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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대받던 발레리나들… 드가는 왜 그녀들을 그렸을까?

[백영주의 명화살롱]에드가 드가 ‘발레수업'

백영주 갤러리 ‘봄’관장

백영주 갤러리 ‘봄’관장

  • 승인 2014-10-29 16:44
▲ 드가 '발레 수업', 18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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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드가 '발레 수업', 1874


과감히 잘려나간 배경·인물… 사진술 이용해 전통적인 구성 뒤집기도
당시 쇼걸로 천대받던 발레리나들… 일거수일투족 그려낸 드가도 비판 받아
시간 지나며 그림에 대한 시선 변화… "그림은 말이 없다, 생각만이 변할뿐"



그냥 봐서는 매우 아기자기하게 느껴지는 그림이다. 왼쪽부터 큼지막하게 눈에 들어오는 노랗고 파란 색색의 리본들, 앙증맞은 튀튀와 바싹 틀어 올린 머리칼이 사랑스럽기만 하다. 아늑하면서도 다소 소란스러운 발레 연습실의 일상을 느낄 수 있지만, 당시 사람들의 눈은 좀 달랐던 것 같다.

에드가 드가는 파리의 오페라 하우스를 찾아가 발레리나들을 주로 그렸다. 공연을 펼치는 광경보다는 휴식을 취하거나 연습하는 모습을 주로 화폭에 담았다. 이 그림에서도 드가의 이런 취향은 잘 드러난다. 이런 방식을 통해 드가가 보여주려고 한 것은 자발적이고 자연스러운 자세나 동작이었다.

이 그림은 사진처럼 발레 연습 시간에 볼 수 있는 어떤 한 순간을 잡아냈다. 하지만 이는 순간의 포착‘처럼’ 보이는 것일 뿐, 드가는 작업실에서 포즈를 취한 발레리나들을 수없이 드로잉하면서 각 인물들의 동작을 따로따로 연구했다. 공간 구성은 방의 구석에 초점을 맞추어 배경 대부분을 화면에서 잘라내는 과감한 구도를 선보였다. 그리고 다른 인상주의 화가들과는 달리 실내에서 주로 그림을 그리면서 순간에 포착된 인물의 표정과 움직임, 분위기를 화폭에 담았다.

▲ 드가 '무용 수업 동안에(카르디날 부인)', 18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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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드가 '무용 수업 동안에(카르디날 부인)', 1878

색채 사용은 일본 판화에서 부분적인 영향을 받은 것이며, 인물군을 중심에서 떨어진 위치에 놓거나 프레임 밖으로 잘려나간 것처럼 묘사한 극적인 구성도 일본 판화에서 가져왔다. 사진에도 관심이 많았던 그는 사진술을 이용해 전통적인 구성을 뒤집기도 했다.

발레리나들은 자연스러운 동작으로 교사의 말을 듣고 있다. 이 그림은 발레 수업보다 교사에게 더 비중을 두었다고 볼 수 있는데, 그림의 구도 자체가 교사를 중심으로 짜여있기 때문이다. 자세히 보면 그림을 구성하는 시선이 약간 위에서 아래로 내려가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구성의 소실점은 바닥에 있다. 지도 교사가 지팡이로 짚고 있는 곳 역시 바닥이다. 드가의 현실주의를 느낄 수 있다.

드가가 화려한 공연보다 무대 뒤에서 이뤄지는 이런 평범한 현장에 주목한 까닭이 바로 이것. 겉으로만 보면 다양한 동작들을 아무렇게나 그린 것처럼 보이지만 모든 동작이 치밀하게 배치되었다. 수업을 열심히 듣는 학생들은 몇 명에 지나지 않으며, 대부분은 팔짱을 끼고 잡담하거나 등을 긁는 등 한눈을 팔고 있다. 왼쪽 밑의 분무기나 소녀 옆의 강아지 역시 그의 유쾌하면서도 예리한 관찰력이 드러나는 부분이다.

▲ 장 베로 '오페라 무대 뒤', 18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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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장 베로 '오페라 무대 뒤', 1889

지팡이를 들고 있는 교사를 중심으로 발레리나들은 자기 차례를 기다리고 있다. 오른쪽 원경에 자리 잡은 이들은 발레리나의 어머니들이다. 우아해 보이는 겉모습과 달리 19세기 파리에서 발레리나는 소위 ‘스폰서’가 붙기도 하는 쇼걸이나 다름없었다. 부르주아들은 새로운 예술 장르에 관심을 돌리는 동시에 아름다운 발레리나와 연애를 일삼고, 그들의 스폰서가 되었다.

부모들은 부유한 이에게 자기 딸을 소개하거나, 아니면 그들의 유혹으로부터 딸을 보호하기 위해 수업에 들어왔다고 한다. 이런 현실은 장 베로의 <오페라 무대 뒤>나 드가의 <무용 수업 동안에(카르디날 부인)> 등에서 어렴풋이 나타나고 있다. 이런 취급을 받던 발레리나였기에 그들의 일거수일투족을 그려낸 드가 역시 비판받았다.

하지만 후대에 발레리나가 예술가로서 인정받게 되면서 드가의 발레 연작을 바라보는 시선도 많이 바뀐 것이다. 이제는 발레리나 그림을 집에 걸어두어도 뒤에서 안 좋은 소릴 들을 일은 없다. 오히려 그 아름다움으로 인해 각종 예술 작품의 소재가 되기까지 한다. 그림은 말이 없다. 단지 이를 둘러싼 생각만이 변할 뿐.

백영주 갤러리 ‘봄’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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