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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인수 수필가 |
한번 곰곰이 생각해 보십시오. 세상에 대해 우리는 많이 알고 있다고 하지만, 냉정하게 따져들어가면 아는 게 그리 많지 않습니다. 한번 귀로 들어본 것, 한번 눈으로 본 것, 이름이나 제목 정도만 알고 있는 것을 알고 있다고 여깁니다. 이는 대단한 착시이자 착각입니다. 문제는 자기만 옳다고 믿는 그릇된 신념입니다. 다른 것에 대해서는 아예 알려고 하지 않고, 알고자 하는 마음도 없습니다. 넓고 깊지 않기 때문입니다. 우리 모두가 사유와 성찰을 통해 침웅해야 할 때입니다. 그래야 서로가 진정으로 이해하고 배려하며 받아들일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지구촌에서 살아가는 인류가 9천년 전에 문명을 일으키면서 인간의 삶은 획기적으로 바뀌었습니다. 그야말로 야생과 야만에서 정착과 문명의 삶으로 변화된 것입니다. 이것을 가능하게 한 가장 근본적인 첫 시작은 세 가지 키워드인 정착, 농업, 목축입니다. 제레드 다이아몬드는 그의 명저 <총균쇠>에서 인류 문명을 바꾼 것은 인종이 아니라 환경이었다고 말하면서, 농업혁명이 모든 것의 출발점이었다고 말합니다. 농사를 지으며 안정적인 식량 생산이 가능해졌고 이로 인해 굶어 죽을 걱정으로부터 해방되었습니다. 그 결과 급격하게 인구가 늘어나기 시작했습니다.
또한, 동물을 가축화시키면서 피복, 노동력, 이동수단 등 많은 부분에서 삶이 달라졌습니다. 이렇게 농업혁명과 이로 인한 인구의 증가는 씨족과 부족 등 공동체의 형성과 국가로의 발전으로 이어졌습니다. 그리고 다양한 분야에 있어 기술의 발전이 축적되어 결국 총(무기와 군사력), 균(전염병과 면역), 쇠(금속 기술과 산업)로 이어졌다는 것이 <총균쇠>의 핵심입니다.
고대 부족은 인간이 먹고 살기 위해 어쩔 수 없이 동물들을 사냥했고, 가축화 시키면서 식량으로 이용했지만 절대 무분별하게 죽이지 않았습니다. 오락이나 유흥의 대상으로 살아있는 동물을 바라보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동물의 존재에 감사했습니다. 지금도 여전히 힌두교에서는 소를 신성시하고 있고, 이슬람교나 유대교에서 돼지고기를 먹지 않는 풍습도 그 근원을 따져 들어가면 생명에 대한 존중이 깔려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이 지점에서 현실을 돌아봅니다. 우리의 식생활은 과거에 비해 육류 소비가 엄청나게 늘어났습니다. 통계를 살펴보면 우리나라의 1인당 육류 소비량은 1970년대 약 5.2kg 수준에서, 불과 50년 후인 2020년대에는 무려 11배 이상 증가했다고 합니다. 전문가들은 이를 생존형 탄수화물 식단에서 기호형 단백질 식단으로 바뀌었다고 말합니다. 불과 몇십 년, 몇년 전까지만 해도 시골에서는 씨암닭을 길러 계란을 얻고, 귀한 손님이 오면 그 닭을 잡아 대접했을 만큼 귀했던 육류가 지금은 마트에만 가면 값싸게 얼마든지 살 수 있는 세상이 되었습니다. '비건'처럼 동물성 식품을 일절 섭취하지 않는 완전 채식주의자를 뜻하는 단어도 있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식용으로 사육된 동물의 고기를 섭취합니다. 극히 일부를 제외하고는 인간의 생존을 위해, 삶을 위해 동물의 고기를 먹는 걸 반대하거나 비난하지는 않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식용을 목적으로 동물을 사육하는 게 아니라, 단지 죽이기 위해 키우고 있다고 한다면 어떻게 생각하시겠습니까? 최근 국제 동물보호단체인 페타(PETA)가 "죽이기 위해 새 떼를 키우고 있다"고 폭로했습니다. 그들이 공개한 사진을 보면 그야말로 끔찍합니다. 커다란 구덩이를 죽은 동물들이 가득 메우고 있습니다. 전부 새입니다. 구체적으로는 우리나라에서 '꿩'이라고 불리는 새의 종류입니다. 야생동물들에게 희생당한 게 아니라 모두 인간이 벌인 짓입니다. 구체적으로는 사람이 사냥하기 위한 대상으로 키워서 죽이고 버린 것입니다. 애완용이거나 식용으로 키운 게 아니라 사냥감으로 사용하기 위해 살아있는 새를 키웠다는 게 소름돋을 정도로 놀랍기만 합니다. 이를 보도한 기자의 표현대로 인간에게 재미를 선사하기 위해 태어나 재미를 위해 죽은 장난감에 불과했던 것입니다.
