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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안 앞바다 5번째 침몰선 실체 드러날까…금강~한양까지 25일 '조행일록' 눈길

해양유산연구소 마도해역서 가칭 마도5호 조사중
청자 87점 존재의 실마리 확인되, 선체는 미발견
163년전 금강에서 출항해 한양까지 25일 조운선

임병안 기자

임병안 기자

  • 승인 2026-09-24 12:05

고려와 조선시대 지방의 세곡을 수도로 운반하던 조운 제도는 험난한 물길로 인해 충남 태안 앞바다 등에서 조운선 침몰 사고가 빈번하게 발생했습니다.

조선시대 기록인 '조행일록'은 당시 조운선의 항해 과정을 생생히 전해주며, 최근까지 태안 마도 해역에서는 마도 1~4호선 등 침몰한 선박들이 잇따라 발굴되어 왔습니다.

올해는 수중발굴 50주년을 맞아 12세기 고려 선박으로 추정되는 '마도 5호선'의 실체를 규명하기 위한 조사가 진행 중이며, 이를 통해 당시의 해양 역사와 선박 구조가 더욱 명확히 밝혀질 것으로 기대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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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유산천 국립해양유산연구소의 태안수중유산박물관에 고려시대 조운선인 마도1호선 재현선 전시되어 있다.  (사진=중도일보DB)
가을에 수확한 벼와 콩을 세금으로 거둬 돛으로 나아가는 여러 척의 배에 산더미처럼 싣고 한양까지 운반하는 제도가 있었다. 지금처럼 현금이나 신용카드가 사용되지 않았던 고려와 조선시대 국정 운영에 필요한 재정을 각 지방에서 걷은 곡물과 특산품으로 나라 곳간을 채웠다. 추석 전후로 수확을 마치고 그해 11월부터 곡식을 세금으로 거두기 시작해 선착장이 있는 조창에 모았다가 이듬해 1월 배를 띄워 이듬해 3월까지는 상납을 완료해야 했다. 세금으로 거둔 곡식을 배에 실어 고려 때는 개경 조선 때는 한양까지 옮기는 것을 조운(漕運)이라 부르는데 충남 서해 앞바다는 조운선박이 통행하는 길목이자 자주 침몰하는 험지였다. 그중 충남 서산과 태안이 있는 태안반도 앞바다는 조운선이 자주 침몰하던 위험한 험조처였고, 마도 1~4호가 발굴된 것에 이어 올해는 가칭 마도 5호선이 실제로 존재할 것인지 주목받고 있다.

먼저, 163년 전 금강에서 조운선을 몰아 한강의 한양까지 25일간의 항행을 기록한 일지를 통해 조선시대 조운제도를 이해할 수 있다. 금강 하류에 위치한 성당창이라는 곳에서 1863년 3월 15일 조운선 12척에 쌀과 콩을 각각 1160석씩 나눠 싣고 금강을 빠져나와 서해를 거슬러 한양으로 향하는 과정을 기록한 '조행일록'은 우리지역 조운제도를 생생하게 그려냈다. 익산지역 함열현감이자 성당창팔읍조세영운관이었던 임교진이 1862년 11월부터 금산과 남원, 진산, 익산 등에서 세곡을 거두기 시작해 3월 15일 성당창을 출발 후 5월 2일 한양 서강 광흥창에 도착한 과정을 일기처럼 남긴 기록한 것이다.

