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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국에서] 남 탓에서 시작되는 음모설

이건우 기자

이건우 기자

  • 승인 2020-04-26 12:02
사람들은 감내하기 힘든 막다른 환경에 직면하면 이성을 잃기에 십상이다. 그리고 그 원인을 자신에게서 찾는 것이 아니라 외부, 즉 '남 탓'으로 돌린다. 특히 상황이 힘이 들수록 이런 경향은 강해진다. 평범한 시민들의 경우에는 "얼마나 힘이 들면 그렇겠어…"용인하고 위로하기도 한다. 하지만 코로나19 범유행처럼 사회, 국가적 범위의 사태에서는 이야기가 달라진다. "너 때문에, 너희 때문에 내가 이렇게 힘들게 됐다"라고 희생양을 찾는다.

특히 당면한 사태를 해결해야 하는 사회 기득권자<집권세력>일 때 두드러진다. 가진 것, 권력을 지키기 위해 자신들은 잘못한 게 없다고 강변한다. 그리고 결국은 책임을 떠 넘기기 위해 술수를 부린다. 가짜뉴스를 양산해 초점을 흐리고 더 나아가 증거조작까지 서슴지 않으면 적대 세력에 책임을 뒤집어씌우기도 한다. 이런 경우 회자하는 것이 이른바 음모론이다. 음모론의 사전적 정의는 '사회에 큰 반향을 일으킨 사건의 원인을 명확히 설명할 수 없을 때 그 배후에 거대한 권력이나 비밀스러운 조직이 있다고 여기며 유포되는 소문'이다.



음모론은 과거부터 면면부절 이어져 왔다. 대표적인 것으로 세계의 경제, 정치를 조종하는 절대적인 막후 세력이 있다는 그림자 정부론이다. 우리나라 역사에서는 조선 중종(中宗) 14년(1519)에 벌어진 기묘사화가 대표적이다. 주초위왕(走肖爲王 - 주(走)와 초(肖)를 합치면 조(趙)가 된다. 즉 조씨가 왕이 된다는 뜻)을 빌미로 조광조로 대표되는 사림세력을 숙청한 사건이다. 당시 개혁세력인 사림파를 제거하기 위해 훈구파들이 나뭇잎에다 주초위왕이라고 꿀을 바르고 벌레가 파먹게 했다고 전해진다. 또 아픈 기억인 1923년 일본의 관동대지진 때 조선인 대학살도 이 범주에 속한다. 당시 일제는 대지진으로 사회가 공황에 빠지자 의도적으로 '조선인이 폭동을 일으켰다'라는 거짓 소문을 퍼트려 6000명의 생명이 희생됐다. 여기에 더해 4·15총선과 관련한 사전투표 조작설도 있다. 일부 보수 유튜버의 주장에 차명진, 민경욱 등 미래통합당 낙선자들이 가세하고 있다. 단순한 촌극으로 간주하기에는 씁쓸하다.

음모론은 코로나19 사태에서도 세를 얻고 있다. 중국의 우한 시장에서 시작된 것이 아니라 연구소에서 인위적으로 만들어졌다는 생물학무기설, 5G 네트워크가 확산시킨다는 설 등이 그것이다. 이런 설의 배경에는 초기 실패로 엄청난 인명 피해와 사회경제적 혼란을 초래한 미국의 트럼프 대통령 등 서양의 지도자들과 동양보다 인종·경제·문화적으로 우월하다는 자존심에 상처를 입은 유럽인들의 이해득실이 맞아 떨어져 생명력을 얻은 것으로 짐작된다. 하지만 결론은 이러한 '남 탓'은 사태 해결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우선 생명부터 구해야 하지 않을까.
이건우 기자 kkan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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