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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속으로] '일류'의 품격

김명주 충남대 영어영문학과 교수

신성룡 기자

신성룡 기자

  • 승인 2021-04-26 08: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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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명주 교수
코로나 방역 후진국이라는 오명을 뒤집어썼던 미국이 최근 자축 분위기로 돌아섰다. 미국은 과학과 의학 기술은 세계 최고를 자랑하면서도 기술과 의료 서비스 면에서는 후진성을 면치 못했다. 그러던 미국이 스스로 개발한 백신을 활용해 최근 2억 명 백신 투여에 성공했다.

CIDRAP(전염병 연구정책 센터)의 4월 21일 자 뉴스에 따르면, 미국은 바이든 취임 후 58일 만에 1억 명 접종 목표를 달성했고, 예정보다 빨리 92일 만에 2억 명 백신을 투여하는 '기적' 같은 일을 해냈다. 방역의 실패는 후진적 서비스와 국민의 협조 부족 때문이었지만, 백신 접종의 성공은 무엇보다도 ‘일류’ 과학자들의 신속한 백신 개발 덕분임을 부정할 수 없다.

그런데 반해 우리나라의 경우는 백신 접종이 4월 16일 자 기준으로 0.1%라고 한다. 4월 19일 자 뉴욕타임스는 우리나라의 접종률이 3% 정도라고 보도했다. 게다가 백신 개발은 내년쯤에 가능하다고 한다. 보도에 따르면 5개 기업 6종의 백신이 국내에서 개발 중이지만 올해 안에는 개발이 완성될 가능성은 적다고 한다. 대체 우리의 백신 개발은 왜 이렇게 늦은 것일까.



오스트레일리아 시드니 대학 전염병 백신 전문가 교수인 로버트 부이(Robert Booy)는 한국처럼 방역에 성공한 나라는 백신에 대한 절박함이 부족해 접종이 늦다고 말한다. 그럴듯하다. 접종률이 낮다는 비판에 대해 중대본은 일상생활을 유지하는 우리의 방역방식, 적은 환자 수, 낮은 사망률을 함께 고려해야 한다고 해명했는데, 중대본의 해명은 우리의 상황이 비교적 좋아서 백신에 대한 절박함이 적다는 부이교수 말이 타당함을 확증해준 셈이다. 그런데 백신 접종이 절박하지 않다는 뜻은 백신 개발도 절박하지 않다는 뜻일까. 암튼 다른 선진국에 비해 늦어지는 것은 사실이니까.

국민은 자신을 희생하고 절제하면서 방역에 성공했는데, 그 성공을 믿고 일류 과학자들은 백신 개발에 행여 느긋한 것일까. 소위 학력과 지력으로 자칭 일류임을 뽐내던 자들은 다들 어디에 있는가. 그들이 평소 자랑스러워하는 능력만큼 그들은 사회적 책임을 다하고 있는가.

책임은 능력에 비례한다. 능력이 있는 사람들은 대우도 받지만, 대우만큼 더 많은 책임을 지는 것이 여럿 사는 사회의 상식이다. 능력만큼 책임을 다하는 것이 일류의 품격을 지키는 일이다. 일류가 품격을 지키려면 평소 실력을 잘 닦아 두어야 한다. 부단히 실력을 닦아두어야 새로운 문제가 생겼을 때 그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 그렇지 않으면 일류 운운은 공염불이다.

미국의 경우 방역의 실패는 트럼프를 비롯한 대다수 국민의 무지와 나태 탓이며, 미국 백신 개발의 성공은 소위 실력 있는 일류 덕이다. 반면 한국은 정반대다. 방역의 성공은 국민 덕이고, 백신 개발의 더딤은 일류 탓이다. 한국 방역의 성공은 무엇보다 절제력 있고 공동체 정신이 강한 국민 대다수 덕이다. 국민은 자신의 몫을 다했다. 그렇다면 사회 지도층 인사들과 자칭 일류들은 자신들의 몫을 다하고 있는가. 자타가 공인하는 일류는 일류의 품격을 지키고 있는가.

4월 19일 자 일간지에 일류라고 하는 서울대 총장과 카이스트 총장의 대담이 실렸다. 그들은 '최고를 지향하고 독창성을 추구'하는 '일류정신', '품격'의 부재를 아쉬워했다. 일류대학들이 일류의 품격을 지니지 못해 백신 개발이 늦어졌다는 자성이다. 지식은 풍부하되 지성이 없는 일류, 특권을 누리기만 하고 책임을 다하지 못하는 일류들은 이제 자진해 이류가 되시거나, 등급하락이 싫다면 힘차게 분발하시길 감히 요청한다. 이는 백신 개발에만 해당하지 않는다. 일류를 자랑하기 전에 일류에 걸맞은 사회적 책임을 다할 수 있어야 할 것이다. 일류 총장들의 자성이 말로만 그치지 않길 바란다./김명주 충남대 영어영문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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