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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성일이 만난 사람]최성진 (주)더블유렌트카·내포렌트카 대표

제1회 내포신도시 모터 페스티벌 개최
취약계층 학생들에게 장학금 지급.
교통사고로 지체장애 5급 판정, 망막색소변성증 진단, 실명 가능성 진단에도 두려움 넘어 나눔 실천하는 선한 기업인

한성일 기자

한성일 기자

  • 승인 2026-11-01 23:50

신문게재 2026-11-02 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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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성진 (주)더블유렌트카·내포렌트카 대표가 필자와 인터뷰하고 있다. 사진=한성일 기자
1998년 2월 고2때 오토바이 뺑소니 사고로 오른쪽 다리 장애, 2000년 6월 23일 교통사고로 오른손 손상, 지체장애 5급 판정, 2014년 12월 서울 영등포 김안과에서 망막색소변성증에 의한 실명 가능성 진단, 2026년 현재 중증 시각장애, 주변 시야가 대부분 소실되고 중심 시야 일부만 남은 상태. 현재 상태는 중심 시야로 휴대전화 글씨를 읽거나 사람 얼굴을 알아볼 수 있지만, 주변 시야가 크게 좁아져 일상생활과 업무에 어려움이 있는 상태. 그래도 좌절하지 않고 더 어려운 이웃을 돕고 베풀며 살아가는 주인공이 있다. 두 번의 교통사고, 장애와 시력 상실의 두려움을 넘어 나눔을 실천하는 기업인 최성진 더블유렌트카·내포렌트카 대표가 11월7일 충남 내포신도시 KBS 부지에서 제1회 내포신도시 모터페스티벌을 개최한다. 이날 페스티벌에서 나오는 수익금 3000여만 원은 모두 보육원을 비롯해 취약계층을 돕고, 어려운 학생들의 장학금으로 기탁하게 된다. 어린 시절 지독한 가난 가운데에서도 자수성가해 자신처럼 어려운 환경의 학생들을 돕는 일에 앞장서는 천사표 최성진 대표를 충남 홍성군 홍북읍 충남대로 24 내포제나우스오피스텔 114호 더블유렌트카 대표실에서 만나 인터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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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블유렌트카 사무실 앞에서 최성진 대표. 사진=한성일 기자
-최 대표님은 11월7일 충남 내포신도시 KBS 부지에서 제1회 내포신도시 모터페스티벌을 준비하고 있으신데요. 이에 대해 설명해주시겠어요?

▲예. 이번 행사는 제가 대표를 맡고 있는 (주)더블유렌트카·내포렌트카가 주최·주관하고 낭만게러지가 협력하는 지역 상생형 자동차 문화축제입니다. 행사의 목적은 단순한 자동차 전시가 아닙니다. 이 모터 페스티벌을 하는 이유는 첫째, 어려운 환경에서 성장하는 학생들에게 장학금을 전달하고 꿈을 응원하기 위해서입니다. 둘째, 내포신도시와 홍성·예산, 서산, 당진, 아산, 태안, 보령 지역 소상공인들에게 새로운 홍보와 판매 기회를 제공하기 위함입니다. 지역 상권이 너무 힘들어 지역상권이 웃을 수 있는 환경을 만들고 싶었습니다. 셋째, 자동차 문화와 공연, 체험행사를 통해 지역 주민이 함께 어울리는 축제를 만들기 위함입니다. 저는 이번 행사를 통해 제가 살아온 경험을 지역사회에 대한 실질적인 도움으로 연결하고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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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회 내포신도시 모터 페스티벌 홍보를 위해 짱구인형이 된 최성진 대표. 사진=한성일 기자
특히 경제적인 어려움 때문에 꿈을 포기하는 학생이 없었으면 하는 마음이 큽니다. 저는 제 자신의 어린 시절을 떠올리며 장학금이 학생 한 명의 미래에 작은 희망이 될 수 있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후원 협찬 없이 순수하게 제 자비를 들여서 하는 페스티벌인데요. 저 같이 신체적으로 장애가 있는 사람도 인생을 포기하지 않고 열심히 사는 모습을 보여드리고 싶었습니다. 어려운 환경의 학생들 20명에게 3000만 원의 장학금을 지급하고 캠핑카 이용권도 줄 계획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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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회 내포신도시 모터페스티벌 포스터를 펼쳐보이고 있는 최성진 대표. 사진=한성일 기자
- 최 대표님은 매우 어려운 가정환경 속에서 힘든 어린 시절을 보내셨고, 교통사고도 두 번이나 당하신 데다 지금은 실명 위기까지 있으신데요. 사업은 자수성가하셔서 성공하셨고 어려운 환경의 학생들에게 장학금을 주며 돕고 계십니다. 그 스토리가 궁금합니다. 들려주실까요?

