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문화
  • 맛있는 여행

[맛있는 여행] 94-옛 향기 따라 떠나는 산청 겨울 여행

김영복 식생활문화연구가

김지윤 기자

김지윤 기자

  • 승인 2025-12-29 17:06

신문게재 2025-12-30 8면

산청 남사예
산청 남사예담촌. (사진= 김영복 연구가)
이번 겨울 여행은 산청 신안면 원지에서 향어회로 점심을 하고 남사예담촌과 겁외사를 둘러 보기로 한다.

서울에서 중부고속도로를 달리다 대전에서 대전통영간고속도로에 들어서 1시간 52분 정도를 달려 단성 나들목을 빠져나와 5분이면 정수지맥(淨水支脈)인 양천이 경호강에 합수하는 원지에 다다르게 된다.



이 원지에는 '또랑메기국'이라는 향어회와 메기탕을 잘하는 맛집이 있다.

이 집은 향어회와 메기탕을 하지만 손님 대부분이 메기탕보다 향어회를 즐기는 손님들이 대부분이다.

향어회를 하는 횟집들은 전국에 걸쳐 있지만 주로 강원도와 부산 경남지방에 향어회를 하는 집들이 많이 있다.



경기도 파주 임진강 부근과 부산의 구포시장에 가면 향어횟집 들이 많이 있고, 지금도 있지만 불과 20여 년까지만 해도 마산역 부근에 향어회 집들이 골목을 이룰 정도였으며 진주와 김해에도 향어회를 잘하는 집들이 있다.

그러나 필자에게 향어회 맛집 중에 제일 맛있는 집이 어디냐고 물으면 단연'또랑메기국'을 으뜸으로 꼽는다.

물론 맛이야 개개인의 식성과 취향에 따라 다르겠지만 '또랑메기국'을 으뜸으로 꼽는 것은 향어회의 맛과 향어 서더리를 이용해 끓이는 향어매운탕의 맛이 여느 향어횟집과 완연히 차별화 될 만큼 다르다는 것이다.



향어회는 칼맛으로 먹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어떻게 써느냐에 따라 맛이 완전히 달라진다. 특히 몸통의 살과 아가미 부분 살을 구분하여 칼질을 달리하고 뼈 부분은 일본말로 세고시(せごし) 즉 뼈째 잘게 써는 회를 세 등분으로 나누어 내놓아 회를 즐기는 손님들이 식감을 달리하여 즐길 수 있도록 한다.

KakaoTalk_20251229_092425760
산청 섭외사. (사진= 김영복 연구가)
초장에 제피가루와 잘게 썬 고추를 넣고 채썬 무를 넣어 향어회를 찍어 먹는데, 이 맛에 빠지면 바다회는 싱거워서 못 먹는다고 해야 할 것이다.

특히 초장과 함께 비빈 향어회를 뜨거운 밥과 먹는 것을 흔히 횟밥이라고 부르는데, 이 횟밥은 경남지방에서 즐겨 먹는 겨울철 별미 중에 별미다.

향어회를 다 먹고 나면 향어 서더리로 끓인 향어매운탕이 나오는데, 적당히 칼칼하며 진하고 구수하면서 깊은맛이 느껴진다.

향어 매운탕은 메기탕에 비해서 덜 알려져 있지만 향어를 쉽게 먹을 수 있는 방법 중 하나로 다른 매운탕보다 양념을 강하게 해서 끓이는데, 얼큰하고 뜨거운 국물 맛이 좋아 필자는 메기탕 보다 오히려 향어매운탕을 더 선호 한다.

향어매운탕에 투박하게 툭툭 뜯어져 들어가 있는 손 수제비의 쫄깃한 맛이 입안을 호사스럽게 한다.

하지만 아무리 맛이 있어도 기생충을 걱정하여 향어회 먹는 것을 꺼리는 분이 있는데, 향어회는 염려하지 않고 먹어도 된다.

대부분의 민물고기는 기생충을 보유하고 있기 때문에 회로 먹기에 염려가 되지만 향어는 두터운 점막에 유미유충(有尾幼蟲)을 차단하는 살충성분(殺蟲成分)이 포함되어 있어 민물고기 중 회로 먹을 수 있는 몇 안 되는 생선이다.

향어회는 10월에서 2월까지인 겨울이 제철로 육질이 매우 단단하고 치밀해서 개개인의 식감에 차이는 있지만 오독오독하며 쫄깃쫄깃해서 씹기 좋으면서 또 지방이 올라 고소한 맛이 일품이다.

