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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人칼럼] 캐스팅 테이블

도자디자이너 조부연

최화진 기자

최화진 기자

  • 승인 2026-06-04 02:16

신문게재 2026-06-04 1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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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자디자이너 조부연
요즘들어 40여 년 전 모교의 전공실이 자주 생각난다. 새벽에 작업실로 향할 때면 마치 그 전공실에 걸어 들어가는 것 같이 느껴진다. 오늘 새벽은 더더욱 그랬다. 1980년대 후반, 도자기를 처음 배우기 시작했던 때의 전공실이 아직도 생생하다. 그려보라면 그릴 수 있을 정도다. 그중에 지금 눈앞에 있는 것 같은 게 하나 있다. 길이 2미터, 폭이 1미터 이상인 커다란 테이블이다. 특이하게 가운데가 60센티가량 뚫려 있고 그 아래에는 옛날 지붕의 플라스틱 슬레이트가 뭔가를 흘려 내려보내려는 듯 기울어져 덧대어 있었다. 게다가 테이블의 뚫린 사이에 두 개의 두꺼운 각목이 나란히 걸쳐 있었다. 거기에 하나 더, 뚫린 공간 위로 높이 50센티, 폭 40센티가량의 선반이 만들어져 있었다. 도대체 무엇에 쓰는 물건일까.

어디에 쓰는 것인지 2학년이 돼서야 알게 됐다. 졸업 작품전을 앞둔 4학년 선배들만 사용할 수 있던 그 테이블은 '캐스팅 다이'라고 불렸다. 가다(かた)-그때는 몰드를 가다라고 불렀다-속으로 연신 흙물을 붓고 쏟아내어 각목 사이에 척척 걸쳐놨다. 플라스틱 슬레이트에 흙물이 줄줄 흘러내렸다. 그리고 가다를 분리하면 꼬들꼬들한 그릇이 하나씩 태어났다. 이 과정을 선배들은 계속 반복했다. 처음으로 슬립 캐스팅 장면을 봤던 기억이다. 4학년이 되어 그 캐스팅 다이에서 졸업 작품을 만들었다. 곧바로 동 대학원에 입학했고 그 캐스팅 다이를 졸업할 때까지 줄곧 사용했다. 학교가 이전해도 계속 따라다녔다. 아마도 30년 가까이 사용했을 것이다.

2000년대 초반 충남 금산의 대학 도예과에서 시간 강사로 '산업도자' 과목을 강의했다. 개설한 지 오래되지 않은 학과여서 실습에 필요한 기자재가 거의 없었다. 제형물레, 슬립교반기 등을 전임 교수와 상의하고 사들였다. 가장 큰 문제는 캐스팅 테이블이었다. 모교의 전공실로 주문을 의뢰한 목수를 보냈다. 모양과 치수 그대로, 튼튼하고 묵직한 나무(나왕)로 제작을 의뢰했다. 플라스틱 슬레이트 대신 번듯한 스테인리스를 덧댄 멋진 캐스팅 테이블이 한 달여 만에 도착했다. 가운데 고정했던 두꺼운 각목을 분리할 수 있게 했고, 선반은 두지 않았으며 테이블 상판에 검은색 두꺼운 고무패드를 붙이지 않고 올려놨다. 정확한 비용은 기억나지 않지만, 전임교수의 지나가는 푸념이 기억난다. 그 당시 건조대 2개와 함께 주문 제작했는데 300만 원이 훨씬 넘었다고 했다.

어찌어찌 모교의 '캐스팅 다이'의 복제품인 '나왕으로 만든 멋지고 튼튼한 캐스팅 테이블'이 필자의 작업실로 흘러 들어왔다. 그 캐스팅 테이블에서 작품을 만들어 개인전을 세 번이나 열었다. 몰드는 늘어나고 작업실이 점점 비좁아졌다. 캐스팅 테이블이 너무 많은 공간을 차지하고 있었다. 어느 날 동사무소에서 대형폐기물 스티커를 사다가 붙여 공터에 내놨다. 밤사이 누군가 스테인리스판을 떼갔고 며칠 후 대형트럭이 도착했다. 해머질 몇 번에 테이블이 부서졌고, 트럭에 실려 떠났다.



몰드를 뒤집어 걸쳐 놓던 3×3 나왕 각목만은 버리질 못했다. 대리석판 작업 테이블에 각목을 클램프로 고정하면 어찌어찌 슬립 캐스팅 테이블로 변한다. 슬립(흙물)은 넓고 커다란 플라스틱 용기에 먼저 따라내고 각목에 기울여 놓는다. 예전의 번듯한 캐스팅 테이블 없이 나왕 각목만으로 개인전을 두 번이나 더 했다. 지금은 흙물이 흘러 내릴 수 있게 만든 1미터 남짓한 이동식 캐스팅 박스를 만들어 사용한다. 크기도 작고 생김새도 다르지만 40년 전 그 캐스팅 테이블에서 작업하는 것 같다. 햇빛 잘 드는 작업실 유리창 앞에 나왕 각목을 두 줄로 세우고 젖은 몰드를 척척 올려놓고 말린다. 나왕 각목은 아직도 열일 중이다.

도자디자이너 조부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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