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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요는 삶의 축] 297. 미워하지 않으리

못 말리는 푼수데기

김의화 기자

김의화 기자

  • 승인 2017-11-12 11:18
정원미워하지 않으리
지금으로부터 35년 전, 결혼 후 이듬해 아들을 낳았다. 너무도 기뻤던 나머지 친구들을 불러내서 술을 샀다. "나도 이제부턴 아빠다!" 친구들은 공술에 취하면서도 연신 축하한다는 덕담을 잊지 않았다.

그러나 비척비척 빈주머니로 돌아온 내게 아내는 '푼수데기'라며 놀렸다. 아들이 생후 백일도 되기 전에 근무지가 변경되어 인천으로 갔다. 모시고 있던 소장님이 급하다며 돈을 빌려달라고 했다.

하지만 곧장 함흥차사가 되는 바람에 아들의 백일잔치는 어렵사리 치를 수밖에 없었다. 아내는 '바보 천치'라며 싸다듬이(매나 몽둥이로 함부로 때리는 짓)에 버금가는 막말을 했다. 세월은 흘러 딸이 서울대학교에 합격했다.



감격에 겨워 눈물 반 웃음 반으로 정신이 없었다. 그 와중에도 너무 좋아서(!) 회사 직원들을 죄 데리고 가서 거하게 술과 밥을 샀다. 아내는 역시도 '푼수데기'라고 흉봤다. 얼마 지나지 않아 아들이 대기업의 취업에 성공하여 교육을 받으러 갔다.

역시도 기분이 찢어지길래 친구들과 술독에 빠졌다. 아내는 지쳤는지 그로부턴 '푼수데기'라는 말을 금했다. 푼수데기는 생각이 모자라고 어리석은 사람을 낮잡아 이르는 말이다. 얼마 전 야근 중 회사에 중대한 사건이 발생했다.

그러나 그날의 근무자 두 사람이 슬기롭게 대처한 덕분에 큰 화(禍)를 면할 수 있었다. 회사에선 그 공훈(功勳)을 인정하여 조만간 표창을 한다고 했다. 그 두 사람은 공교롭게(?) 예전과 현재의 야근 짝꿍, 즉 나의 업무적 파트너(였)다.

따라서 마치 내 일인 양 반갑기 그지없었다. "축하합니다! 제가 술 한 잔 살게요." 사람은 보통 두 가지 성향으로 나뉨을 볼 수 있다. 무언가 좋은 일이 있을 적에 전자(前者)는 동네방네 소문을 내가면서 술까지 산다.

반면 후자(後者)는 쉬쉬하면서 자신만 그 기쁨을 독식한다. 나는 물론 전자에 속한다. 오늘 신문에서 이재무 시인의 '나는 벌써'라는 의미심장한 시를 접했다.

정원
- 삼십 대 초 나는 이런 생각을 하며 살았다. 오십 대가 되면 일에서 벗어나 오로지 나 자신만을 위해 살겠다. 사십 대가 되었을 때 나는 기획을 수정하였다. 육십 대가 되면 일 따위는 걷어차 버리고 애오라지 먹고 노는 삶에 충실하겠다. 올해 예순이 되었다 칠십까지 일하고 여생은 꽃이나 뒤적이고 나뭇가지나 희롱하는 바람으로 살아야겠다. 나는 벌써 죽었거나 망해버렸다. -

그러고 보니 나도 어느덧 새해면 예순이다. 벌어놓은 건 쥐뿔도 없고 빚과 주름만 누적됐다. 아내가 지적한 바 있는 '푼수데기'가 아닐 수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불이물희 불이기비(不以物喜 不以己悲)', 즉 물(物)로써 기뻐하지 않으며 자기(己) 때문에 슬퍼하지 않겠노라는 의지는 여전하다. 왜? 갈 때는 누구나 빈손이기에.

"목숨 걸고 쌓아 올린 사나이의 첫사랑 ~ 글라스에 아롱진 그 님의 얼굴 ~ 피보다 진한 사랑 여자는 모르리라 ~ 눈물을 삼키며 미워하지 않으리 ~" 정원의 <미워하지 않으리>다. 내가 나를 미워하는 것만큼 어리석은 게 또 있을까. 두 직원의 우수사원 수상을 거듭 축하한다.

홍경석 / <경비원 홍키호테> 저자 & <월간 오늘의 한국> 대전·충청 취재본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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