산녹화 10개년 계획을 수립하면서 이를 추진할 적임자이자 엘리트 관료를 물색하였다.

고심끝에 경기도 지사로 재직하고 있던 손수익 지사를 산림청장으로 임명하였는데 영전 인사는 아니었다. 손 청장은 5년 8개월간 최장수 산림청장으로 재임하면서 국토의 산림녹화사업에 매진하여 오늘날과 같이 푸르고 윤택한 산림으로 가꾸는데 혁혁한 공을 세운 주인공이기도 하다.

치산녹화 사업이 어느 정도 궤도에 오르자 1978년 9월 11일, 손 청장을 충남지사로 임명하였고, 손 지사는 취임 일성으로 '전통을 빛내는 충남'을 슬로건으로 내세웠다.

'사랑으로 봉사, 증거로 행정'을 도정 방침으로 정하고 충남도 본청, 시장, 군수, 읍, 면,동장에 이르기까지 충남도 산하 1만여 공직자들에게 이를 구현시켜 나가는데 힘을 모아 줄 것을 당부하였다.

그렇다면 손 지사는 '충남을 빛내어 이어갈 수 있는 아름다운 전통'을 무엇으로 보았을까?

그것은 충남을 충·효·예의 고장,충절의 고장,양반·선비의 고장이라는 전통이 이어져 오고 있다는 점을 내세웠다고 본다. 이를 부연 설명하자면, 전국 초·중·고 교과서에 등장하는 충절·선비들의 인물이 충남지역에 월등히 많다는 점이 이를 뒷받침하고 있다.

충(忠)의 의미에 있어서도 왕권시대에는 왕을 위해 봉사하고 목숨까지도 바치는 것을 충(忠)이라 했지만 '충(忠)은 국가와 민족을 위해 열과 성을 다하는 것'이요 '충(忠)은 나라와 사회에 대한 중심이요, 바른 마음, 바른 관계를 의미'하고 있다.

또한, 충(忠)은 거짓이 없는 참된 마음이요, 다른 사람에 대한 공경과 자기 자신에 대한 정성과 성실을 다하는 것이 충(忠)인 것이다.

중국의 춘추좌전(春秋左傳)에도 '사욕이 없는 것이 충성이요, 백성을 이롭게 하는 것으로 충성의 정신이 없으면 국가와 백성에 반하는 사사로움에 치우치기 쉬운 것' 이라며 경고하고 있다.

백제 계백 장군, 고려 최영 장군, 충무공 이순신 장군, 유관순 열사, 윤봉길 의사, 김좌진 장군, 홍성 구백의총, 금산 칠백의총 등 수많은 분들이 국가와 민족을 위해 목숨을 바친 우국충정의 충남 인물들이다. 독립기념관이 천안에 위치한 것도 나라의 중심지이기도 하지만 충절의 고장과 연관이 있다고 볼 수 있다.

다음으로 효의 윤리는 더욱 확충되어 가까이는 부모에 대한 것이지만 조부모, 증조부모, 시조 조상으로 확대되어 간다. 사람은 누구나 조상을 가졌으며 뿌리를 가지고 있다.

효는 바로 이 수많은 조상에 대한 윤리다. 조상에 대한 감사의 뜻을 표시하는 것이 제사이며 추모 의식이다. 효는 먼 조상으로부터 나를 거쳐 먼 미래의 후손들에게까지 생명이 이어져 가는 생명선이라는 생명론을 주장하기도 한다. 충남에는 효자비, 효녀문, 효자마을 등이 곳곳에 산재되어 있다.

그리고 예(禮)와 절의정신, 선비정신에 대해서도 충남의 아름다운 전통으로 계승 발전시켜 나갈 것을 강조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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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9년도 추곡수매 현장(벼를 수확하여 가마니에 담아 면사무소에 싣고 가면 검사원이 벼 품질 등급을 정하고 창고에 보관했다가 도정하여 쌀값 조절용 방출, 군량미 등으로 사용됐다. 당시 식량 문제는 우리나라 최대의 과제였다).
(6) 추사고택, 충의사 관리소장 직급을 하향 조정하다

손 지사가 취임 후 시·군 순방을 하면서 예산군을 방문하였을 때다. 군정 보고 청취와 훈화를 마친 후 새롭게 정비 단장된 추사 김정희 선생 고택과 매헌 윤봉길 의사 기념관이 있는 충의사도 둘러보았다.

