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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단만필] 두 명의 작은 우주와 다정한 온기가 채우는 봄날

예산 용동초 교사 김정은

오현민 기자

오현민 기자

  • 승인 2026-03-27 13:29

신문게재 2026-03-27 1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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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산용동초 교사 김정은.
교단에 선 지 어느덧 18년. 이쯤 되면 3월의 분주함도 제법 익숙하게 넘길 법도 한데, 올해의 봄은 유독 새롭고 또 버겁다. 발령장과 함께 내 이름 앞에 처음으로 '교무부장'이라는 묵직한 직함이 붙었기 때문이다.

내가 근무하는 곳은 농어촌의 아담한 소규모 학교다. 학생 수가 적다 보니 교사 한 명이 감당해야 할 몫이 결코 가볍지 않다.



특히 올해는 학교 전체의 1년 농사를 좌우할 교육과정을 기획하고 운영해야 하는 중책을 맡았다. 학교의 비전을 세우고 특색 있는 교육과정을 빈틈없이 그려내야 한다는 나름의 압박감은 수많은 걱정과 근심으로 이어지며 처음 상상하던 청사진 대신 길 잃은 미아처럼 방황하는 시간으로 이어졌다.

그렇게 굳어진 얼굴로 교무실을 나서 교실 문을 여는 순간, 나를 무장해제 시키는 두 명의 작은 우주가 있다. 바로 올해 내가 담임을 맡은 4학년, 우리 반 두 여학생이다.

"선생님, 바쁘신 것 같아서 저희가 칠판 닦고 화분에 물 줬어요." 단 두 명뿐인 우리 반 아이들은 유난히 조용하고 차분하다. 시끌벅적한 생동감보다는 마치 친자매처럼 서로의 옷깃을 여며주고 챙겨주는 따뜻함이 교실에 배어 있다. 행정 업무에 쫓겨 모니터만 뚫어져라 쳐다보며 미간을 찌푸리고 있을 때면, 아이들은 사그락사그락 다가와 말없이 서로의 준비물을 챙겨주고 내 책상 한편에 곱게 접은 쪽지 하나를 올려두곤 한다. 그 무해하고 다정한 배려를 마주할 때면, 완벽한 기획안을 만들겠다며 잔뜩 들어가 있던 어깨의 힘이 탁 풀리고 만다.



나를 숨 쉬게 하는 온기는 교실 밖에도 있다. 처음 맡은 교무 업무의 무게에 짓눌려 있을 때, 나를 일으켜 세워주는 것은 언제나 곁에 있는 '다정한 어른들'이다.

"부장님, 처음이라 힘든 게 당연해요. 혼자 짊어지려 하지 말고 언제든 이야기해요." 교장 선생님과 교감 선생님은 초보 부장의 서툰 발걸음을 재촉하기보단 따뜻한 위로를 건네며 무거운 짐을 기꺼이 나누어 들어주려 애쓰신다. 동료 선생님들 역시 마찬가지다. 교육과정 회의 시간마다 누구 하나 방관하는 이 없이, 우리 학교 아이들을 위해 무엇이 더 좋을지 머리를 맞대고 치열하면서도 다정하게 의견을 보탠다. 소규모 학교이기에 가능한 이 끈끈한 협력과 지지의 분위기는 캄캄한 업무의 바다에서 길을 잃지 않게 해주는 든든한 등대가 되어준다.

문득 깨닫는다. 내가 밤잠을 못 이루며 세우려 했던 거창한 '학교 교육과정'이라는 것의 본질은 서류상의 '활자'가 아니라 바로 이 따뜻한 '관계' 속에 있다는 것을 말이다. 조용히 서로를 기대며 자라나는 우리 반 두 아이처럼, 그리고 서툰 교무부장을 위해 기꺼이 어깨를 내어주는 든든한 선후배 동료들처럼 서로가 서로에게 비빌 언덕이 되어주는 것! 그것이 농어촌 작은 학교가 가진 가장 큰 힘이자 진짜 교육이 아닐까?



여전히 내 책상 위에는 처리해야 할 업무가 산더미처럼 쌓여 있지만 더 이상 홀로 막막해하지 않는다. 내 곁에는 언제나 힘이 되어주는 동료들이 있고 나를 바라보며 조용히 미소 짓는 두 명의 어여쁜 아이들이 있으니까! 18년 차 교사의 노련함에 초보 교무부장의 풋풋한 열정을 더해 우리 학교의 따뜻한 사람들과 함께 이 벅찬 봄날을 기꺼이 만끽해 보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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