그렇지만 향어(香魚)는 자연적으로 존재하던 독자적인 재래종이 아니다, 독일에서 개량된 가죽 잉어를 먹성이 좋아 살이 쉽게 찌는 이스라엘 토종 잉어와 교배해서 만든 품종이다.

그래서 향어를 독일잉어 또는 이스라엘잉어라고도 부른다. 북한에서는 향어를 용정어(龍井魚)라고 부른다고 한다.

그러나 용정어(龍井魚)가 향어인지는 더 알아봐야 할 것 같다.

중국에도 용정어(龍井魚)가 있다. 중국의 용정어(龍井魚)는 절강성(浙江省) 항저우[杭州] 등 남부 지역에서 주로 먹는 민물생선이다. 중국의 이 용정어(龍井魚)가 향어인지 아니면 어떤 생선인지 확인할 필요가 있는 것은 중국의 용정어(龍井魚)는 대표적으로 '용정차'를 넣어 조리한 새우 요리(龍井蝦仁)와 함께 절강요리의 대표적인 재료라고 한다. 이 점에서 북한의 용

정어(龍井魚)가 중국의 영향을 받은 것 같기도 하다.

한국에서는 1970년대 초반 이스라엘 Saring 박사로 부터 치어 1000마리를 받아 양수리 근처의 논에 물을 채우고 양식을 처음 시작했다.

향어는 몸 색깔은 황금색과 검정빛인 잉어보다 검푸른 빛이 많이 도는데, 잉어처럼 사는 데에 따라 좀 더 누렇거나 더 검푸르게 변이되곤 한다. 등 부분과 배부분의 색깔 차이가 심한 것도 토종 잉어와 다른 점이다.

향어는 비늘이 적고 잔가시가 없으며 살이 많아 먹을 게 많아 요리할 때 잉어보다 용이한 점이 많다.

회와 매운탕 외에도 구이, 튀김을 해 먹어도 맛이 괜찮다. 물론 양념장을 얹어 쪄 먹어도 맛이 매우 좋다.

이곳은 쌍룡이 서로 맞물려 원을 그린다는 쌍용교구의 명당자리로 20세기 초반 세워진 40여 채의 기와집들이 흙담길을 따라 미로처럼 이어진다.

KakaoTalk_20251229_092442727
향어회. (사진= 김영복 연구가)
고려말 정당문학(고려시대 종2품 관직)에 올랐던 강희백(姜淮伯 1357~1402)과 세종 때 영의정을 지낸 경재(敬齋) 하연(河演,1376∼1453)이 이 마을에서 태어났다.

특히 강희백이 단속사에서 공부할 때 심은 수령 약 650년이 된 매화나무를 정당매(政堂梅)라고 한다.

성주 이씨, 밀양 박씨, 진양 하씨가 주류를 이루는'남사예담촌'은 고려 충신 정몽주의 후손이 1920년대에 상량한 건물로 근대 한옥의 건축적 특성을 잘 나타내고 있는 사양정사(泗陽精舍), 태조 이성계의 사위이자 개국공신이었던 이제(李濟)에게 내려진 '이제개국공신교서(李濟開國功臣敎書)'를 모신 영모재(永慕齋), 아버지를 향한 화적들의 칼날을 몸으로 막아 낸 효자 이윤현의 효심을 기리기 위한 사효재(思孝齋), 최재기 가옥을 중심으로 성주 이씨의 종가인 이상택 가옥, 특히 이상택 가옥은 18세기에 만들어진 안채와 20세기 만들어진 사랑채가 200여 년의 간격을 두고 함께하고 있어 소중한 문화적 가치가 있다.

흙 돌담길을 걷노라면 선비의 기풍이 서려 있는 한옥의 대문들이 집안을 엿 볼 수 있도록 열려 있다.

'남사예담촌(南沙??村)'을 둘러 보고 이곳과 멀지 않은 "산시산 수시수 불재심마처(山是山 水是水 佛在甚?處) 산은 산이요 물은 물이로다"라는 법어(法語)를 남긴 현대 한국불교의 최고의 선지식인 퇴옹(退翁) 성철대종사((性徹大宗師 1912~1993. 11. 4)의 생가 생가 율은고거(栗隱古居)를 중심으로 세워진 경상남도 산청군 단성면 묵곡리에 소재한 겁외사(劫外寺)를 찾았다.

이곳은 고속도로나 국도의 접근성이 좋고 주차장은 대소형 모두 주차할 수 있도록 아주 크다. 더 가까이 가려면 휴게소 앞에 주차하면 된다.

