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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춘하추동]사회적인식과 다문화 수용성(acceptance)

권명희 숭실대 사회복지학과 교수

임병안 기자

임병안 기자

  • 승인 2026-05-12 17:49

신문게재 2026-05-13 18면

권명희 교수
권명희 숭실대 사회복지학과 교수
사회적 인식과 다문화에 대한 수용성(acceptance)에 대한은 국가 성숙도를 가늠하는 잣대이다. 다문화 수용성(acceptance)은 단순히 외국인을 용인(容認)하는 태도가 아니라, 서로 다른 문화·인종·종교·언어적 배경을 가진 사람들이 동등한 사회 구성원으로 인정받고, 또한 제도·정서·문화 차원에서 배제되지 않는 상태를 의미이다. 물론 이에 대한 사회적 인식을 이해하기 위해서 "다문화는 정책이 아니라 국가 정체성의 문제다"라는 관점에서 찾아보자.

한국 사회는 이미 다문화 사회로 진입했다. 국제결혼, 외국인 노동자, 유학생, 난민, 이주 2·3세의 증가로 인해 '단일민족 국가'라는 오래된 자의식은 현실과 점점 괴리되고 있다. 그러나 제도적 변화의 속도에 비해 사회적 인식의 변화는 더디다. 우리는 다문화를 인정한다고 말하면서도, 여전히 그것을 '적응해야 할 대상', '관리해야 할 정책 영역'으로 취급하는 경향을 보인다.



여기서 핵심 개념이 등장한다. 바로 '다문화 수용성(acceptance)'이다. 다문화 수용성은 단순히 외국인을 불쌍히 여기거나 배려하는 태도가 아니다. 그것은 한 사회가 얼마나 성숙한 시민적 정체성을 갖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지표이며, 공동체의 경계를 어디까지 확장할 준비가 되어 있는지를 가늠하는 척도다.

따라서 다문화 수용성의 문제는 복지 정책의 범주에 머물지 않는다. 이는 국가 정체성, 시민권 개념, 사회 통합 전략을 다시 묻는 근본적인 질문이다. 과연 우리는 '같은 피'를 공유해야만 같은 국민이라고 생각하는가, 아니면 '같은 헌법적 가치'를 공유하면 충분하다고 보는가? 이 질문에 대한 답이 곧 선진국으로 가는 관문이 된다.

본론적으로 다문화 수용성의 구조를 인식, 정서, 제도 다문화 수용성 등 세 가지 차원에서 분석해 보자.



첫째, 인식 차원이다. 이는 다문화 구성원을 '외부인'이 아닌 '동등한 공동체 구성원'으로 인식하는가의 문제다. 단순히 법적 체류를 허용하는 수준을 넘어, 정치적·사회적 권리의 주체로 인정하는 태도가 여기에 해당한다. 피부색이나 억양, 출신 국가가 개인의 능력이나 시민적 자격을 판단하는 기준이 되어서는 안 된다는 인식이 자리 잡아야 한다.

둘째, 정서 차원이다. 다문화 수용성은 감정의 문제이기도 하다. 거리감, 막연한 불안, 문화적 위협 인식이 줄어들지 않는 한, 제도적 통합은 공허해진다. 중요한 것은 '동정'이 아니라 '존중'이다. 다문화 가정을 보호의 대상으로 보는 시혜적 태도는 수직적 관계를 고착화할 뿐이다. 선진 사회의 정서는 수평적 공존을 전제로 한다.

셋째, 제도 차원이다. 아무리 인식과 정서가 개선되더라도 차별이 구조화된 제도 아래에서는 실질적 수용이 이루어질 수 없다. 교육·고용·주거·의료 접근성에서 차별이 발생하지 않도록 설계된 제도적 장치, 그리고 차별을 구제하는 법적 시스템이 마련되어야 한다. 수용성은 결국 구조 속에서 검증된다.



다음으로 심층적 검토 할 사항으로 아래의 세 가지 사항으로 방향을 세분하여 분석해 보자.

첫째 동화주의에서 상호통합으로 전개해야 한다.

다문화 사회를 먼저 경험한 국가들은 한 가지 중요한 교훈을 남겼다. 동화(assimilation) 정책은 장기적으로 갈등을 심화시킨다는 점이다. 기존 문화에 완전히 동화될 것을 요구하는 방식은 문화적 다양성을 억압하며, 정체성 갈등을 야기한다. 반면 오늘날의 선진적 모델은 상호통합(integration)이다. 이는 다수 집단과 소수 집단이 상호 적응하는 구조를 의미한다. 이주민은 헌법적 질서와 법치를 존중해야 하지만, 동시에 주류 사회도 문화적 다양성을 제도 안에 포용할 준비를 해야 한다. 국가 정체성은 혈통이 아니라 시민적 가치에 기반해야 한다는 전환이 필요하다.

둘째 단일민족 신화의 재검토이다.

한국 사회의 다문화 수용성을 가로막는 보이지 않는 장벽 중 하나는 '단일민족'이라는 역사적 자의식이다. 그러나 역사적으로 완전히 순수한 민족 국가는 존재하기 어렵다. 문화는 언제나 교류와 혼합을 통해 형성되어 왔다.

문제는 단일민족 담론이 배타적 경계를 강화하는 순간이다. 공동체의 정체성을 혈통 중심으로 정의할 경우, 다문화 구성원은 영원한 '타자'로 남게 된다. 반대로 시민적 가치 중심으로 재정의할 경우, 공동체는 확장 가능한 구조가 된다. 선진국의 기준은 경제 규모가 아니라, 이러한 정체성의 유연성에 있다.

셋째 갈등을 관리하는 능력이 선진성이다

다문화 사회에서 갈등은 불가피하다. 언어, 종교, 생활 방식의 차이는 긴장을 낳는다. 그러나 갈등의 존재 자체가 후진성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중요한 것은 갈등을 어떻게 제도적으로 관리하고 공론화하는가이다.

공정한 법 집행, 투명한 정책 결정, 차별에 대한 엄정한 대응은 사회적 신뢰를 축적한다. 갈등을 억압하거나 부정하는 대신, 제도 속에서 해결하는 능력이야말로 선진 사회의 특징이다.

그렇다면 다문화 수용성은 미래 전략이다. 다문화 수용성은 도덕적 구호가 아니라 국가 생존 전략의 문제다. 저출산과 고령화가 심화되는 상황에서, 이주 인구와 다문화 2세는 노동시장과 인구 구조를 지탱할 핵심 자산이 될 수 있다. 이를 비용이나 부담으로만 인식하는 순간, 우리는 미래 성장 동력을 스스로 축소시키는 셈이 된다.

선진국은 다양성을 통제의 대상이 아니라 혁신의 자산으로 전환한 나라들이다. 다문화 수용성은 관용의 미덕이 아니라, 국가 성숙도의 시험대다. 공동체의 경계를 어디까지 확장할 수 있는가? 그리고 그 확장을 제도와 문화 속에 얼마나 안정적으로 정착시킬 수 있는가? 이 물음에 대한 우리의 답이, 한국 사회가 진정한 의미의 선진국 대열에 당당히 설 수 있는 중요한 기반으로 결정하게 될 것이다.
/권명희 숭실대 사회복지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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