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전 갑천습지에 일제 금 수탈현장…무너진 동굴입구와 산책로 기초 드러나

동굴 입구 드러난 1974년 항공사진 확인
큰 규모 추정되나 지금은 바위 무너져 위험
습지 산책로 역시 돌을 쌓아 기초 다진흔적

임병안 기자

임병안 기자

  • 승인 2026-09-26 10:16

대전 갑천습지와 도솔산 일대에서 일제강점기 금 수탈을 위해 조성된 것으로 보이는 대규모 광산 동굴 입구가 새롭게 발견되었습니다. 해당 지점은 1933년부터 조선제련이 운영한 '유성금산'의 일부로 추정되며, 1974년 항공사진과 주변의 노동 흔적을 통해 당시 대규모 자원 수탈이 이뤄졌음을 뒷받침하고 있습니다. 최근 유실된 산책로 하단에서 발견된 정교한 석축 기초 또한 광석 운반을 위한 기반 시설이었을 가능성이 제기되어 이에 대한 정밀한 조사가 필요합니다.

스크린샷 2026-09-26 083811
1974년 갑천습지와 도솔산 일원에 대한 대전시의 항공사진에서 광산이 개발되어 있음을 직작케하는 동굴 입구 모습.  (사진=국토정보플랫폼)
대전 갑천습지와 도솔산에 일제강점기 금을 수탈한 광산의 존재가 근래에서야 알려진 가운데 동굴 입구로 추정되는 장소가 또다시 발견됐다. 또 갑천습지 산책로가 유실된 지점에서 돌을 차곡차곡 쌓아 하단 기초를 다진 흔적이 드러나면서 이곳에 산책로가 일제의 금 광산에서 채석한 돌을 운반하는 목적으로 조성되었을 가능성이 제기된다.

▲1974년까지 관찰되는 광산 입구

26일 중도일보 취재를 종합하면, 대전 갑천습지와 도솔산 그리고 월평공원이 있는 서구 월평동에서 광산으로 개발되었을 것으로 여겨지는 동굴 입구 추정지가 새롭게 발견됐다. 갑천을 횡단하는 도솔대교 아래에 산사태가 발생한 듯 바위가 무너져 '위험지역'이라는 간판이 내걸린 지점에 동굴 입구가 있을 것으로 추정된다. 이곳은 앞서 발견된 금 광산으로부터 10m 떨어진 지점으로 주민들이 오래 전부터 금정골이라고 부르던 골짜기와 갑천이 만나는 장소다. 지금은 무너진 바위가 수북이 쌓여 동굴 입구를 육안으로 관찰할 수 없으나 1974년 이 일대를 촬영한 항공사진에서는 입구가 확실히 확인된다. 동굴 안쪽에 짙은 그늘이 진 모습이 항공사진에 그대로 담겼고, 입구 앞에는 차량과 장비가 수없이 드나든 흔적과 돌가루가 새롭게 쌓인 탓에 주변보다 유난히 밝힌 색을 띤다. 이 일대에 조성된 금 광산과 비교했을 때 입구 규모는 상당히 컸을 것으로 여겨진다.

1D1A1186
대전 갑천습지 산책로 옆 낙석으로 안전펜스가 설치된 지점은 과거 광산으로 개발돼 동굴 입구이었던 곳으로, 일제강점기 조선제련의 '유성금산'이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사진=임병안 기자)
▲조선제련의 금 수탈 광산으로 추정



중도일보는 앞서 취재를 통해 갑천습지와 도솔산 그리고 월평공원 일원에 우물처럼 수직으로 팬 갱도 3개와 성인 남성이 걸어서 들어감직한 인공동굴 2개 그리고 지면 밖으로 노출된 바위를 띠 형태로 절단해 채석한 현장을 발견한 바 있다. 또 1943년 발행된 조선총독부의 조선광구일람에서 '유성금산(儒城金山)'이라는 금 광산이 지금 갑천습지 일원에서 금을 채굴했다는 사실을 규명했다. 조선제련 소유의 유성금산은 금과 은을 채굴할 목적으로 1933년 조선총독부로부터 50만4390㎡(15만2578평)에 이르는 면적에서 개광 허가를 받았다고 기록되어 있어, 이곳에서 1933년께부터 채굴이 있었음을 짐작케한다.

특히, 조선제련이라는 기업은 조선총독부가 식민지에서 산업·금융 지배 일환으로 설립한 조선식산은행 산하에 있었고, 서천 장항제련소를 건설해 1945년까지 직접 운영하며 조선에서 채취한 금과 은을 녹여 일본으로 수탈한 대표적 기관이다. 조선제련이 '유성금산'이라고 명명한 광업 지대에서 그동안 육안으로 관찰된 채굴현장 외에 입구가 무너진 채굴 추정지가 이번에 또다시 확인된 것으로 대전에서 이뤄진 지하자원 수탈 규모가 상당히 컸음을 짐작케한다. 또 금 수탈 과정에서 많은 근로자가 동원되어 이곳에서 노동하거나 머문 흔적이 지금도 발견된다. 바위 밑에서 흘러나오는 샘물을 정성껏 가꾼 샘터가 있고, 계곡 주변에 바닥은 평탄화되어 사람들이 옹기종기 앉거나 작은 천막을 칠 수 있을 정도로 다져져 있다. 또 큰 쇠고리 하나가 땅에 박혀 있는데 일부 주민의 증언으로는 금 개발 때 큰 천막을 끈으로 묶어 고정하는 장치였다고 기억되고 있다.

1D1A1207
갑천습지 산책로 중에 유실된 구간에서 산에서 깎은 돌을 차곡차곡 쌓아 기초를 쌓은 흔적이 발견됐다. 지금은 산책로로 사용되나 과거에는 이 일대 금 광산의 채석 운반 길로 사용되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사진=임병안 기자)
▲유실된 산책로에서 돌 쌓은 기초 드러나



지난 여름 불어난 물에 갑천습지 산책로에 사면이 일부 무너지면서 산책로의 기초 부분이 밖으로 드러났는데 주먹만한 돌을 차곡차곡 쌓고 그 위에 흙을 두텁게 덮은 흔적이 발견됐다. 갑천습지의 산책로는 금 광산부터 큰길인 계백로까지 연결하듯 놓여 있는데, 지금도 필요시 굴삭기가 운행할 정도로 넓고 잘 다져져 평소에 시민들의 편안하게 걷는 산책로로 활용되고 있다. 그러나 물이 쉽게 차오르는 습지에 잘 다듬은 산책로가 언제 조성되었는지 알려지지 않고 있다. 이번에 유실된 구간에서 산책로의 기초 부분이 작은 돌을 차곡차곡 쌓은 흔적이 드러나면서 산책로가 이곳에 포진한 금 광산과 관련 있을 것으로 여겨진다. 산책로 옆에는 바위를 인위적으로 채석한듯 날카로운 절단 흔적이 발견되는데, 산책로의 기초를 쌓은 돌을 산의 사면에서 인위적으로 채석해 확보했던 것으로 여겨진다.

다만, 입구가 무너진 동굴의 조성 목적이 조선제련의 금 광산이었는지 아니면 텅스텐 등의 다른 지하자원 채굴 목적이었는지 조사가 더 이뤄져야 한다.
임병안 기자

중도일보(www.joongdo.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 금지

기자의 다른 기사 모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