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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속으로]0과 1 사이, 중첩의 정치

김재석 소설가

이상문 기자

이상문 기자

  • 승인 2026-08-31 16:50

신문게재 2026-09-01 2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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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재석 소설가
2026년 9월, 이재명 정부가 들어서고 1년이 지난 현시점에서 민심을 가리키는 여론의 지표는 서늘하다. 대통령 국정 수행 긍정 평가는 30%대 후반에서 40%대 초반으로 뚝 떨어졌고, 부정 평가는 50%를 넘어섰다. 중도층은 물론, 대선 때 핵심 우군이었던 2030 여성층과 4050세대에서도 이탈세가 뚜렷해지고, 전통적 텃밭인 호남에서조차 피로감과 이탈의 기류가 뚜렷했다. 20대는 냉소적인 비웃음마저 보냈다. 마치 9000까지 올라갔다 한 달 사이에 6000까지 떨어진 코스피의 롤러코스터 지수를 보는 것 같다. 숫자는 가식이 없다.

부동산 민심 악화와 대법관 후보자 임명 거부를 둘러싼 위헌 논란, 제주 실종사건을 계기로 불거진 경찰에 대한 불신 등이 지지율 하락에 영향을 미친 것으로 전문가들은 분석했다. 여기에 유시민 전 장관의 발언을 둘러싼 여권 내부 갈등까지 겹치면서 하락세가 이어지고 있는 것으로 보고 있다.

대통령 취임사에서 '모두의 대통령'이 되겠다 선언하고 중도·보수 인사 등용을 시도하며 정치적 운동장을 넓혀온 이 대통령으로서는 '급한 불'이 됐다.

왜 유권자들은 이토록 냉담해진 것일까? 그것은 국정 동력이 소진되고 있으며, 기존 정치가 국민의 삶을 온전히 품어내지 못하고 있음을 나타내는 냉정한 현주소다.



한국 정치는 오래도록 0과 1이라는 이진법의 언어로 구동되어 왔다. 진보를 0이라 하고 보수를 1이라 한다면, 정당들의 셈법은 늘 단층적이었다. 0은 1의 존재를 쳐내야 성립했고, 1은 0을 지워야 비로소 정당성을 얻었다. 대립의 언어들이 날카로울수록, 그 칼날이 지나간 자리에는 적대적 상처만 남았다.

이 진영 논리의 굴레를 벗어나고자 정치권은 때마다 '중도확장론'을 외친다. 그렇다면 그들이 말하는 중도는 과연 진짜 중도인가? 정당들이 말해 온 중도는 그저 0과 1의 산술적 평균인 0.5, 혹은 눈치를 보며 기회주의적 타협을 도모하는 모호한 지대에 불과했다. 참된 중도는 이진법을 넘어선 양자역학의 '중첩(Superposition)' 상태와 닮아 있다. 진보의 가치인 개혁과 포용, 보수의 가치인 성장과 안정이 한 몸 안에서 동시에 작동하는 고차원적 정치다. 0이면서 동시에 1인 상태, 그것은 가벼운 타협인가? 아니다. 두 가치를 동시에 짊어지는 중용의 무거운 기품이다.

정치는 조금만 풍랑이 불어도 이 중첩의 상태를 유지하기가 쉽지 않다. 양자의 입자는 아주 작은 외부 파동에도 순식간에 0이나 1로 상태가 무너진다. 현실 정치의 중도 역시 사방에서 몰려드는 소음에 허약하게 무너져 내린다. 강성 팬덤의 고성과 극단적 진영 대립, 여기에 대외적인 전쟁과 고물가, 기후 재난이라는 거친 비명은 중도라는 양자 상태를 쉽게 붕괴시키는 외생 변수로 작용한다. 사실 진영의 울타리 뒤에 숨어 상대를 향해 손가락질하는 편이 '중첩의 정치'보다 훨씬 쉽기 때문이다. 붕괴는 빠르고, 견디는 일은 서늘하며 고통스럽다.



나는 중첩의 정치가 '고도를 기다리며' 연극에 나오는 주인공 디디와 고고처럼 떠날 수 없는 현실을 묵묵히 '고도'를 기다리며 견뎌내는 일, 그 부조리함에 닿아 있다는 생각이 든다. 세상은 이진법의 단순함으로 움직이지 않는다. 0과 1이라는 헐벗은 이념의 칼을 거두고, 두 가치를 동시에 껴안아 민생의 현실을 견뎌내는 일. 양자적 중도의 길은 아득하고 늘 불안해 보이지만, 정치가 마침내 도달해야 할 냉정한 현실이다.
김재석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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