그런데 귀청 후 뜻밖의 지시사항이 있었다.

"충남도가 직접 관리하던 추사고택과 충의사 관리운영을 예산군에 넘겨주고 관리소장 직급도 사무관(5급)에서 주사(6급)로 낮추라"는 것이었다.

도지사의 이 같은 의지표명은 승진의 희망과 기대 속에 살아가고 있는 도청과 시군 공무원들에게 충격적인 일로 받아들여졌다. 긴긴 세월 끝에 사무관으로 승진할 수 있는 소장 직무대리로 발령받았던 Y 공무원과 G 공무원도 가늠하기 어려울 정도로 충격이 컸을 것이다.

전국 시·도와 시·군·구의 공무원 수를 늘리거나 직급을 상향조정 할 때는 예나 지금이나 내무부(행정안전부)의 통제와 승인을 받아야 가능한 일이었다.

추사고택과 충의사 관리소장의 사무관 직급 보임의 경우도 내무부와 긴밀한 협의를 통해 어렵게 이뤄낸 것으로 승인 당시의 도지사도 내무부 설득에 나섰던 일이기도 하였다.

지금은 공무원 수가 큰 폭으로 증가하였고, 공무원 직급 인플레로 사무관의 수도 크게 늘어났지만 1970년대의 경우 공무원의 꽃이라는 사무관은 9급 공직 입문 후 최소 25년 이상은 근속을 해야 오를 수 있었던 때로 6급(주사)으로 정년 퇴직하는 경우도 허다하였다.

1960년대는 사무관이 군수 직무대리를 하는 경우도 있었고, 군청의 과장들도 30~40%는 사무관, 60~70%는 주사로 보임되고 있던 시기였다. 그만큼 사무관의 자리는 공직자들에게 선망의 대상이었고 희소가치가 있는 귀한 자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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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사고택
도지사, 시장, 군수, 구청장들은 아무리 마땅하고 옳은 일이라도 조직 구성원들의 사기를 떨어뜨리거나 인기를 잃는 일에는 손을 대지 않는 속성을 가지고 있다.

그럼에도 손 지사는 공무원들의 사기에 영향을 주게 될 것임을 뻔히 알면서도, 인기에 전혀 연연하지 않고 "아닌 것은 아니다"라며 사안을 꿰뚫어 보는 통찰력으로 과감한 결단을 내린 것이다.

사실 충의사, 추사고택은 관리 면적이 넓지 않으면서도 보존 기념물도 소수인 데다 관리 인력도 2~3명 또는 3~4명에 불과하였다. 그러므로 이를 굳이 대전에 있는 충남도청 직할 관리의 명분과 현실적 이유가 없었고, 예산 군수에게 맡긴다면 더욱 애정을 갖고 섬세하게 운영할 수 있다고 판단한 것이다. 그리고 관리소장의 사무관 직급도 역할에 비해 과도하다는 것이다.

공무원 수의 증가와 공무원 직급의 상향조정은 필연적으로 인건비 추가 부담을 있게 하고 국민 세금으로 충당해야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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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의사
영국의 역사학자이자, 행정학자인 파킨슨(1909~1993)은 ‘파킨슨 법칙’을 발표하였는데 "공직 사회에서 공무원의 수는 해야 할 업무의 양과 관계없이 늘어나는 속성이 있으며, 공무원이 늘어나면 1인당 업무량이 줄어드는 게 아니라 인력이 늘어난 만큼 업무량도 함께 증가한다"는 것을 통계학적으로 증명한 바 있다.

김용교(전 아산시 부시장. 전 충남도정책기획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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