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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홍진(한남대 교수/문학평론가) |
인류 역사와 문명은 그 낯섦이 결국 필연이었음을 반복해서 증명해 온 과정이었다. 지동설이 그랬고, 인조인간을 상상한 카렐 차페크의 희곡 『R.U.R(Rossum's Universal Robots)』에 등장한 로봇이 그랬다. 로봇이란 명사는 여기서 왔다. 한 시대의 이성이나 상식으로는 납득할 수 없었던 발상들은 시간이 흐르며 오히려 인간과 세계를 새롭게 설명하는 정상적인 언어가 된다. AI의 등장은 바로 그 연장선 위에 놓여있는 것처럼 보인다.
영화 '트랜스포머', 감독이 "로봇들에게서 영혼이 있음을 느낄 것"이라 말하듯 인간과 오토봇 연합은 자기희생을 통해 메가트론의 디셉티콘을 물리친다. 게다가 인간을 죽여서는 안 된다는 오토봇의 판단은 인공생명이 윤리성까지 갖추고 있음을 보여준다. 인간의 잔인성을 탓하는 동료에게 "우리도 잔인하잖아."라고 말하는 이 녀석은 자기반성과 성찰의 능력까지 갖추고 있다. 인공생명도 인간처럼 생각하고 욕망한다. 아니 그 이상이다.
이들과 유사한 설정은 수많은 SF에서 반복한다. 『인류멸망보고서』, 이 영화의 두 번째 에피소드는 불성을 깨달은 로봇을 그린다. 법당 청소 같은 단순노동이나 시키려고 사 온 이놈은 스스로 깨달음을 얻어 신도들 앞에서 설법까지 펼친다. 아시모프의 『아이 로봇(I Robot)』, 대량 생산된 로봇 중 돌연변이처럼 진화한 이 녀석은 생각과 감정과 행동이 거의 인간에 가깝다. 아시모프는 로봇의 행동 원칙 가운데 인간의 명령에 복종해야 한다 했지만, 기술의 반란도 있다. '터미네이터', 인류의 절멸은 핵 버튼을 인공지능에 맡긴 데서 비롯한다.
어떤 경우든 로봇 공학자 모리 마사히로의 '언캐니 밸리'가 시사하듯 기술의 진화는 인간과 거의 구별이 불가능한 구간을 지나 인간보다 더 우월한 지적 정신적 능력을 갖게 되었다. AI는 기술 문명이 스스로 진화를 거쳐 확장해온 필연적 귀결이 아닐까. 미디어는 인간의 확장, 그렇다면 AI는 무엇인가. 그것은 단순한 도구가 아니라 인간 사고의 외부화, 두뇌의 확장이다. 이 확장은 더 이상 보조물이 아니라 인간을 능가하는 독립된 존재로의 진화이다.
얼마 전 세기의 망나니 트럼프가 이란을 침공할 때 AI는 방대한 정보를 신속 분석해 목표물의 우선순위를 정하고, 팔란티어 기반 시스템은 무기를 추천했으며, 공격의 법적 근거를 평가하는 역할까지 했다고 한다. 최적의 공격 시점까지 AI의 힘을 빌었다니, 이 지점에서 우리는 불안과 공포를 느낄 수밖에 없다. AI가 판단과 결정의 영역까지 침투한 것이다. 인간이 따라갈 수 없는 속도의 세계에서 결정은 기계에 위임되고, 모든 영역에서 인간은 선택과 결정의 자리에서 밀려났다.
전통적으로 기계는 영혼이 없는 무기체였으나 오늘날 AI는 스스로 생각하고 판단해 최적의 경로를 선택 결정한다. 이제 AI가 인간을 넘어설 가능성은 공상과학에만 머물지 않는다. 그러나 AI를 단순한 위협으로 보는 시각은 피상적이다. 그 등장은 인간 종말의 예고가 아니라 문명의 전환을 의미한다. 이 과정에서 인간은 거대한 네트워크 속 하나의 노드로 재위치된다. AI라는 괴물은 불안과 공포를 낳지만, 새로운 가능성을 열어 인간을 더 넓은 차원의 존재로 재정의하게 할 것이다.
김홍진(한남대 교수/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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