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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병윤 교수 |
1970년대 후반, 비 내리던 어느 가을밤의 런던. 한 허름한 펍에서 이름 없는 재즈밴드가 연주하고 있었다. 훗날 재즈밴드 '다이어 스트레이츠'의 대표곡이 된 '스윙의 황제들(Sultans of Swing)'은 여기서 만들어졌다.
밴드의 이름 속에 담긴 절박함처럼 화려한 스타의 이야기가 결코 아니다. 알아주는 이도 없는 밴드가 도시 한구석에서 자신들의 음악을 연주하고 있을 때, 우연히 그곳을 지나던 한 젊은 음악가가 그 풍경에서 시대를 넘어 살아남을 노래 하나를 발견한 것이다.
'Sultans of Swing'은 한때 우리 젊은 가슴에도 잔잔한 파도처럼 밀려왔다. 기타를 어깨에 멘 대학 밴드들이 캠퍼스를 술렁이게 했고, 그들의 경연장이자 발표 무대는 대학가요제로 확산되었으며, 이후 캠퍼스는 만남의 장이 되었다.
중세의 세계관을 정립하던 옥스퍼드의 '이글 앤 차일드'에선 '반지의 제왕'이 등장했고, 신문사들이 즐비했던 런던의 플리트 스트리트에선 '크리스마스 캐럴'의 작가 찰스 디킨스가 태어났다. 동물농장의 조지 오웰 역시 BBC 의 동료들과 '피츠로비아 태번'을 자주 오가다 '물속의 달(The Moon Under Water)을 썼고, 그 글에서 이상적인 펍은 '단순히 술을 마시는 곳이 아니라, 지역 공동체의 안식처이자 내 집 같은 편안함을 주는 공간'이라 했다.
이렇듯 펍(Pub)은 가볍게 한잔하는 장소도 되고 이야기를 나누며, 음악과 문학을 꽃피우던 동네 사랑방이었고, 편안한 흥얼거림이, 잡담 같던 이야기들이 세상 밖으로 나오는 뜻밖의 기회를 얻는 장소이기도 하다
사람과 사람의 우연한 만남, 동네 사람들의 이야기 장소, 그래서 앉아 있기보다 서 있는 사람들이 많은 곳, 편안함과 우연을 담은 이곳은 은근하게 만들어진 마을 공동체의 모습이다.
오늘 우리 도시에서 점점 사라지는 것은 바로 이 우연한 만남인지 모른다.
주위에는 사람이 가득하지만 정작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는 보이지 않는다. 담소보다는 모두가 각자의 휴대전화를 들여다본다. 도시는 사람들로 붐비는데 외로움은 깊어 간다.
그렇다면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카페 하나, 공원 하나를 더 만드는 일이 아닐 것이다. 세대와 세대가 자연스럽게 만나고, 배우고, 경험을 나누며 다시 사회적 관계를 만들어가는 새로운 도시의 사랑방이 필요하다.
도시의 관문으로서 대학이 도시의 거대한 사랑방을 열 수 있을까.
상아탑의 문을 굳게 닫은 대학이 그리되기엔 넘어야 할 산들이 많다. 역설적으로 AI시대가 본격화할수록 인간에게 필요한 질문은 더욱 인문학적인 것이 되고 있다. 기계가 지식을 빠르게 정리하고 답을 만들어낼수록 인간은 무엇을 질문할 것인가, 어떤 삶을 살아갈 것인가, 다른 세대와 어떻게 공존할 것인가를 고민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AI는 인문학을 다시 일상의 학문으로, 평생학습으로 불러내는 계기가 되고 있다. 바로 그 인문학이 바탕이 된 대학의 평생학습 공동체는 바로 우리 미래의 지역 학습 사랑방일 수 있는 것이다.
지난 70년대 비 내리던 런던의 허름한 펍에서 시작된 'Sultans of Swing'의 이야기가 우리에게 들려주는 것도 이것인지 모른다. 도시가 살아 있는 것은 거대한 건물이 있어서가 아니라 사람들이 만나 이야기를 나누고, 누군가 연주하고, 또 누군가 그것을 듣는 장소라서이다.
인구가 줄고 대학의 위기가 시작된 지금, 지역의 대학은 뜻밖에도 그 역할을 맡을 수 있는 가장 중요한 공간으로 살아남아 있다. 떠나는 대학에서 평생 다시 찾아오는 모든 세대의 대학으로, 지역과 대학이 서로를 필요로 하는 관계를 넘어 함께 배우며 나이 들어가는 평생의 동지가 되는 시간이 온다./김병윤 대전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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