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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요는 삶의 축] 52. 술 한 잔 해요

‘무삼불과망’ 단상

홍경석

홍경석

  • 승인 2017-02-16 00:01


“술 한 잔 해요 날씨가 쌀쌀하니까 ~ 따끈따끈 국물에 소주 한 잔 어때요 ~ 시간 없다면 내 시간 빌려줄 게요 ~ 그대 떠나간 후에 내 시간은 넘쳐요 ~ 눈치 없는 여자라 생각해도 좋아요 ~ 난 그냥 편하게 그대와 한잔하고 싶을 뿐 ~”

가수 지아(Zia)의 <술 한 잔 해요>라는 곡이다. 술을 일컬어 백약지장(百藥之長)이라고도 하는데 이는 ‘모든 약 중에서 제일가는 것’이라는 뜻으로 술의 별칭(別稱)이다. 하지만 과연 그럴까?

뭐든 마찬가지겠지만 술 또한 과유불급(過猶不及)의 정도를 넘어서면 되레 술이 사람을 마시기에 이른다. 때문에 적당한 음주는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그러나 술을 좋아하는 사람치고 과음을 하거나 만취에서 기인한 실수를 안 하는 사람은 드물다.

반면 술을 마시면 마실수록 정신이 또렷해지고 심지어는 호랑이까지 때려잡은 사나이가 있었으니 그가 바로 <수호지>에 나오는 호걸 중 한 명인 무송(武松)이다. 무송이 형인 무대를 만나고자 고향으로 가던 중 경양강(景陽崗)이라는 험준한 고개를 넘어야 했다.

어느덧 해가 뉘엿뉘엿 저물어갈 무렵 무송은 고개 아래에 있는 주막을 발견한다. 그런데 주막에는 ‘삼완불과강(三碗不過崗)’이라는 글이 씌어 있었다. 그건 ‘술 석 사발을 마시면 고개를 넘지 못 한다’는 뜻이었다.

이에 궁금증이 발동한 무송이 물어보니 주막의 주인은 자기 집 술이 너무도 독한 나머지 문을 나가자마자 쓰러질 정도라고 했다. 때문에 아무리 돈을 내고 마시는 손님일지라도 한 사람에게 석 사발 이상의 술은 팔 수 없다고 강조한다.

그렇지만 두주불사의 장사인 무송에겐 어림 반 푼어치도 없는 얘기로 들렸다. “나는 술을 마실수록 힘이 더 나는 사람이다.”라며 호언장담한 무송은 그예 18사발이나 되는 술을 마시고야 만다. 만류하는 주인의 손마저 뿌리친 그는 호기롭게 주막을 나선다.

그러고는 만취 상태에서 어두운 고갯길을 걷던 중 때마침 나타난 큰 호랑이와 일대 격전을 치른다. 그 호랑이를 맨손으로 때려잡은 무송은 이후로 ‘무송타호(武松打虎)의 영웅’으로 자리매김한다.

형과 재회한 무송은 색정(色情)이 좔좔 흐르는 형수 반금련이 영 마음에 차지 않아 불안했다. 아니나 다를까 무송과 사뭇 달리 못 생기고 약골이면서 변변찮은 남편 무대에게 실망한 금련은 마을의 유지 서문경과 눈이 맞으면서 급기야 통정을 하기에까지 이른다.

무송이 잠시 집을 비운 사이 금련은 문경과 집 앞 과부와도 공모하여 무대를 살해한다. 이에 격분한 무대는 그들을 죽인 뒤 맹주로 귀양을 간다. 한데 소문난 장사는 어디서든 알아주는 법이다.

귀양을 간 무대는 감옥을 관리하던 전옥(典獄)의 아들 시은의 부탁으로 동네 건달이자 힘이 천하장사인 장문신과 대결을 벌이게 된다. 그가 있는 곳으로 가던 날 무송은 시은에게 쪽지를 보여주는데 거기엔 ‘무삼불과망(無三不過望)’이라고 적혀 있었다.

의아해하는 시은에게 무송은 “나는 술이 없이는 싸울 힘과 기분이 나지 않는다. 고로 장문신과의 격전지인 쾌활림까지 가는 길에 보이는 주막마다 석 사발씩 술을 마시게 해 달라”고 부탁한다. 그리곤 무송은 보란 듯이 보이는 주막마다 들러 술을 마시는데 그 양이 엄청났다.

그랬음에도 장담한대로 그는 만취한 상태에서도 소문난 역사 장문신을 거뜬히 무찌른다. 이에 시은은 다시금 무송을 칭찬하면서 거하게 술을 산다. 중국은 너른 국가답게 술 또한 지역마다 만드는 종류가 5000여종이나 된다고 한다.

반면 우리나라 주당들은 식당에 가도 소주 아니면 맥주라는 어떤 이분법(二分法)의 술만을 골라야 한다는 ‘안타까움’이 실재한다. 지금과 달리 총각 시절엔 육류를 거의 먹지 않았다. 그래서 단골로 갔던 포장마차에선 들어서기가 무섭게 소주 세 병과 김밥 한 줄을 주문하기 일쑤였다.

김밥엔 시원한 콩나물국이 서비스로 나왔는데 빈 밥 그릇 세 개를 따로 요청했다. 그리곤 그 그릇에 각각 소주를 한 병씩 따른 뒤 숨도 안 쉬고 냅다 들이켰다. 이어 콩나물국을 후룩후룩 마신 뒤 셈을 치를라 치면 주인아줌마의 눈이 토끼처럼 커지곤 했다.

“그 술을 벌써 다 드신규?” 세월엔 장사 없다고 지금도 그리 마셨다간 내일 아침엔 아마도 내가 죽었다는 부음(訃音)이 날아갈 게다. 아무튼 고된 야근을 하자면 항상 잠이 부족하다. 따라서 쉬는 날엔 소주와 친구가 되기 십상이다.

술기운을 빌려 밀렸던 잠을 자야 하는 때문이다. 이런 현상에 대하여 건강을 생각해서 아예 술을 끊으란 이도 없지 않다. 허나 아직 건강하니까 술도 먹는 거란 편견이 더 우세하다. 물론 무송과 같은 괴력의 ‘무삼불과망’은 언감생심이지만.

<술 한 잔 해요> 노래가 이어진다. “괜찮다면 나와요 우리의 사랑이 뜨겁던~ 우리의 사랑을 키웠던 그 집에서 먼저 한 잔 했어요~” 포장마차서 만나 사랑을 꽃피웠던 시절이 어느덧 아스라하다.

“술 좀 작작 마셔!”를 연발했던 아내도 지쳐서 아예 치지도외(置之度外) 하는 지 오래이다. 날씨가 헛헛하게 춥다. 마음까지 바람처럼 통하는 친구와 술을 나누고 싶다. 술은 날씨가 쌀쌀해야 제맛이다. 따끈따끈한 국물은 기본 옵션이다.

홍경석 / <경비원 홍키호테> 저자 & <월간 오늘의 한국> 대전·충청 취재본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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