▲저는 1981년 충남 보령시 주교면 송학리에서 태어났습니다. 현재 충남 내포신도시를 중심으로 더블유렌트카·내포렌트카 사업을 이끌고 있습니다.

저의 삶은 순탄하지 않았습니다. 아버지의 도박 중독으로 인해 가난했던 어린 시절, 생계를 위해 시작한 아르바이트, 두 차례의 교통사고, 신체장애, 부모님과의 이별, 그리고 현재까지 진행되고 있는 시력 저하까지 수많은 어려움을 겪었습니다. 사업을 하면서 사기도 정말 많이 당했죠. 하지만 저는 삶을 포기하지 않았고, 이제는 저처럼 어려운 환경에 놓인 청소년들을 돕기 위해 장학사업과 지역사회 공헌 활동을 추진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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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회 내포신도시 모터페스티벌 포스터를 들고 짱구가 되어 홍보하고 있는 최성진 대표. 사진=한성일 기자
저는 어린 시절부터 경제적인 어려움을 겪었습니다. 다른 친구들이 공부하고 뛰어놀던 시절, 저는 생활에 보탬이 되기 위해 새벽엔 신문 배달, 저녁엔 주유소, 밤에는 목욕탕 등에서 일했습니다. 어린 나이에 돈의 소중함과 생활의 어려움을 알게 됐습니다. 누군가에게는 평범한 하루였지만, 저에게는 하루하루를 버텨내는 것이 중요한 일이었습니다. 그 시절의 경험은 지금까지도 제 마음에 남아 있습니다. 경제적으로 어려운 가정의 학생들을 보면 저 자신의 어린 시절이 떠오르기 때문입니다. 제가 장학사업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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렌트차량 1대에서 시작해 210대까지 늘린 자수성가의 대명사 최성진 대표. 사진=한성일 기자
- 1998년 2월, 첫 번째 교통사고를 당하시고, 2년 후 또 한 번의 교통사고로 장애인이 되셨다지요?

▲1998년 2월, 17세였던 저는 오토바이 뺑소니 사고를 당했습니다. 이 사고로 오른쪽 다리에 장애가 남았습니다. 한창 꿈을 키우고 미래를 준비해야 할 나이에 큰 사고를 겪었지만, 저는 다시 일상으로 돌아가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신체적인 불편함과 경제적인 어려움 속에서도 일을 놓지 않았습니다. 그때부터 장애를 안고 살아가는 현실을 받아들이며 저 자신의 삶을 책임져야 했습니다.

그런데 첫 사고의 아픔이 채 가시기도 전인 2000년 6월 23일, 저는 또다시 교통사고를 당했습니다. 이 사고로 오른손에 심각한 손상을 입었고 지체장애 5급 판정을 받았습니다. 오른쪽 다리에 이어 오른손까지 장애를 갖게 된 것입니다. 일상생활은 물론 일을 하는 데도 여러 제약이 생겼습니다. 하지만 저는 장애가 있다는 이유로 저의 인생을 포기할 수는 없었습니다. 남들보다 시간이 더 걸리고 몸이 불편하더라도 제가 할 수 있는 일을 찾아 계속 노력했습니다. 두 차례의 사고는 저의 인생을 바꾸어 놓았지만, 동시에 포기하지 않고 살아가야 한다는 의지를 더욱 강하게 만들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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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성진 대표가 회사 차 앞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사진=한성일 기자
-그런데 대표님은 또다시, 시력을 잃을 수도 있다는 진단을 받으셨다면서요?

