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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경소리] K-컬츄어의 원동력 가을운동회를 다시 찾아야 할 때

김덕희 전 우송대학교 교수

방원기 기자

방원기 기자

  • 승인 2026-10-12 13:06

신문게재 2026-10-13 19면

김덕희 우송대 교수 풍경소리
김덕희 전 우송대학교 교수
초등학교 운동장에 가을이면 어김없이 울려 퍼지던 응원과 단결의 함성이 사라지는 현실이 안타깝다. 가을 하늘 아래 청군과 백군으로 나뉘어 목청껏 응원하던 운동회. 만국기가 펄럭이고, 학부모가 돗자리를 펴고 김밥을 나누던 그 풍경이 요즘 학교에서는 낯설어지고 있다. 코로나19 이후 규모가 줄어든 운동회는 이후에도 제자리로 돌아오지 못했다. 안전사고 부담, 학사 일정의 빠듯함, 폭염과 미세먼지 같은 환경 변화가 이유로 꼽힌다. 많은 학교에서 학년별 체육 활동이나 교실 중심의 '체험 행사'로 축소되었고, 어떤 학교에서는 아예 열리지 않는다. 이것을 단순한 행사 하나의 변화로 볼 일은 아니다. 우리 교육이 무엇을 놓치고 있는지 묻는 신호이기 때문이다.

운동회는 '살아 있는 교과서'였다. 운동회의 가치는 달리기 순위에 있지 않았다며 규칙을 지키는 법과 지는 법, 이기고도 겸손해지는 법을 몸으로 배웠다. 이어달리기에서 바통을 놓친 친구를 향해 "괜찮아, 다시 하면 돼"라고 외치는 순간, 아이는 교실에서 열 번 들어도 와닿지 않던 배려를 체득한다. 줄다리기에서는 내 힘이 전체의 힘 안에서 의미를 갖는 것을 느끼고, 큰 공 굴리기와 이인삼각에서는 속도보다 호흡이 중요하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이심전심(以心傳心)과 동심협력(同心協力)의 교육 활동이다. 사회정서학습의 핵심 요소, 곧 자기 인식, 감정 조절, 타인 이해, 협력, 책임 있는 의사결정이 운동회 한 날에 모두 들어 있다.

스마트폰으로 혼자 노는 아이들에게 몸을 부딪치며 함께 땀 흘리는 경험은 대체하기 어려운 교육이다. 아이들의 체력 저하와 비만, 정서적 고립이 사회문제로 거론되는 지금, 운동회는 신체 활동과 공동체 경험을 동시에 채워 주는 활동이다. 또 학교와 마을을 잇던 축제로 부모, 조부모, 동네 어른들이 운동장에 모여 아이들을 응원하고, 학부모 달리기와 마을 대항 경기에 직접 참여했다. 아이는 자신이 공동체의 보호와 응원 속에 자란다는 감각을 얻고, 어른들은 학교와 아이들을 함께 키우는 이웃이라는 연대를 확인했다. 요즘 학교와 가정 사이에 쌓인 불신과 긴장을 생각하면, 이런 비경쟁적이고 즐거운 만남의 자리가 얼마나 귀한지 알 수 있다. 민원과 갈등으로만 만나던 교사와 학부모가 같은 운동장에서 함께 웃는 경험은 신뢰를 회복하는 자연스러운 길이다.

나아가 가을운동회는 어쩌면 K컬처의 뿌리인지도 모른다. '함께 노는 힘' 세계가 K팝과 K드라마, K푸드에 열광하는 그 밑바탕에는 한국 사회가 오랫동안 길러 온 공동체적 에너지가 있다. 모두 '함께할 때 더 커지는 힘'이라는 정서에서 나왔다고 볼 수 있다. 초등학교 운동회는 함께하는 현대판 마을 축제였던 셈이다. 그 운동장에서 자란 세대가 협동과 응원, 흥과 정의 문화를 사회로 가져갔다. 이 뿌리를 가꾸지 않으면 K컬처의 지속 가능성도 얕아질 수밖에 없다.



다만 안전과 교육, 둘 중 하나를 고를 필요는 없다. 운동회는 안전사고에 대한 교사의 부담과 책임 문제, 준비에 드는 시간과 인력, 기후 변화로 인한 야외 활동의 제약은 분명한 어려움이다. 그러나 어려움이 있다고 해서 교육적 가치까지 포기할 이유는 없다. 방법을 바꾸면 될 것이다. 우선, 경쟁 중심에서 협력 중심으로 종목을 재설계할 수 있다. 운동회 운영 부담 경감, 폭염과 미세먼지에 대비한 유연한 운영, 사고에 대한 과도한 책임 추궁 대신 교사를 보호하는 제도적 장치가 마련되어야 한다. 효율과 안전이라는 이름으로 우리가 지워 온 것이 아이들의 웃음소리와 공동체의 온기라면, 그 대가는 결코 작지 않다. 교육은 몸으로 겪고 함께 부대끼며 배운 것이 오래 남는다. 운동회는 그러한 배움이 가장 즐겁고 자연스럽게 일어나던 시간이었다. 올가을에는 학교마다 운동장에 다시 만국기가 걸리기를 바란다.

규모가 작아도 좋고 방식이 새로워도 좋다. 호연지기를 기르고 아이들이 함께 달리고, 넘어진 친구를 일으켜 세우고, 어른들이 손뼉 치며 응원하는 하루가 있다면 그것이 곧 운동회다. 한국 문화의 가장 깊은 뿌리는 그 운동장에서 자란다고 생각한다. /김덕희 전 우송대학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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