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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춘하추동] 전시회 풍경

백향기 대전창조미술협회 회장

임병안 기자

임병안 기자

  • 승인 2026-01-13 17:12

신문게재 2026-01-14 18면

백향기
백향기 대전창조미술협회 회장
그림 전시는 보통 봄이나 가을에 많이 하게 된다. 봄이나 가을은 나들이 하기 좋아 관람객도 편하게 올 수 있고 전시장 환경도 쾌적해서 관람하기 좋기 때문이다. 전시회를 하려면 액자를 맞추고, 도록을 제작하고, 팜프렛을 찍어서 발송하고, 전시장에 걸 플랭카드도 만들고, 작품 운송을 위한 조율 등 여러 가지 일들로 분주한 시간을 보내게 된다. 더구나 단체 전시를 하는 경우에는 회원 각각의 작품을 모아야 하고 이를 위해서 전화를 끊임없이 하고 작품사진도 모아서 편집하는 등의 여러 가지 일들이 늘어난다. 흔하지는 않지만 전시 지원금이 있는 경우라면 일은 몇 배 늘어나서 지원금 신청을 위한 각종 서류작업과 전시회 종료 후 정산 및 보고 과정에 많은 행정서류를 준비하고 제출해야 한다.

특히 서류작업들은 화가들에게는 익숙지 않은 일들이어서 힘든 과정이다. 봄 가을 전시회 시기에 해야 하는 여러 가지 일들을 생각하면 여름이나 겨울은 바깥의 번잡함에서 벗어나 있다는 점에서 여유가 있을 것 같지만, 여름이나 겨울은 화가들에게는 또 다른 이유로 바쁘고 밀도있는 작업을 해야 하는 시간이다. 다가오는 봄이나 가을의 전시에 대비해서 작품을 구상하고 그리는 작업을 집중적으로 해야 하기 때문이다.



전시장에 가보면 밝은 조명과 흰색의 벽면에 멋진 그림들이 걸려 있어서 화려해 보이기도 하고, 우아한 느낌이 들기도 하지만 그것은 지난 시기 작업실에 오랜 시간 붙들려 있으면서 여름의 무더위 속에서 땀을 뻘뻘 흘리거나 겨울 내내 추운 작업실에서 손을 호호 불면서 외롭게 그려낸 결과물들이다. 걸려 있는 그림 하나 하나는 시간과 땀의 흔적들이 형상화돼 있는 것이라 할 수 있다. 나는 늘 전시장에 가면 그림들을 보면서 그림 자체에 빠져 들면서도 이 그림들을 준비하고 전시회를 열기까지 얼마나 많은 시간을 투여했으며, 그 과정에서 수없이 반복하여 그리고 또 그렸을 전시장에 나오지 못한 그림들, 그중에서 선별하여 전시회를 열기 위해 수고를 아끼지 않았을 여러 가지 일들을 생각하게 된다. 일반인들은 아마 그림들의 이면에 숨어 있을 이러한 수고와 고단한 준비과정을 생각하는 경우는 많지 않을 것이다. 결과물에 집중하고 그것만을 보기 때문이다.

겉으로 드러나지 않는 수고로움이란게 어찌 그림을 그리고 전시하는 일에만 국한된 것이겠는가? 공공기관에서 진행하는 회의에 참석하면 이 회의 참석자들을 같은 시간, 같은 장소에 모으기 위해, 그리고 안건 자료를 준비하기 위해, 회의 진행을 위해 필요한 각종 물품들을 준비하기 위해 담당자들이 얼마나 수고로운 일들을 했을지 생각하게 된다. 음악회에 가면 멋진 연주에 감동을 받지만 다른 한편으로 연주자들이 얼마나 많은 시간 동안 연습에 연습을 반복했을지, 미세한 음의 변화나 느낌 하나 하나에 얼마나 많은 세심한 주의와 연주방법을 고민했을지, 연주장의 음향을 최상으로 만들기 위해 세세한 음향조건을 조정했을 스탭과 조명 연출을 구상하고 조율했을 여러 사람들의 수고가 떠오른다. 어떤 일이든지 겉모습 뿐 아니라 그것을 준비하는 과정에 들어가는 수고로움이나, 겉으로 드러나지 않는 수고한 사람들의 노고를 나도 모르게 떠올리는 습관은 그림을 그리고 그것을 한군데에 모아 전시회를 여는 일을 지속적이고 반복적으로 해오면서 갖게 된 일종의 직업병 같은 것이다. 그러나 이 직업병은 나에게는 마음을 넓혀 나가는 축복과 같은 것이기도 해서 늘 감사한 마음을 갖고 있다.

이런 일들이 확장되어 우리 사회가 눈에 보이지 않지만 매우 중요한 일들이 씨줄과 날줄처럼 엮여서 순탄하게 작동하도록 한다는 것을 느낄 때가 많기 때문이다. 마치 잘 짜인 거대한 바퀴가 천천히 굴러가면서 여러 가지 톱니들이 이가 잘 맞아 작동하는 모습이 연상되는 것이다. 각각의 톱니들은 각자의 역할이 있고 이들 중 아주 작은 톱니 하나라도 이가 잘 맞지 않으면 전체가 작동에 어려움이 생기게 되는 그러한 바퀴가 그려진다. 드러나지 않지만 묵묵히 자신의 일들을 하는 사람들은 모두 군자같은 사람들이다. 공자의 말이 백번 공감이 가는 것이다. 남들이 나를 알아주지 않아도 노하지 않으면 어찌 군자라 하지 않을 것인가? (인부지이불온 불역군자호) (人不知而不溫 不亦君子乎)/ 백향기 대전창조미술협회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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