▲저에게 또 다른 시련이 찾아온 것은 2014년 12월이었습니다. 서울 영등포 김안과에서 ‘망막색소변성증’이라는 진단을 받았습니다. 망막색소변성증은 망막의 시각세포 기능이 점차 손상되면서 시야가 좁아지고 시력이 저하될 수 있는 진행성 망막질환입니다. 당시 의료진으로부터 앞으로 시력이 더욱 나빠지고 실명에 이를 가능성도 있다는 설명을 들었습니다. 이미 오른쪽 다리와 오른손에 장애가 있는 상황에서 시력마저 잃을 수 있다는 이야기는 큰 충격이었습니다. 눈이 보이지 않게 된다면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 일을 계속할 수 있을지, 가족과 사업을 어떻게 지켜야 할지 걱정이 이어졌습니다. 하지만 저는 다시 한번 제 자신의 현실과 마주해야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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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성 글로벌 바비큐 페스티벌 행사장안에 설치된 더블유렌트카 부스 앞에서 최성진 대표가 포즈를 취하고 있다. 사진=한성일 기자
2026년 현재, 점점 좁아지는 시야로 고통을 겪고 있습니다. 중증 시각장애를 안고 생활하고 있는데요. 지난 5년 이상 주변 시야가 서서히 좁아졌고, 지금은 중심 시야 일부만 남아 있는 상태입니다. 정면에 있는 사람의 얼굴을 알아보거나 휴대전화 글씨를 읽을 수는 있지만 주변 시야가 크게 제한돼 있습니다. 주변에서 일어나는 움직임을 파악하거나 익숙하지 않은 공간을 이동하는 일에도 어려움이 따릅니다. 눈이 보이는 범위가 좁아지면서 일상생활과 사업 운영에도 여러 제약이 생겼습니다. 오른쪽 다리와 오른손의 신체장애에 시각장애까지 더해진 상황입니다. 저에게 가장 큰 두려움 중 하나는 앞으로 시력이 얼마나 더 나빠질지 알 수 없다는 사실입니다. 한때는 강한 의지와 자신감으로 어려움을 이겨냈지만, 시력이 점점 나빠지면서 불안과 두려움을 느끼는 날도 있습니다. 그럼에도 현재 할 수 있는 일을 계속하며 사업과 사회공헌 활동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신체적인 어려움보다 앞으로 시력을 잃을 수도 있다는 불확실성이 더욱 힘들 때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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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성 글로벌 바비큐 페스티벌 행사장안에 설치된 더블유렌트카 부스 앞에서 최성진 대표가 포즈를 취하고 있다. 사진=한성일 기자
-부모님과의 이별, 그리고 가족에 대한 책임으로 무겁고 힘든 마음이시겠습니다.

▲예. 제 삶의 시련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습니다. 2012년 9월 26일 어머니가 세상을 등지셨고, 2018년 10월 26일에는 아버지마저 심장마비로 세상을 떠나셨습니다. 부모님과의 이별은 제게 크나 큰 아픔이었습니다. 그러나 저에게는 지켜야 할 가족과 자녀들이 있습니다. 아버지로서의 책임감은 어려운 상황에서도 다시 일어설 수 있도록 하는 중요한 이유였습니다. 제가 어린 시절 겪었던 경제적인 어려움과 아픔을 제 아이들에게는 되풀이하지 않게 하고 싶다는 마음으로 살아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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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산 사과축제가 열리고 있는 예당호 출렁다리 입구에 내포신도시 모터페스티벌 광고 플래카드를 설치한 뒤 파이팅하고 있는 최성진 대표.
사진=한성일 기자
-대표님은 그 수많은 어려움을 딛고 자수성가하셨는데요. 사업 이야기를 들려주실까요?

