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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춘하추동] '비스듬히 외면' 하며 떨어지는 낙엽

김충일 북-칼럼니스트

이혜린 기자

이혜린 기자

  • 승인 2026-10-27 17:36

신문게재 2026-10-28 1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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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충일 북-칼럼니스트
아침 산책길, 하늘을 쳐다보니 쪽빛 물감으로 물들여진 구름밭 한 귀퉁이를 빌려 붓 농사를 짓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늘 만날 때마다 발장난을 받아주던 풀숲에 다정스럽게 내려앉은 햇살은 어느 틈에 서리의 잔영을 지우며 무심하게 사라진다. 천(川)으로 내려오는 계단 옆 느티나무엔, 한두 장씩 검붉은 입새들이 차진 바람의 결을 타고 '비스듬히 외면'(김훈<자전거 여행>)하며 떨어지고 있다.

산책길에서 만나는 낙엽은 일상의 흐름 속에서 '관계맺음의 무게와 스침의 겹'이란 은유가 되어 다가온다. 사람 사이는 본래 따뜻한 선물이어야 함에도 서로 똑바로 다가가려 하거나, 직설적인 눈빛으로 바라보다 무거운 상처와 피로를 겪으며 아픈 가시가 되어 돌아온다. 시시각각 걸려오는 휴대폰 메시지의 알림음, 원치 않는 질문에 예의 바른 미소로 응대해야 하는 순간들, 서로의 삶을 너무 잘 안다는 이유로 함부로 넘나드는 경계선들. 그 촘촘하고 지나친 맺음과 연결 속에서 우리의 일상은 어느새 숨골이 막히는 답답함을 겪게 된다.

일상의 굽이마다 관계 맺은 세계(사람, 사물, 자연)를 완벽하게 이해하겠다는 응시는 자칫 오만한 지배, 맥 잃은 관점, 벌레 먹은 냉소로 변질된다. 상처받아 울고 있는 친구의 목소리를 들었을 때, 날카로운 언쟁에 빠질 때, 감당키 어려운 고단한 일이 가로막을 때, 비스듬히 귀 기울이며 기대어 보자. 비스듬히 외면한다는 것은 눈을 감아버리는 방관이나 도피가 아니다. '비스듬히 외면'하기는 '삶의 지혜로운 시선의 비켜섬'이며, '삶을 어루만지는 비켜선 온기'이자, '삶과 삶 사이에 지켜야 할 비켜선 예의'이다. 그렇게 '존재의 품격'을 지켜주는 비켜선 호흡이 된다.

천변에 쌓여가는 낙엽들도 서로 바짝 밀착되어 있는 듯 보이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잎과 잎 사이에 바스락거리는 얇은 틈이 있다. 그 여백은 산책길에서 만난 노란파카를 걸친 '그분'에게 고개 깊이 숙여 살피지 않고, 그저 스치는 바람처럼 여운만 남기며 지나치는 순간을, 오랜만에 만난 친구와 말없이 차를 마시는 기다림으로, 불현듯 자신에게 찾아온 침묵의 반가움으로 채워져야 한다. 이러한 일상에 비켜선 거리두기야말로 서로의 영혼을 번거롭게 하지 않고 오래도록 따뜻하게 지켜주는 '다정한 무관심(알베르 카뮈 <이방인>)'이 아닐까.



'다정스런 무관심'. 그것은 상대의 삶에 개입하거나 그를 나의 잣대로 재단하려 하지 않고 그가 필요할 때 닿을 수 있는 곳에 묵묵히 존재해 주는 상태를 말한다. 마치 밤바다의 등대와 같다. 등대는 배가 어느 항로로 항해하든 간섭하거나 노를 저어주지 않는다. 그저 그 자리에서 불을 밝힌 채 배가 풍랑을 헤치고 돌아올 길을 가만히 비추고 있을 뿐이다. "네가 어떤 모습이든, 어떤 선택을 하든 나는 그것을 온전히 인정하겠다"다는 조용한 승낙. 그것이 바로 다정함이 품어낼 수 있는 가장 고결한 형태의 무관심이자 깊은 연민이 된다.

이제 사람 사이의 '맺음의 무게와 스침의 겹'이란 짙은 그늘 속에서도 스러지지 않을 수 있는 비밀. 그것은 우리(나와너)사이에 알맞은 가을 햇살이 통과할 만큼의 거리를 두며, 너무 가까이 다가가 서로를 태우지 않고 비스듬히 비켜서며, 너와 나 사이에 바람이 지나갈 자리를 비워두는 것, 네가 거니는 길을 조용히 바라보되 함부로 발자국을 간섭하지 않는 것. 각자의 그늘을 스스로 품을 수 있도록 가만히 기다려주는 것. '너'의 삶을 지나치게 훔쳐보지 않는 다정한 무관심을 익힐 때, 비로소 우리의 일상은 아픔에서 벗어나 한층 맑고 깊은 '삶의 깊이'를 회복하게 되지 않을까.

초겨울로 들어서는 아침 산책길 위에 떨어진 낙엽 하나를 집어 들며, 나지막이 스스로에게 다짐해 본다. 내 곁의 사람을 향해 살아가면서 오늘 하루는 조금 더 비스듬히, 그리고 조금 더 다정하게 거리를 두어 보겠노라고 다짐해본다. 그것만으로도 삶은 아주 따스해질 수 있음이라고..../김충일 북-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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