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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룩백' 포스터 |
그러다가 후지노는 학교도 잘 안 나오는 은둔 소녀 쿄모토의 만화에 절망합니다. 스토리와 캐릭터에 강한 후지노와 달리 쿄모토의 그림은 배경이 세련되고 정교합니다. 만화 그리기를 접고 친구들과 평범하게 지내며 운동을 하게 된 후지노. 졸업장을 대신 전해 주기 위해 방문한 쿄모토의 집에서 운명처럼 그녀와 대면합니다. 후지노의 그림이 유일한 위안이었고, 그녀를 존경까지 한다는 쿄모토의 말에 후지노는 다시 그림에 몰두합니다. 쿄모토의 닫힌 방문 틈으로 스며 들어가는 후지노의 만화 종이는 한 사람의 인생이 일순간의 계기로 새로운 방향을 얻게 되는 모습을 잘 보여 줍니다.
영화는 전반부와 후반부가 분명하게 나뉩니다. 전반부는 후지노의 이야기라 해도 좋습니다. 시골의 두 소녀는 함께 만화를 그리고, 만화 전문지에 응모해 당선되면서 꿈을 키워 나갑니다. 후지노가 주도해 나가고, 쿄모토가 함께 합니다. 그러다가 둘은 다른 길로 갈라섭니다. 후지노는 프로 만화가로 성장해 마침내 원작 만화를 애니메이션 영화로 제작하기에 이릅니다. 쿄모토는 그림을 더 잘 그리고 싶다며 미술대학에 진학합니다. 세월이 흐르고 후지노가 창작자로서의 고뇌와 허무를 느낄 때 급작스런 쿄모토의 사고 소식을 접합니다.
쿄모토를 문상하기 위해 고향을 찾은 후지노. 영정 사진 속 쿄모토와 그녀가 머물던 방의 흔적을 통해 그녀는 친구의 삶을 추억하고 상상합니다. 어둑신한 방안 앉은뱅이 책상 앞에 앉아 만화를 그리는 쿄모토의 등이 보입니다. 그리고 이어지는 영화의 후반부는 후지노의 상상을 통해 재현된 쿄모토의 이야기입니다. 두 소녀는 서로의 등을 보며 성장했고, 이제 쿄모토는 후지노의 기억 속에 남아 그녀의 창작에 관여할 것입니다.
제목 <룩백, look back>은 서로가 서로의 등을 본다는 우정의 의미를 지닙니다. 하지만 뒤를 돌아보며 지나온 세월을 회상하고 성찰한다는 뜻을 함께 드러냅니다. 물론 후지노의 회상이지만 영화는 불의의 사고로 죽은 쿄모토가 그녀의 성장과 현재 속에 함께 하고 있음을 발견하게 합니다. 가장 아름다운 장면으로 후반부 끝부분 두 소녀가 바닷가에 서 있다가 하늘로 올라가는 상상이 애니메이션으로 전환되는 대목이 생각납니다. 실사에서 애니메이션으로 전환되고 도약하는 영화적 매력이 지극히 빼어납니다.
원작 만화가 그러하듯 영화는 대단히 섬세하고 아름답습니다. 한 권짜리 단편 만화를 확장한 이 영화는 거장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이 한 장면, 한 장면에 들인 공력이 출중하기 이를 데 없습니다. 어린 시절 두 소녀가 함께 거닐거나 뛰어다니는 바닷가, 숲속, 들판 등의 자연과 거기 흔들리는 나무들, 날아가는 새들, 아스라한 햇빛이 정겹고 유려합니다. 필시 추억이라는 필터를 거쳤기 때문일 것입니다.
영화는 예술가에게 처음의 시간이 있음을 보여줍니다. 그저 평범한 일상의 시간을 보내다가 한용운의 시 '님의 침묵' 한 구절처럼 날카로운 첫 키스의 순간 이후 예술의 영역 안으로 진입합니다. 이후의 삶은 이전과는 완전히 다른 세계의 매력 속에 있습니다. 관객들 역시 영화를 통해 예술 창작자의 시간과 존재 의미를 이해하게 됩니다.
/김대중 영화평론가(영화학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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