▲저는 수많은 고통과 어려움 속에서도 어릴 때부터 좋아했던 자동차 관련 사업을 이어왔습니다. 현재 제가 대표를 맡고있는 더블유렌트카·내포렌트카는 충남 내포신도시를 기반으로 단기렌트, 장기렌트, 보험대차, 수입차, 승합차, 캠핑카 등 다양한 자동차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습니다. 2026년 9월 내부 운영자료 기준 약 210대의 차량을 관리하는 규모로 사업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홍성·예산·보령을 중심으로 충청권 전역과 전국 고객을 대상으로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습니다. 저는 사업을 운영하면서도 제 자신의 신체적 어려움을 외면하지 않고, 할 수 있는 역할을 찾아 기업을 성장시키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사업을 하면서 겪은 경제적 위기와 실패 역시 저의 삶에 적지 않은 영향을 주었습니다. 저는 기업의 성장만큼 중요한 것은 고객의 신뢰와 직원들의 생계, 지역사회에 대한 책임이라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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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성진 대표가 홍성 글로벌 바비큐 페스티벌 행사장 부스 안에 설치된 렌트카 안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사진=한성일 기자
-최 대표님은 2019년부터 나눔의 마음을 이어오고 있으시다지요?

▲예. 저는 어려운 시절의 기억을 잊지 않고 지역사회에 도움을 주기 위해 노력해 왔습니다. 2019년부터 예산 새감마을과 홍성 사랑샘 등 지역 복지시설에 냉장고와 아이스크림, 과일, 과자 등 필요한 물품을 후원하는 활동을 이어왔습니다. 경제적으로 넉넉하지 않았던 어린 시절, 누군가의 관심과 작은 도움이 얼마나 소중한지를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저는 사회공헌이 반드시 큰 돈을 기부하는 것만을 의미하지는 않는다고 생각합니다. 도움이 필요한 사람을 외면하지 않고 자신이 할 수 있는 범위에서 꾸준히 나누는 것이 중요하다는 생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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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성 글로벌 바비큐 페스티벌 행사장에 설치된 더블유렌트카 부스 앞에서 최성진 대표가 포즈를 취하고 있다. 사진=한성일 기자
-최 대표님, 앞으로의 꿈을 말씀해주실까요?

▲저의 목표는 단순히 큰 기업을 만드는 것이 아닙니다. 더블유렌트카·내포렌트카를 고객에게 신뢰받는 기업으로 성장시키면서, 지역사회와 함께 나누는 기업 문화를 만들고 싶습니다. 앞으로도 지역 청소년 장학사업과 복지시설 후원, 지역상권 활성화 활동을 지속하고자 합니다. 특히 장애가 있거나 어려운 가정환경에 놓인 사람들에게 제가 살아온 경험이 조금이나마 희망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입니다. 시력 저하로 미래에 대한 불안이 있지만, 지금 제가 할 수 있는 일을 계속하고자 합니다.

사람은 누구나 똑같습니다. 제가 살아보니, 결국 사람은 사람입니다. 살아보니 알겠습니다. 비싼 옷을 입었다고 잘 사는 사람이고, 명품을 걸쳤다고 훌륭한 사람이고, 좋은 옷을 입지 못했다고 가난하고 못난 사람일까요? 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세상에 누가 잘났고, 누가 못났겠습니까. 우리는 모두 태어날 때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고, 아무것도 가진 것 없이 태어났습니다. 다만 태어난 환경이 다를 뿐입니다. 누군가는 금수저, 누군가는 은수저, 누군가는 쇠수저, 누군가는 흙수저,누군가는 모래수저, 또 누군가는 먼지수저라고 합니다. 하지만 저는 이렇게 생각합니다.

비록 먼지수저로 태어났을지라도, 내 마음만큼은 금수저입니다. 돈이 많아서 금수저가 아닙니다. 높은 자리에 앉았다고 금수저가 아닙니다. 어려운 환경에서도 포기하지 않고, 남을 원망하기보다 스스로 노력하고, 가진 것이 없어도 나눌 줄 아는 사람. 그런 사람이 진정한 금수저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시각장애가 있습니다. 지체장애도 있습니다.