겁외사(劫外寺) 성철스님이 출가 전 20여 년간 살았던 생가터인데, 전국에 있는 15곳의 성철스님 문도사찰(門徒寺刹) 중 한 곳으로 성철 스님 열반 후 백련불교문화재단 이사장이자 20여 년간 성철스님을 시봉했던 원택스님을 비롯한 제자와 문도, 산청군의 협력으로 성철스님의 딸 불필스님이 할아버지로부터 물려받은 논 2,000평 위에 2001년 3월 30일 창건 회향법회를 가지게 되었는데, 윤회의 굴레인'겁'을 넘어선 '외(外)'의 세계, 즉 시간과 공간 그리고 삶의 속박을 초월한 자유를 지향한다는 뜻에서 지어진 절이라고 한다.

겁외사 입구는 2층 누각이 일주문 역할을 하는데, 이 누각은 18개의 석주(石柱)가 받치고 있는 커다란 누각이 있다. 누각 정면에는 지리산겁외사(智異山劫外寺)라는 현판이 걸려 있고 18개의 석주 사이를 지나면 누각 안쪽에 벽해루(碧海樓)라는 현판이 걸려 있다.

이 벽해루(碧海樓)는 성철스님이 평소"아침의 붉은 해가 푸른 바다를 뚫고 솟아오른다."라고 즐겨 얘기하던'홍하천벽해(紅霞穿碧海 )'라는 글에서 따 온 것이라 한다.

누각을 지나면 넓은 마당이 펼쳐지고, 마당 중앙에 성철스님의 석조입상(石造立像)을 비롯하여 커다란 염주·목탁 조형물이 세워져 있고 좌측에 대웅전(大雄殿)이 조성되어 있다.

대웅전 안 불단에 길상좌의 결가부좌에 항마촉지인을 한 석가모니불을 모셨으며 뒤편에 목각 영산회상탱화가 봉안되어 있다. 목각탱화는 중앙에 본존불을 봉안하고, 8대 보살이 둘러싸고 있고 상하 양쪽 끝에 사천왕이 부조되어 있다.

KakaoTalk_20251229_092450225
초장. (사진= 김영복 연구가)
최상단에는 나한상이 부조되어 있다.

뒤편에는 생가(生家)가 있는데, 이곳은 스님이 대원사로 출가하기 전, 이영주라는 속명으로 스물다섯 해를 살았던 곳으로, 모든 건물은 새로 건립된 것이다. 입구인 혜근문(惠根門)을 들어서니 정면에 안채인 율은고거(栗隱古居)가 있고 오른쪽에 사랑채인 율은재(栗隱齊)와 좌측엔 기념관인포영당(泡影堂)이 있다. 안채에는 해인사 백련암에서 생활할 때의 방모습이 재현되어 있으며, 사랑채와 기념관에는 누더기 가사·장삼·고무신·지팡이·친필자료· 안경·필기구 등 스님의 유품이 전시되어 있다. 그리고 안채 우측 뒤쪽에는 장독대가 있다.

겁외사를 나와 왼쪽에 성철스님의 행적을 기리기 위해 불필 스님과 원택 스님, 문도 스님들이 탄신 100주년(2012년) 사업으로 추진된 기념관이 있다.

1층에는 성철 스님 설법상을 모셔 참배공간으로 조성했고, 2층에는 교육장격인 '퇴옹전(退翁殿)'을 지어 불자들의 수행정진 공간으로 이용되고 있다.

KakaoTalk_20251229_092456772
향어 매운탕. (사진= 김영복 연구가)
기념관 뒤편에는「벽해선원(碧海禪院)」이란 부속 전각이 조성되어 있다. 기념관 입구에는 여덟 개의 돌기둥이 건물을 받치고 있는데, 이는 불교의 팔정도(八正道)를 상징하며, 인도 구법승의 출발지였던 중국 둔황(敦煌) 명사산의 월아천을 형상화했다고 한다.

석굴 바깥의 왼쪽은 아미타불 1000불과 관세음보살상을, 오른쪽은 약사여래불 1000불과 보현보살상을 각각 안치했다. 2층 퇴옹전은 강당과 같은 너른 공간으로 참선과 절, 기도, 강의 등이 항시 이어질 수 있게 했다.

석굴 현관인 성불문(成佛門)을 지나면 중앙에 흰 대리석의 성철 스님 설법 상(說法像)이 모셔져 있고, 그 뒤에는 과거불인 연등불, 현재불인 석가모니불, 미래세의 미륵불이 감실 안에 조성되어 있다. 후면 벽에는 연꽃 만다라 조각상이 양각돼 있다. 겁외사를 떠나 가까운 진주로 향한다. 진주에서 일박(一泊)을 하고 내일 서울로 간다.

김영복 식생활문화연구가

중도일보(www.joongdo.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 금지

기자의 다른 기사 모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