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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헌오의 시조 풍경-32] 시의 몰골

박헌오/한국시조협회 5대 이사장, 초대 대전문학관장

김의화 기자

김의화 기자

  • 승인 2026-09-25 00:00

삶은 마음의 뜻에 따라 인연을 맺고 업을 쌓아가는 과정이며, 고통 속에서도 몸을 부려 참된 자아를 찾아가는 여정입니다. 시를 짓는 일은 이러한 삶 속에서 자신을 구원하고 본연의 모습을 발견하게 하는 등불과 같은 역할을 수행합니다. 저자는 한글 시조를 통해 맑고 고결한 영혼의 흔적을 남김으로써, 자신의 작품이 세상에 선한 꽃을 피우는 밑거름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붙박여 살다보면 더 오래 남을 허물

뼈를 휘어 짜올리는 시 한마당 널어놓다

욕정 다 날려 보내고

건져내는 넋두리다





태반(胎盤)의 흙에 쌓인 모국어의 찬연한 빛

세월 끝 세상 끝까지 이어가는 겨레의 얼

한 줄의 시로 살아서



혼의 몰골 그려간다



<시작 노트>

사람은 누구나 붙박여 산다. 긴 역사의 한 구간을 살고, 넓은 세상의 한 점을 살아간다. 어떤 뜻을 품었는지에 따라서 삶은 달라진다. 어떻게 사느냐에 따라서 쭉정이 삶이 되기도 하고 여문 씨앗을 남기는 삶이 되기도 한다.

삶이란 몸을 부려서 무엇이든지 하는 것이다. 그것은 행위일진대 행위는 노동이 되기도 하고, 기도가 되기도 하고, 보살행이나 덕행이 되기도 하고, 악행이나 폐행이 되기도 한다. 몸은 마음이 시키는 대로 하고, 행동한 대로 결과가 나타난다. 결국 인연을 짓는 일이다. 인연을 짓기에 따라 일어나는 결과가 '인과응보'이다. 인과응보에 따라 탈을 바꾸는 것을 '윤회'라고 한다. 그것을 모른다고 하면 지금의 내가 짓고 있는 인연을 부정하는 것이요 결국 '나'를 내버리는 것이다. 괴로워야 삶이다. 괴로움을 떠나는 그것이 한 도막의 죽음이다. 선업(善業)을 짓는 일도 괴로움을 가진 몸으로 한다.

따지고 보면 몸은 '나'가 아니라 시키는 대로 따를 뿐이다. 나아가 '몸'이 아픈 것은 '나'가 아픈 것이 아니요, 몸이 죽는 것은 '나'가 죽는 그것이 아니라고 말할 수 있다.

기도하고 참선하고 사색하고 업을 짓는 것은 '참 나'의 본연을 되돌아보는 것이다.

사람마다 '참 나'를 찾는 방법이 다르고 기회가 다르고 모습이 다르다.

그 방법 가운데 '시(詩)를 짓는 일도 한몫이 되는 것이다. 시를 짓다 보면 허물로 남을 것만 같아도 겪어야 할 길이기에 멈출 수가 없다. 시는 시가 구원하고 '참 나'를 찾아가는 등불이 되어준다. 세종대왕이 곁에 오셔서 손을 잡아주셔서 한글로 시조를 써서 남긴다. 이 땅의 흙으로 남는 나의 시조가 좋은 꽃을 피우는 밑거름이 되기를 소망하면서 옥토에 묻는다. 내 혼의 몰골을 꽃으로 피워주기 바란다면 진실로 절실한 작품을 써야 한다. 거짓이나 위선이나 이탈만큼 공해가 될 것이니 맑고 깊고 고결한 작품을 남겨야 한다. 나의 혼은 나의 작품 속에 묻힌다. 모든 씨앗은 자기 모습을 담고 있다. 누구나 자기 씨앗을 여러 방법으로 남긴다.

박헌오/한국시조협회 5대 이사장, 초대 대전문학관장

박헌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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