'조행일록'에 따르면, 금산을 비롯해 각 군현에서 전세와 대동미를 모았는데 약 5개월만에 성당창에 준비된 창고는 가득차 곡식을 마당에 쌓았고 모두 아홉 곳에 그 높이가 모두 큰 나무보다 높았다고 한다. 금산에서는 쌀 674석, 콩 527석을 거뒀다. 세곡을 운반하는 조운선은 12척을 마련했는데 1척은 새로 만들고 2척은 임대해 충당했다. 임교진이 탔던 상선을 비롯해 각각의 배에는 평균 1160석의 쌀과 콩을 실었고 한 척 당 승선원 15명씩 총 240명이 승선해 배를 몰았다. 금강을 따라 충남 장항 앞바다에 도착하는데 8일이 걸렸고, 충남 서해를 따라 육지에 가까이 붙어 한강 입구에 닿은 후 다시 한양까지 한강을 따라 목적지 한양 광흥창까지 총 25일 항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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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안수중유산박물관에서 조운선에 쌀과 그릇을 어떻게 실었는지 재현한 모습.  (사진=중도일보DB)
조운선단이 지나는 항로의 연안 고을에서는 물길을 잘 아는 자를 파견해 선단이 암초와 모래에 빠지지 않도록 호송해야 했으며, 호송을 게을리한 고을의 아전은 배에서 곤장을 맞기도 했다. 4월 6일에는 배 1척이 암초에 걸려 세곡을 잃을 위기를 맞기도 했고, 비가 내리거나 안개 또는 썰물 때는 운행할 수 없어 전체 25일 항해기간 중 배를 세운 채 쉰 날이 7일에 이른다.



조운선단이 한양을 향하는 항로 중 서산과 태안이 있는 태안반도 앞바다는 조류 변화가 심하고 해수가 아주 탁해 육안으로는 깊이를 가늠하기 어려운 곳이다. 이곳을 지나던 조운선 해난사고가 빈번해 안흥량은 황해도의 인당수, 강화도의 손돌목, 전남의 울돌목에 비견되는 4대 험조처다. 태안군 근흥면 마도 해변가에서 그동안 고려와 조선시대 침몰선 '마도 1호선(2009)', '마도 2호선(2010)', '마도 3호선(2011)'에 대한 해양발굴을 마치고, 지난해에는 조운선 마도4호선이 지난 10년간 유물을 물 밖으로 꺼내는 과정을 마치고 마지막으로 선체를 인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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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도 5호선으로 추정되는 선박 매몰 지점 부근의 청자 다발.  (사진=국립해양유산연구소 제공)
국립해양유산연구소가 이번에는 마호5호선으로 잠정 이름 붙인 미상의 난파선을 태안 앞바다에서 수색하고 있다. 잠수 조사 결과 청자 87점(1150~1175년경 제작), 목제 닻·밧줄, 볍씨 등과 함께 선체 조각과 화물받침목을 발견했다. 청자의 형태와 세부 문양을 분석한 결과 1150~1175년경 제작된 것으로 추정된다. 마도 해역에서 발굴된 고려 선박들의 침몰 시기가 태안선(12세기 후반), 마도 1호선(1208년), 마도 2호선(1210년경), 마도 3호선(1265~1268년경) 순서로 추정된다. 마도 해역은 태안선 발굴조사 지점으로부터 북서쪽으로 4㎞ 떨어져 있으며, 수심은 15~21m에 이른다. 이 작은 섬 인근에서 지금까지 고선박 4척이 발굴됐고, 올해 다섯 번째 선박의 실체 규명에 나선 것이다.

올해 한국에서 수중발굴이 시작된 지 50주년을 맞이하면서 마도5호선의 실체가 규명될 것인지 더욱 주목되고 있다. 한국의 수중발굴은 1976년 10월 26일, 전남 신안군 증도 해역에서 고려시대 무역선의 신안선 발굴을 시작으로 2002~2003년 군산 비안도해역·십이동파도선 발굴로 도약하고, 2007년 이후 태안 마도해역의 성과로 절정에 이르고 있다.



국립해양유산연구소 서해문화유산과 관계자는 "침몰선 마도5호가 수면 아래에 있다는 존재의 실마리가 포착돼 실체를 규명하기 위한 수중발굴 조사가 진행 중으로 실제 선체는 아직 발견되지 않았다"라며 "수중 조사를 계속해 12세기 중반의 고려 선박으로 추정되는 '마도 5호선'의 실체와 해당 선박의 구조, 규모 등을 밝혀낼 계획"이라고 설명했다.
임병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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