남들처럼 세상이 다 보이지 않고, 몸도 마음대로 움직이지 않을 때가 있습니다. 그렇다고 제 인생까지 포기할 수는 없습니다. 눈이 보이지 않아도 마음으로 세상을 보고, 몸이 불편해도 두 발로 인생을 버티며, 오늘도 제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합니다. 오늘 저는 홍성 글로벌 바비큐 페스티벌 행사장에 설치된 저희 회사 부스 앞에서 짱구 탈을 쓰고, 짱구 옷을 입고 사람들 앞에 섭니다. 탈을 쓰면 그 안에 누가 있는지 모릅니다. 그 사람이 부자인지 가난한지, 대표인지 직원인지, 장애가 있는 사람인지 없는 사람인지, 어떤 아픔을 가지고 살아왔는지 아무도 알 수 없습니다. 그저 사람들에게 웃음을 주는 짱구 한 명이 있을 뿐입니다. 그것이 제가 생각하는 세상입니다. 직책이 뭡니까? 직급이 뭡니까? 대표면 어떻고 직원이면 어떻습니까? 그 자리가 사람의 가치를 결정합니까? 높은 자리에 있다고 사람 위에 서는 것도 아니고, 낮은 자리에 있다고 고개를 숙여야 하는 것도 아닙니다. 사람 위에 사람 없고,사람 아래 사람 없습니다. 누구에게 잘 보이기 위해 살지 마십시오. 누군가에게 인정받으려고 자신의 인생을 낭비하지 마십시오. 남에게 보여주기 위한 명품, 남에게 자랑하기 위한 자동차, 남보다 높아지기 위한 직책. 돌아보면 그 모든 것이 내 욕심일 때가 많습니다. 중요한 것은 남의 시선이 아니라 내가 어떤 마음으로 살아가느냐입니다. 저 역시 욕심도 있었고, 실수도 했고, 수없이 넘어지며 살아왔습니다. 하지만 한 가지는 지키려고 합니다. ‘있으면 있는 대로 베풀고, 없으면 없는 대로 베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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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성진 대표가 짱구가 되어 제1회 내포신도시 모터 페스티벌을 홍보하고 있다. 사진=한성일 기자
돈이 없어도 따뜻한 말 한마디는 할 수 있고, 몸이 불편해도 누군가에게 웃음을 줄 수 있습니다. 내가 힘들다고 세상에서 내가 가장 불행한 사람인 것은 아닙니다. 나보다 더 어려운 환경에서 하루하루를 버티며 살아가는 분들이 많습니다. 그래서 저는 감사하며 살려고 합니다. 성공은 하루아침에 만들어지지 않습니다. 성공은 노력이고, 인내이고, 책임입니다. 그리고 진정으로 성공한 사람은 남에게 거만한 사람이 아니라 더 공손하고, 더 겸손하며, 자신이 가진 것을 나눌 줄 아는 사람이라고 믿습니다. 저는 대단한 사람이 아닙니다. 그저 어려운 시절을 살아왔고, 수많은 아픔을 겪었고, 지금도 부족한 것이 많은 평범한 사람입니다. 그래도 오늘 이 자리에서 누군가에게 작은 웃음 하나라도 줄 수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행복합니다. 사람들이 제 얼굴을 몰라도 괜찮습니다. 제가 어떤 직책인지 몰라도 괜찮습니다. 제가 얼마나 가진 사람인지 몰라도 괜찮습니다. 제가 남긴 웃음과 따뜻한 마음만 기억해 주신다면 그것으로 충분합니다. 인생은 결국 빈손으로 왔다가

빈손으로 돌아가는 길입니다. 좋은 옷도, 비싼 차도, 높은 직책도 영원히 가져갈 수 없습니다. 하지만 내가 누군가에게 베푼 마음, 함께 나눈 웃음, 어려운 사람에게 내밀었던 손길은 그 사람의 기억에 오래 남을 수 있습니다. 저는 돈으로 성공한 사람보다 사람으로 성공한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오늘도 눈이 불편하지만 짱구 탈을 쓰고 웃겠습니다. 몸이 불편하지만 할 수 있는 만큼 움직이겠습니다. 그리고 내일도 최선을 다해 살아가겠습니다. 금수저로 태어나지는 못했어도, 금수저보다 값진 마음으로 살겠습니다. 이것이 제가 살아온 인생이고, 앞으로 살아갈 인생입니다.

