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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계룡산성에서 출토된 여러 문양의 기와와 그릇 파편. 유성현의 상대동유적에서 기와가 제작돼 공급되었을 것으로 새롭게 추정됐다. (사진=중도일보DB) |
계룡산성에서 발견되는 기와가 지금은 아파트가 들어선 대전 유성구 상대동 유적에서 제조돼 공급되었을 가능성이 처음으로 제기됐다. 김기민 부경문물연구원 수석연구원은 국립공원공단 계룡산국립공원사무소와 국립공주박물관이 함께 지난 4일 개최한 '계룡산 학술발표회'에서 계룡산성에서 출토된 기와와 수막새 등을 분석해 이같이 밝혔다. 계룡산성에서는 현재까지 글자가 적힌 103점의 명문기와가 수집되었고, 토기 외면에 포목이나 직물 등을 대고 두드려 문양을 낸 타날문양 기와가 대다수인데 타날문양의 종류는 46개 형식에 이른다. 수집된 기와 대부분 파편 형태로 쪼개져 제작기법상의 특징을 파악하기 어려우나 해발 830m 높고 가파른 산악에 산성을 쌓고 그 안에 건물을 지었다는 유력한 증거가 되고 있다.
김기민 연구위원은 이날 발표자료를 통해 "대다수의 유물을 직접 관찰할 결과 통일신라시대 이전의 기와는 전혀 확인할 수 없었고, 전형적인 고려시대 이후 기화의 특징을 가지고 있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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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화유산으로 보호받지 않는 계룡산성에서는 고려 때의 것으로 추정되는 기와파편을 주어 등산객들이 탑을 쌓았다. (사진=중도일보 DB) |
특히, 명문기와 중에서 '守山造儒成(수산조유성)'의 문자가 여러 건에서 발견되는 것을 보아 이러한 기와는 계룡산 아래에 있는 유성현 지역에서 공급된 것으로 추정된다. 유성 지역에서 발굴조사된 옛 가마터는 신동과 둔곡동 등이 있는데 이들 지역은 조선시대의 기와가마로 계룡산성에서 사용한 기와의 공급지로 볼 수 없다고 분석했다. 계룡산성에서 동쪽으로 12㎞ 지점에 위치한 대전 유성구 상대동유적은 청동기시대 주거지와 삼국~통일신라시대의 석곽묘, 고려시대의 건물지와 연못 등이 조사됐다. 이곳에서 4기의 가마가 발견되고 다양한 명문기와가 출토되었는데 이를 통해 이곳을 유성현관(儒成縣官)으로 추정하는 연구도 있었다. 계룡산성에서 출토된 기와 중에 盖覆瓦(개부와·기와를 덮다)라는 문자와 함께 守山(수산)과 儒成(유성)이라고 여러 기와에 기재된 것으로 보아, 현재의 상대동 일대의 생산 집단이 만든 기와를 수산이라는 지역의 시공집단이 시공(공사)했을 것으로 추정했다.
김기민 수석연구위원은 "기와 사용의 시점과 계룡산성의 축성 시점이 일치한다는 근거도 명확하지 않은 상태"라고 전제하고 "대전 상대동유적의 가마에서 제작된 기와를 가지고 수산이라는 지역의 시공집단이 계룡산성에서 작업을 했을 것으로 추정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임병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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