우리나라에도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오로지 사냥을 위해 동물들을 대량 사육하는 문화는 여전히 세계 곳곳에 남아 있다고 합니다. 심지어 그 규모도 적지 않은데, 예를 들면 영국 한 나라에서만 매년 최대 약 7000만마리의 새가 희생되는 것으로 나타났다는 조사 결과도 있습니다. 그리고 사냥이라는 재미를 위해 키워지는 동물이 비단 새에만 국한하지 않고 사슴, 멧돼지, 캥거루, 심지어 동물의 왕이라고 하는 사자까지 많은 동물들이 오직 사냥을 위해 키워지고 있다는 충격적인 소식입니다. 영국은 한 때 해가 지지 않는 나라라고 했습니다. 세상에서 가장 먼저 민주주의가 발달하면서 '신사의 나라'라고 불렸습니다. 그런데 이 나라에서 '새 사냥 산업'이라고 부를 정도로 조직적인 사냥이 이뤄진다고 하니 놀랍기만 합니다.
그들의 사냥 방식은 이렇습니다. 알을 부화시키고, 먹이를 주며 길러 사냥철 직전 자연에 풀어놓습니다. 그리고 사냥객을 모집합니다. 사냥객들은 사냥터를 찾아와 돈을 지불하고, 산탄총을 쏴 새들을 잡습니다. 그리고 떠납니다. 업체에서는 사체들을 모아 구덩이에 던져넣습니다. 생각 만해도 참으로 참담할 지경입니다. 사냥객들이 지불하는 비용도 놀라울 정도로 매우 많습니다. 몰이식 꿩 사냥에서 잡는 새 한 마리당 9만 5천 원의 돈을 낸다고 합니다. 새 한 마리를 잡고 무려 10여 만원을 내는 것입니다. 하루에 평균 121마리가 사냥으로 인해 죽는다고 하니, 무려 1천 만원이 넘는 돈을 사냥을 위해 지불하는 셈입니다. 입이 다물어지지 않습니다. 그 돈이면 무려 5백 권이나 되는 새 책을 살 수 있으니, 인문학적 사유와 성찰의 필요성이 더 절실하게 다가옵니다.
이처럼 동물보호단체의 문제 제기가 이어지자 그제야 영국 정부가 움직인다는 소식이 있습니다. 즉각 전면 중지를 명하지 않은 것은 유감이지만, 증거 수집에 착수하면서 사냥 산업 전반에 걸쳐서 문제점을 조사하기 시작했다는 것입니다. 당연히 해야 할 일이고, 진즉 했어야 할 일입니다.
"모든 살아 있는 존재들은 행복하기를 바라나니, 괴롭히거나 폭력을 쓰거나 죽이지 말라." 불교의 경전인 '법구경'에 나오는 말을 떠올립니다. 비록 하찮은 미물일지라도, 말 못하는 동물일지라도 한 생명을 소중히 여기는 마음이 절실히 요구되는 때입니다. 그래야만 지금도 벌어지고 있는 전쟁을 포함하여 앞으로 예상되는 심각한 위협들로부터 인간의 삶이 위태롭지 않을 것입니다.
인산 김인수/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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