제 인생의 좌우명은 ‘사람답게 살자’, ‘겸손하게 살자’, ‘있을 때 베풀고, 없을 때도 나누자’, ‘그리고 끝까지 포기하지 말자’입니다. 사람의 가치는 입고 있는 옷이 아니라, 그 옷 안에 담긴 마음으로 결정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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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성진 대표가 제1회 내포신도시 모터페스티벌때 사용할 쿠폰을 살펴보고 있다. 사진=한성일 기자
-대표님, 마지막으로 중도일보 독자분들께 꼭 전하고 싶은 말씀을 해주실까요?

▲저는 어린 시절부터 가난했습니다. 친구들이 놀고 있을 때 저는 신문을 배달하고 주유소와 목욕탕에서 일했습니다. 1998년 17살 때 뺑소니 사고로 오른쪽 다리에 장애가 생겼습니다. 2000년 6월 23일에는 또다시 교통사고를 당해 오른손까지 장애를 갖게 됐습니다. 그렇게 몸이 불편해졌지만 살아야 했습니다. 그런데 2014년 12월, 망막색소변성증이라는 진단을 받았습니다. 앞으로 눈이 보이지 않을 수도 있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지금은 주변 시야가 거의 보이지 않고 정면의 좁은 부분만 볼 수 있습니다. 오늘은 볼 수 있는 것들이 언젠가는 보이지 않을 수도 있다는 생각에 두려울 때가 있습니다. 몸이 불편한 것은 참고 살아왔지만, 눈이 점점 보이지 않는다는 사실은 지금도 받아들이기 어렵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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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성진 대표는 타고난 천성이 착하고 선해서 어려운 사람을 보면 그냥 지나치지 못하고 꼭 돕고야 만다. 사진=한성일 기자
그래도 저는 살아가고 있습니다. 저에게는 지켜야 할 가족이 있고, 함께 일하는 직원들이 있고, 제가 책임져야 할 사업이 있습니다. 무엇보다 제가 살아온 어려운 시절을 잊고 싶지 않습니다. 그래서 어려운 학생들을 돕고 싶습니다. 제가 어렸을 때 누군가 조금만 도와줬다면 얼마나 큰 힘이 됐을까 하는 생각을 지금도 합니다. 이번 내포신도시 모터페스티벌도 그런 마음에서 준비했습니다. 학생들에게는 꿈을, 지역 상인들에게는 희망을, 주민들에게는 즐거움을 드리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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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애에 좌절하지 않고 항상 긍정적인 마인드컨트롤로 인생을 보람있게 채색해가는 최성진 대표. 사진=한성일 기자
제가 앞으로 얼마나 더 볼 수 있을지는 알 수 없습니다. 하지만 지금 제가 볼 수 있고 움직일 수 있을 때,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는 일을 더 많이 하고 싶습니다. 어려운 분들을 돕는 요양원을 만들고 싶은 꿈이 있습니다.

저는 장애를 이겨낸 대단한 사람이 아닙니다. 그저 수없이 넘어지면서도 다시 일어나려고 노력해 온 평범한 사람입니다. 제 이야기가 어려운 환경에서 살아가는 누군가에게 작은 용기가 된다면 그것만으로도 감사하겠습니다. 앞으로도 좌절하거나 포기하지 않고 살아가겠습니다. 그리고 제가 받은 도움과 사랑을 지역사회에 돌려드리겠습니다. 감사합니다.


대담, 정리=한성일 편집위원(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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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성진 대표.
사진=한성일 기자
-최성진 대표는 누구?

▲ 1981년 충남 보령시 주교면 송학리 출생.송학국민학교, 대명중학교, 주산산업고등학교, 혜전대 패션섬유공학과 중퇴. 더블유렌트카·내포렌트카 대표. (사)충청남도독립운동가연합회 이사. (사)백야 김좌진장군학술문화사업회 이사로 활동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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