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전국
  • 충북

[기고] 삼일절, 그날을 잊지 말자.

최병수 기자

최병수 기자

  • 승인 2018-02-22 12:07
송만호
충북북부보훈지청 보상과장 송만호

1919년 3월 1일, 그 날은 고종의 장례식을 불과 이틀 앞둔 날이었다.

고종은 45년간 재위한 조선의 마지막 왕이었다.



고종은 1919년 알 수 없는 이유로 사망했다.

일제 강제 병합 속에서도 고종은 조국에 대한 민중들의 희망이었다.

지도자의 부재를 체감한 민중들의 심정은 얼마나 참담했을까.

우리 후손으로서는 감히 헤아리기 힘들 정도였을 것이다.

상실의 설움은 9년간 겪어 온 일제의 잔인한 통치에 대한 분노와 결합됐다.

힘없는 민중도 밟히면 그대로 밟히지 않는다는 걸 보여줬다.

기미독립선언서 낭독을 시작으로 어린 학생들이 작은 손에 태극기를 흔들며 탑골공원에 모여 들기 시작해 노동자, 농민, 상공인 등 각계각층의 민중들이 '대한독립만세'를 외쳤다.

서울에서 시작해서 전국 200여 군데로 불붙듯이 일어나 만세 소리와 태극기 물결로 거리를 가득 메웠고 그 물결은 만주와 연해주 등 해외에 사는 동포들에게도 이어졌다.

일본 헌병들이 총칼을 들이대도 많은 사람들이 무기 하나 없이 맨손에 태극기 하나를 들고서 하나밖에 없는 목숨을 걸고 독립만세를 외쳤다는 것이 놀랍고 감격스럽다.

3.1운동은 우리나라의 꺾이지 않는 독립의지를 보여준 사건이었다.

우리민족은 9년간 강고하게 구축된 일제의 식민 지배 체제 하에서 절망하고 한탄하거나 누군가가 독립시켜주기만을 바라지 않았다.

개개인이 스스로 암담한 현실을 변화시키기 위해 거리로 나가 독립만세를 외쳤다.

3.1운동 이후 바로 독립을 얻었던 것은 아니다.

하지만 그동안 산발적으로 이루어지던 항일투쟁의 구심점이 될 대한민국임시정부를 수립하게 하는 계기가 됐다.

그리고 국내적으로 사회 경제 문화에 걸쳐 민족운동을 벌였으며 국외적으로 의거활동 무장독립투쟁 일어나는 등 결과적으로 독립운동이 더 활발해지게 하였다.

또한 3.1운동은 중국의 5·4운동, 인도 간디의 비폭력·불복종 운동, 베트남, 필리핀의 민족운동 등 세계 약소국의 독립운동에 직간접적으로 영향을 미쳤다고 평가받는다.

주권과 자유를 위하여 스스로를 산화하신 선열들의 숭고한 정신과 희생이 범세계적으로 어마어마한 결과를 만들어낸 것이다.

가히 고개가 절로 숙여진다.

잊지 않는다는 것은 곧 미래를 향한 움직임이다.

일제강점기 해방을 위해 노력하던 이들은 해마다 3월1일이 되면 몰래 기념식을 치렀다.

기념 투쟁을 벌이다 경찰과 충돌한 경우도 많았다.

3.1운동의 정신을 잊지 않기 위한 몸부림이었다.

잃어버린 우리의 조국을 되찾기 위해 치열하게 투쟁했던 역사를 결코 잊어서는 안 될 것이다.

그런 역사가 있었기에 우리는 지금 이렇게 독립된 국가에서 살고 있고, 우리글과 우리말을 마음껏 쓸 수 있고, 이번 동계올림픽에서 대한민국을 외치며 마음껏 응원할 수 있는 것이다.

숭고한 희생을 해주신 분들 덕분에 독립의 기틀을 마련했던 1919년 3월 1일, 그 날을 잊지 않고 삼일절을 기념하여 국기계양도 잊지 않길 바란다.



중도일보(www.joongdo.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 금지

기자의 다른 기사 모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