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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톡] 제3회 대전부르스 전국가요제를 보고

김용복/평론가

김의화 기자

김의화 기자

  • 승인 2026-10-26 14:22
대전부르스 전경
제3회 대전부르스 전국가요제가 2026년 10월 25일(일)대전 중구 우리들공원에서 최종 결선이 개최됐다.

♬잘 있거라 나는 간다. 이별의 말도 없이. 떠나가는 새벽 열차 대전발 영시 오십분. 세상은 잠이 들어 고요한 이 밤. 나만이 소리치며 울 줄이야 아~ 붙잡아도 뿌리치는 목포행 완행열차. 기적 소리 슬피우는 이별의 프렛트홈. 무정하게 떠나가는 대전발 영시 오십분. 영원히 변치말자 맹세했건만 눈물로 헤어지는 쓰라린 심정. 아~ 보슬비에 젖어오는 목포행 완행열차♬

이 노래는1959년 안정애가 부른'대전 부르스'다. 필자가 당시 고등학교 3학년.

먼 산나무를 해다 아궁이에 불을 땔 수 있었고 아이스케키 얼음과자나 당원, 사카린 등을 목판에 담아 팔아서 연명하던 시대였다.



당시 석탄을 때서 달리던 열차가 짝수 번호면 서울행, 홀수 번호면 부산행이나 목포행 등 지방으로 가는 열차였다. 이 노래에 등장하는 목포행 완행열차인 제33열차는 밤8시 45분에 서울을 출발해 중간 정차역이던 대전에 0시40분에 도착한 뒤, 10분 동안 석탄과 물을 보충한 다음 다시 목포를 향해 0시50분에 출발했다. 이때 손님들은 열차에서 뛰어내려 그 유명한 '대전역 가락국수'로 허기를 채운 뒤 출발하였던 것이다. 그리고 생긴 지 1년 만에 이 기차 노선이 대전역을 거치지 않고 서대전역으로 직접 가게 했던 것이다.

그러나 열차는 사라졌지만 안정애 가수의'대전 부르스'는 우리 국민들의 애환과 함께 가슴속에 남아 있다. 이 노래에는 다음과 같은 애정이 서려 있다고 한다.

1959년의 어느 밤 12시 40분경, 대전역 광장으로 산책을 나온 한 사내의 시선이 대전역 플랫폼 가스등 아래 멈췄다. 그곳에는 청춘 남녀가 두 손을 꼭 잡고 눈물을 글썽이며 이별을 아쉬워하고 있었다. 곧 이어 남자를 태우고 갈 목포행 완행열차가 대전역에 도착했고, 마침내 둘은 이별해야만 했다. 이 장면을 본 사내가 바로 작사가 최치수. 그는 곧바로 이 장면을 시로 썼고, 이 시는 훗날'대전 부르스'의 가사가 됐다. 여기에 김부해 작곡가가 애간장이 녹아내리는 블루스 선율을 얹었고, 안정애가 서정적인 감정을 담아 하소연하듯 사람들의 심금을 울렸다. 그래서 이 노래는 1963년 이종기 감독이 최무룡·엄앵란·신성일을 주연으로 <대전발 0시 50분>의 영화로 제작하여 주제곡이 되었던 것이다. 그런 애환이 담긴 이야기를 사)대전가수총연합회가 주최 주관하고, 사)한국청소년육성연맹과 청양골식당, 그리고 수 많은 후원자들의 후원을 얻어 진행하고 있는 것이다.



대전역 가락국수
대전역 플랫폼에서 팔던 가락국수 기계 모습 출처=대전역 코레일 전시실
필자는 운이 좋게도 이 시간에 이곳을 지나게 되었다. 마침 대전가수총연합회 한양희 홍보이사가 '터미널'을 부르고 있었다.

♬고속 버스 차창 넘어 외로운 소녀 울고 있네. 가지 말라고 곁에 있어 달라고 애원하며 흐느끼네 기약 없이 서울로 가는 머심애가 너무 야속해 차창을 두드리며 우네. 땅 바닥에 주저 앉아 우네. 터미널엔 비가 오네. 밤도 깊은 터미널에 외로운 남자 울고 있네. 그때 그 시절 옛 사랑을 찾아서 이 거리를 다시 왔건만 뿌리치며 떠나야 했던 그 세월이 너무 길었나. 밤 거리를 헤매이며 우네. 옛 사랑이 그리워서 우네.♬

터미널이라는 공간과 그 가사에 담긴 애환은 한국 근현대사의 아픔, 고향을 떠나야 했던 이들의 눈물, 그리고 만남과 이별이 교차하는 서민들의 삶을 그대로 투영하고 있다.

대중가요에서 '터미널'은 단순한 정류장이 아닌, 인생의 큰 전환점과 감정의 소용돌이가 일어나는 무대로 그려졌는데, 가장 대표적인 노래가 윤수일의 <터미널>이다.

그 노래를 가수 한양희가 처량한 음색을 가미하여 기약 없이 서울로 가는 야속한 머심애를 원망하고 있는 것이다.

"고속버스 차창 넘어 외로운 소녀 울고 있네… 기약 없이 서울로 가는 머심애가 너무 야속해."

박정희 대통령의 새마을 사업이 한창 무르익을 무렵인 산업화 시기(1970~80년대), 수 많은 젊은이들이 일자리를 찾아 정든 고향과 연인을 남겨둔 채 서울행 버스에 몸을 실었던 것이다. 가사 속 '기약 없는 상경'은 단순한 변심이 아니라, 성공해야만 살아남을 수 있었던 시대적 생존 투쟁과 그로 인한 이별의 슬픔을 하소연 하고 있는 것이다.

그 애절한 하소연을 한양희 가수가 가지 말라고 차창을 두드리며 땅바닥에 주저앉아 우는 소녀의 모습을 잘 소화해 내고 있었다.

"뿌리치며 떠나야 했던 그 세월, 그때 그 시절 옛사랑을 찾아서 이 거리를 다시 왔건만, 뿌리치며 떠나야 했던 그 세월이 너무 길었나."

모질게 마음을 먹고 고향을 떠나 성공을 좇았지만, 시간이 흐른 뒤 남은 것은 그리움과 후회뿐이다. 그러나 뒤늦게 옛사랑을 찾아 터미널을 다시 찾았을 때는 이미 너무 많은 세월이 흘러 다시 되돌릴 수 없는 먹먹함과 고독이 밀려왔던 것이다.

그만 끝내자.

관람을 하면서도 눈물이 마구 흐르기 때문이다.

필자가 애타게 좋아했던 정자도, 순옥이도 생각났기 때문이다.

그런데 고마운 것은 오늘 이 자리에서 필자가 그토록 찾아 헤맸던 딸 같은 가수 권보라를 만났고, 필자가 사랑하는 여동생 길금자와 에코무용단 대표 이은경도 만났으며, 유명가수 이강철과 김건호 모델, 그리고 나나영이 이끄는 시니어 모델 패션쇼를 볼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뿐만이 아니다. 필자를 보고 이상덕 지휘자가 찾아와 반갑게 손을 잡아줬던 것이다.

오늘 이 무대에서 음악 반주를 맡았다는 것이다.

실컷 흐느꼈지만 마음은 행복한 하루였다.

김용복/평론가

김용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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