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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요는 삶의 축] 305. 사랑은 돈보다 좋다

세책방(貰冊房) 단상

김의화 기자

김의화 기자

  • 승인 2017-11-2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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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젠가 사위가 집에 왔을 때다. 나의 서재(書齋)에 들어선 사위가 '깜놀'했다. 그도 그럴 것이 서재에 가득한 책들과 각종의 자료를 모은 클리어화일, 거기에 아이들이 유치원 시절부터 받은 상장까지 잔뜩 진열돼 있는 때문이었다.

"언제부터 이렇게 수집하셨어요?" "아이들이 어려서부터 했지." "저는 이사하는 와중에 다 분실했거든요." 추측하건대 사위 역시 명문대 출신인지라 어려서부터 받은 상장은 상당했을 게다. 우리 집은 빌라인데 방이 세 개다.

그중 하나는 지금의 이 글을 쓰는, 나름 나의 '공부방'이다. 가득한 책들만 보면 안 먹어도 배가 부르다. 반면 '깔끔쟁이' 아내는 늘 그렇게 타박이다. "안 보는 책은 좀 갖다 버려!" 여기로 이사를 온 건 3년 전이다.



전에 살던 집에선 책만 따져도 1000권 가량이나 보관했었다. 따라서 이사를 하면서는 그 책을 얼추 다 버려야 했다. 그래서 어찌나 아깝던지......! 포항에서 발생한 지진만 아니었더라도 올 수능은 이미 지난 11월 16일에 끝났어야 했다.

수능에 맞춰(?) 고등학교 3학년 학생의 대부분은 그동안 배웠던 문제집과 참고서 등을 죄 버렸다고 한다. 수험생들이 이처럼 수능 전날에 책을 버리는 의식(儀式)이 본격적으로 등장하기 시작한 건 2007년 무렵이라고 알려져 있다.

이러한 행위는 수능에서 결코 떨어지지 않겠다는 결연한 의지를 다지려는 일종의 배수진으로도 보인다. 그렇긴 하지만 책이라는 건 언제든 다시 볼 수 있는 것임에 굳이 버릴 필요까지야 있을까 싶다.

예전엔 자신이 배운 책을 후배에게 물려주기도 했는데 지금은 그런 전통마저 사라진 듯 싶어 조금은 아쉽다는 느낌이다. <조선의 베스트셀러>(저자 이민희 / 출간 프로네시스)를 보면 조선시대에도 책 대여점이 있었다고 한다.

조선시대에 책(冊)을 빌려주던 집을 일컬어 세책방(貰冊房)이라고 했다. 조선 시대 '세책방'은 오늘날의 책 대여점과 마찬가지였다. 대중적이고 가벼운 읽을거리들에 대한 대중의 요구에 발맞추어 성행하게 된, 언문소설에 대한 당대의 강력한 욕구에 의해 발달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또한 조선시대의 선비들은 대부분 자신의 서재를 갖고 있었다고 한다. 그들은 서재에서 자신을 성찰하고, 세상에서 묻힌 먼지를 닦아내는 씻김의 공간으로까지 활용했다고 전해진다.

아들은 자신이 대학 시절에 배웠던 전공과목의 교재와 참고서 따위들을 여전히 버리지 않고 보관하고 있다. 때문에 아들이 집에 와 서재에서 자신의 책을 꺼내어 보는 모습에선 내가 마치 세책방의 주인인 듯한 느낌까지 들어 흐뭇하다.

평소 술을 물 마시듯 좋아하지만 사는 형편은 그에 맞게 헛헛하다. 하여 박주산채(薄酒山菜)로 음주하지만 책만큼은 가득하기에 거기서 난 행복을 느낀다. "사랑에 미쳐는 봤니 ~ 사랑에 올인 해 봤니 ~ (중략) 아무리 돈이 좋아도 사랑과 바꿀 순 없어 ~"

태진아의 <사랑은 돈보다 좋다>이다. 돈을 싫어하는 사람은 없다. 하지만 그 돈은 나 같은 무능력자에겐 고개조차 돌리지 않고 있다. 그래서 나는 여전히 "책들은 돈보다 좋다"며 짐짓 마음에도 없는 소리를 허황되게 떠벌리고 있는 건지도 모르겠다.

홍경석 / <경비원 홍키호테> 저자 & <월간 오늘의 한국> 대전·충청 취재본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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