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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동연 처장 |
어쩌면 우리는 AI의 할루시네이션에서 오히려 더 편안했는지도 모른다. AI가 그럴듯하게 틀리고, 없는 사실을 만들어내던 시절, 인간에게는 분명한 역할이 있었다. AI의 답을 의심하고, 다시 질문하고, 오류를 찾아내며, 최종 판단과 책임은 인간의 몫이었다. 그러나 AI가 점점 그 약점을 극복하고 더 정확하고 자연스럽고 정교해질수록, 인간은 새로운 불안을 느낀다. AI가 틀릴 때 우리는 그것을 고치면 되었지만, AI가 너무 잘할 때 우리는 묻게 된다. "그렇다면 나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
이 불안은 기술의 부족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기술의 완성도에서 온다. 인간이 아닌 것이 인간처럼 말하고, 위로하고, 창작하고, 판단하는 순간 우리는 묘한 불편함을 느낀다. 이것이 바로 '불쾌한 골짜기'다. 본래 로봇이나 인공물이 인간과 너무 비슷해질 때 느끼는 낯섦을 뜻했지만, 이제 그 골짜기는 AI가 쓴 글, 만든 콘텐츠, 부르는 노래, 진행하는 상담과 교육 콘텐츠 안에서도 나타난다. 너무 매끄럽고, 너무 그럴듯하지만 그 안에 살아 있는 사람의 망설임과 책임, 상처와 통찰이 느껴지지 않을 때 우리는 불편해한다.
AI 서비스와 콘텐츠가 빠르게 확산되고 있음에도 소비자들에게는 불편, 불신, 불안이 느껴진다는 조사 결과는 이 지점을 잘 보여준다. 사람들은 AI의 편리함을 거부하는 것이 아니다. 다만 인간적 감정과 진실성, 책임지는 주체가 희미해지는 장면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것이다. 인간은 모든 것을 대신해 주는 존재 앞에서 반드시 행복해지지 않는다. 오히려 질문할 수 있을 때, 자신의 통찰을 발휘할 수 있을 때, 틀릴 수 있지만 다시 판단할 수 있을 때 인간으로 살아있음을 실감한다.
교육도 마찬가지다. 완벽한 도구 앞에서 학생은 쉽게 소비자가 된다. AI가 요약해 주고, 정리해 주고, 답을 만들어주면 학습은 편리해지지만, 그 편리함이 깊어질수록 질문과 시행착오, 판단의 근육은 약해질 수밖에 없다. 교육은 완벽한 산출물을 빠르게 얻는 일이 아니라, 불완전한 사유를 견디며 자기 생각을 만들어가는 과정이어야 한다. AI가 준 답을 그대로 받는 것이 아니라, 그 답을 의심하고 해석하며 자신의 경험과 연결하고 책임 있는 판단으로 바꾸는 힘을 기르게 해야 한다.
'어쩌면 해피엔딩'의 올리버와 클레어가 우리를 울린 이유도 그들이 완벽해서가 아니었다. 그들은 낡았고, 제한되어 있었고, 언젠가 사라질 존재였다. 그러나 바로 그 불완전함 때문에 그들의 사랑은 더 애틋했다. 사라질 것을 알면서도 기억하려 하고, 멈출 것을 알면서도 다가가려 하는 마음. 그 마음이 관객을 움직였다. AI는 앞으로 더 완벽해질 것이다. 더 적게 틀리고, 더 자연스럽게 말하고, 더 사람처럼 반응할 것이다. 그러나 우리가 추구하는 교육의 최종 종착지는 완벽한 도구 앞에서 조용히 감탄하는 인간을 만드는 데 있지 않다. 불완전함 속에서도 질문하고, 느끼고, 책임지고, 다시 시작할 수 있는 인간을 기르는 데 있다. 어쩌면 AI 시대 해피엔딩은 모든 것이 완벽해서 가능한 것이 아닐 것이다. 불완전해서 가능할 수 있다. 어쨌든 행복이건 불행이건, 그것을 느끼는 건 결국 우리 인간이기 때문이다.
/최동연 건양사이버대 교육혁신처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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