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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단풍, 계절을 기록하다

이미선 기상청장

이혜린 기자

이혜린 기자

  • 승인 2026-10-14 15: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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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선 기상청장
"초록이 지쳐 단풍 드는데." 서정주의 시 '푸르른 날'의 한 구절이다. 단풍이 드는 모습을 참 기발하고도 재미있게 표현했다. 한껏 푸르렀던 나뭇잎이 울긋불긋 물드는 모습을 '초록이 지친다'고 표현하다니, 시인의 눈으로 바라본 가을은 우리에게 과학적인 설명과는 또 다른 깊이를 전해주는 것 같다.

기후학적으로 보면 단풍은 기온과 일조량 변화에 따른 잎의 생리적 현상이다. 단풍은 단순히 푸름이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기존의 색이 사라진 자리에 숨어있던 색이 모습을 드러내거나 새로운 색이 입혀지는 과정이다.

나무는 봄과 여름 동안 정성을 다해 잎을 키운다. 풍부한 햇빛을 받고, 비와 바람을 견디며 잎을 펼친다. 그렇게 한 계절을 충실하게 살아낸 나뭇잎은 가을이 되면 서서히 자신의 역할을 내려놓기 시작한다.

아침저녁으로 기온이 떨어지고 낮의 길이가 짧아지면, 나무는 겨울을 대비하는 월동 준비에 들어간다. 잎으로 이동하는 수분과 영양소가 점차 줄어들고 잎 속의 엽록소가 분해되면서, 그동안 초록색에 가려서 보이지 않았던 노란색이 나타나고, 새롭게 생성된 붉은색이 모습을 드러낸다.



노란색을 띠는 카로티노이드 계열의 색소가 모습을 드러내기도 하고, 나무의 종류와 환경에 따라 붉은색을 나타내는 안토시아닌이 만들어지기도 하는 것이다. 바로 이것이 우리가 단풍이라고 부르는 현상으로, 우리가 바라보는 노랗고 붉은 단풍은 바로 이러한 자연의 변화에 의해 만들어진 결과물이다.

단풍은 봄과 여름에 피어나는 꽃과는 다른 차원의 아름다움을 선사한다. 산 전체를 수놓은 듯한 다양한 나무의 가을빛은 사람들을 산으로 끌어들이는 마법을 부린다. 평소에는 산에 관심이 없던 사람도 가을이 되면 단풍 소식에 귀를 기울이고 가족, 친구와 함께 산을 찾는다.

올해도 산은 사람들을 이끄는 마법을 부릴 준비를 하고 있다. 아직 산 전체에 다양한 색깔이 입혀지지는 않았지만, 머지않아 우리는 아름다운 가을빛을 두 눈으로 확인하게 될 것이다.



한편, 단풍은 매년 볼 수 있지만 매번 똑같은 단풍을 볼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나무가 가진 고유의 색깔은 그 해의 기온과 일조량, 강수 등 기상 조건에 따라 조금씩 다르게 나타난다. 여기에 나무가 자라는 지형과 토양, 습도 같은 생육환경은 물론 수령과 건강 상태 등 그 밖의 여러 조건도 색의 농도와 변화 시기에 영향을 준다. 그만큼 단풍은 예측하기 어렵고, 그래서 더 아름답고 소중한 자연의 기록이다.

기상청에서는 이러한 단풍의 변화를 해마다 기록하고 있다. 매년 단풍의 빠르고 늦음의 차이를 파악함은 물론, 지역적 차이들을 꾸준히 관찰해 통계 및 관측자료를 생산해 기후변화의 추이를 기록하고 있다. 우리가 산에서 바라보는 단풍의 변화가 기상·기후 정보로 기록되고 있는 셈이다.

단풍 관측에는 일정한 기준이 적용된다. 일반적으로 산 전체에서 약 20% 단풍이 들었을 때가 '첫 단풍', 80% 정도 물들었을 때가 '단풍 절정'으로 판단된다. 따라서 우리가 일상적으로 생각하는 '단풍이 들었다'는 것의 기준과 기상청의 관측 기준에는 차이가 있을 수 있다.

기상청은 매년 전국 21개 주요 유명산의 단풍현황을 날씨누리에 제공하고 있다. 전국에서 가장 먼저 단풍의 소식을 알리는 곳은 설악산으로, 기상청 평년값 기준 10월 17일경 절정을 이룬다. 곧이어 지리산은 10월 23일, 계룡산은 10월 27일에 절정을 맞이하고, 무등산과 내장산은 11월 4일 무렵 절정을 맞이한다. 단풍은 북쪽에서 시작하여 남쪽으로 내려오므로, 기상청이 제공하는 단풍현황을 참고하여 계획을 잘 세운다면 아름다운 단풍의 모습을 오랫동안 즐길 수 있을 것이다.

올가을에는 가까운 산을 찾아 단풍길을 걸어보면 어떨까? 꼭 이름난 명산일 필요는 없다. 발길이 이끄는 곳, 마음이 머무는 곳이면 충분하다. 그리고 잠시 걸음을 멈춰 나뭇잎을 바라보자. 작고 평범해 보이는 잎 하나에도 계절의 흐름과 수많은 시간이 고스란히 담겨 있음을 기억하고 계절을 지나오며 나무가 견뎌낸 시간들을 생각하면, 매년 보던 단풍이 더욱 특별하고 의미 있게 느껴질 것이다.
이미선 기상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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