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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오디세이] 세인트헬레나에서 온 편지, 황은선의 꿈

이승선 충남대 언론정보학과 교수

윤희진 기자

윤희진 기자

  • 승인 2022-02-07 08:22
이승선 교수
이승선 교수
벨라 차오(Bella Ciao). '사랑하는 이여 안녕'이라는 이탈리아 노래다. 어느 날 아침, 창문 너머로 총을 든 침략자들을 보았다. 조국이 적에게 점령당했다. 파르티잔이 되어 싸우기로 했다. 사랑하는 이는 아직 잠들어 있다. 벨라 차오. 파르티잔으로 싸우다 죽거든 산에다 묻어다오. 무덤가에 아름다운 꽃송이 피어나겠지. 지나가는 사람들이 그 꽃을 보거든, 아름다운 파르티잔 꽃이라고 부르게 해다오. 벨라 차오. 이태리 북부 강가 가난한 농민들의 노래였다. 세계대전 전후 반파시즘 저항군들의 무장가였다. 유고 내전에서는 자유를 갈망한 사람들의 저항요였다. 조지 오웰의 활동지이기도 한 스페인 카탈로니아 시민들이 불렀다. 촛불 집회 때 서울의 광화문에서도 불렸다. 벨라차오는 자유와 평화를 갈구하는 노래다. 나폴레옹 보나파르트를 비켜갈 수 없는 이유다.

근대는 유럽의 두 가지 혁명에 빚졌다. 하나는 독일사람 구텐베르크의 활판술이다. 정보와 지식을 확산시켰다. 다른 하나는 프랑스 혁명과 나폴레옹 전쟁 때문에 퍼진 시민의 자유와 평등사상이다. 나폴레옹은 섬에서 태어나 섬에서 죽었다. 출생지는 코르시카 섬이다. 훗날 이태리에 흡수된 제노바의 땅이었다. 그는 프랑스 통령이 되고 황제가 되었다. 권불 이십년. 전쟁에 패해 지중해 엘바 섬에 유배되었다. 섬을 탈출해 다시 황제에 등극했으나 백일천하였다. 워털루에서 진 그는 영국령 세인트헬레나 섬에 유폐되었다. 아프리카 서해안에서 칠 천리 떨어진 절해고도였다. 그는 거기서 생을 마쳤다. 51세였다. 세인트헬레나는 콘스탄티누스 황제의 어머니 성녀 헬레나의 이름을 가져왔다. 세계 최고의 커피 생산지로 명성이 높다. 생산량은 200㎏ 아래다. 대부분 영국 왕실에 간다. 극히 미량을 나라별로 몇 해 걸러 경매에 부친다.



서예가 황은선의 꿈은 무용가였다. 연습 중에 부상을 입어 진로가 바뀌었다. 피아노 연주로 여러 차례 수상했다. 대학졸업 후 학생들에게 음악을 가르쳤다. 서른 해 전 서예에 입문했다. 스승은 그를 아름다운 산, 가산이라고 불렀다. 호가 되었다. 밤새워 한지에 글을 썼다. 졸음을 쫓으려고 커피를 마셨다. 커피에 빠졌다. 바리스타 프로그램을 이수했다. 좋은 커피는 기품이 달랐다. 커피를 분별하러 나라 안 곳곳을 훑었다. 커피 명인을 찾아 도쿄와 후쿠오카에 갔다. 좋은 커피를 익히려는 단 한 가지 목적을 위해 이태리, 프랑스, 독일, 스위스를 누볐다. 깨달음을 얻었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좋은 커피는 좋은 공간을 의미했다. 그는 말과 글의 생일인 한글날에 카페를 열었다. 좋은 사람들이 만나 서로 스며드는 포럼을 제공하고 싶었다. 좋은 커피를 추구한 그에게 정현종 시인의 '방문객'처럼, 그 귀하다는 세인트헬레나 커피가 왔다. 정부화폐와 원두 인증서도 동봉되었다.

황은선은 꿈꾸는 어른 소녀다. 그의 농장에서 세인트헬레나 수준의 원두를 얻는 꿈이다. 그에 따르면 한지에 스며드는 먹처럼, 사람의 마음에 스며드는 것이 세인트헬레나 커피다. 떠난 후에도 그 향이 오래 남는 사람마냥, 부드럽고 진한 여운이 오래간단다. 어떤 사상가는 스며드는 것을 대상적 활동으로 보았다. 너는 나에게 스며들어 나를 바꾸고 너에게도 내가 스며들어 너 또한 달라졌나니, 세인트헬레나 커피의 맛과 향이다. 황은선은 한글날이 되면 여염집 가게의 커피 한 잔 값으로 세인트헬레나를 내놓는다. 시민의 자유와 평등의 기치를 전파한 황제의 커피. 어떤 맛에 스며들지는 방문객의 몫이다.

세인트헬레나는 아주 작은 양을 다른 원두에 섞어 끓여도 맛의 품격을 끌어올린다고 한다. 그 자체로 고귀할뿐더러 다른 이들과 섞여 조용히 조직을 빛나게 하는 보석 같은 존재다. 시민들은 서로 원수를 진일도 없는데, 이념의 편을 갈라 그림자 앙숙으로 살아가고 있다. 편향 오염된 정보를 일방적으로 편식한 것도 원인의 하나일 터이다. 이념과 파당을 넘어 독자 누구에게나 스며들어 감동을 주는 세인트헬레나 커피 같은 언론인의 역할이 절실한 때다. 경제적 이익과 정치적 편향을 내세워 시민들을 호도한 빚을 갚는 길이기도 하다. 소속된 언론사 이름의 옷을 벗더라도 독자적이고 고유한 글과 정보로 시민들에게 스며드는 언론인들이 많아지기를 기대한다. /이승선 충남대 언론정보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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