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 황대욱 신경주대학교 교수 |
역사를 돌아보면 강을 지배한 세력이 시대의 흐름을 바꿨다. 고구려가 남쪽으로 세력을 넓히려 했던 이유도 한강과 남한강 수로를 장악하기 위해서였다. 남한강은 단순한 물길이 아니라 군사와 물자가 이동하는 전략 통로이자 중부 내륙을 연결하는 생명선이었다. 그 중심에 단양이 자리하고 있었다.
특히 죽령은 영남과 중부 내륙을 잇는 삼국시대의 핵심 교통축이었다. 고구려는 이 길을 통해 신라를 견제했고, 신라는 다시 이 길을 확보하며 북진의 발판을 마련했다. 결국 단양은 단순한 지방 도시가 아니라 삼국의 전략과 군사가 맞부딪힌 접경지였다.
필자 역시 2000년대 초반 단양군 관광행정 자문 과정에서 영춘과 온달권역을 여러 차례 찾은 적이 있다. 남한강 절벽과 산성, 죽령 일대를 직접 둘러보며 왜 삼국이 이 지역을 치열하게 다투었는지 실감할 수 있었다. 단양은 관광지가 아니라 역사와 지형이 함께 살아 숨 쉬는 공간이었다.
그 흔적은 지금도 온달산성에 남아 있다. 남한강을 굽어보는 산성은 누가 이 길목을 지배할 것인가를 둘러싼 경쟁의 상징이다. 특히 단양의 고구려 이야기를 말할 때 빼놓을 수 없는 인물이 온달이다. '삼국사기'에는 온달이 신라에 빼앗긴 영토를 회복하기 위해 출정했다가 아단성(阿旦城) 아래에서 전사한 기록이 전한다.
흥미로운 점은 아단성의 위치를 두고 지금도 견해가 엇갈린다는 사실이다. 일부는 오늘날 서울 광장동의 아차산성을 아단성으로 보고, 다른 일부는 단양군 영춘면의 온달산성 일대로 해석한다. 특히 영춘의 옛 지명이 을아단(乙阿旦)이었다는 점은 아단성과의 연관 가능성을 보여주는 근거로 자주 거론된다. 물론 학계의 견해는 아직 일치하지 않지만, 이러한 논쟁 자체가 단양이 고구려 역사와 깊게 연결된 공간임을 말해준다.
오늘날 단양군과 관광공사는 이러한 역사성을 관광산업과 접목하고 있다. 온달산성과 온달동굴, 드라마 세트장을 연계한 온달관광지는 단양의 대표 역사문화 브랜드로 자리 잡았으며, 온달문화축제역시 고구려 역사성과 지역관광을 함께 연결하는 핵심 콘텐츠로 성장하고 있다. 역사와 관광이 만나 지역의 새로운 경쟁력을 만들어가는 대표 사례라 할 만하다.
우리는 흔히 충청도를 백제 문화권으로 기억하지만, 북부 충청권은 고구려·백제·신라가 충돌한 복합 역사 공간이었다. 단양은 그 경계의 중심에 있었고, 남한강을 둘러싼 삼국의 긴장과 경쟁을 가장 선명하게 보여주는 지역 가운데 하나였다.
역사는 단순히 과거의 사건을 외우는 작업이 아니다. 어떤 공간을 어떻게 기억하느냐의 문제다. 단양팔경의 아름다운 풍경만 바라본다면 우리는 절반의 단양만 보는 셈이다. 그 절경 뒤에는 남한강을 차지하기 위해 삼국이 치열하게 경쟁했던 시간과 고구려의 숨결이 함께 남아 있다.
결국 단양은 풍경의 도시이기 전에 역사 전략도시다. 단양팔경이 자연의 아름다움을 보여준다면, 온달산성과 남한강 물길은 이 땅이 품고 있는 천년의 역사를 오늘도 묵묵히 증언하고 있다. /황대욱 신경주대 교수
중도일보(www.joongdo.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