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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남도정회고록) "남기고 싶은 이야기"(40회) 신행정수도 건설에서 행정중심복합도시 건설까지

김용교
前 충남도정책기획관
前 아산시 부시장

한성일 기자

한성일 기자

  • 승인 2026-10-20 15:12

신문게재 2026-10-21 1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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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춘희 중앙단장(행복청장.국토부차관.2대에 걸친 세종시장 역임)과 나는 파트너십을 발휘했다. 사진=김용교 제공
김용교 사진
김용교
前 충남도정책기획관
前 아산시 부 시 장
(7) 이춘희 단장~청장(2기에 걸친 세종시장 역임) 주민 편에 서서 일을 하다

2003년 12월 29일, 신행정수도건설 특별법이 제정되고, 연기·공주지역으로 위치가 확정되면서 중앙에서는 이 사업을 직접 기획한 이해찬 국무총리가 진두지휘하였고 충남도에서는 심대평 지사가 대전시장과 충북지사와 공조를 이루며 중앙과 보조를 맞춰나갔다. 이해찬 총리는 총리 직속으로 신행정수도 건설지원단을 설치하고 단장에 고시 출신이고 엘리트 관료로 건교부에서 잔뼈가 굵은 이춘희 건교부 주택도시국장을 임명하였다.

충남도에서도 신행정수도 건설지원단을 설치하고 김용교 정책기획관을 부이사관으로 승진시켜 단장으로 임명하였다.



1) 원주민 생계 조합 설립, 수의계약 금액 한도 폐지



중앙의 이춘희 단장과 충남도의 김용교 단장은 연기 현지에서 매일같이 만나면서 파트너십을 발휘하며 여러 가지 준비와 주민 접촉을 펴나갔다. 나는 이춘희 단장의 주민 접촉 모습을 지켜보며 많은 감명을 받았고 배운 점도 참으로 많았다.

이 단장은 우선 주민과 대화할 때 끝까지 들어주는 스타일이었다. 낮에 농사일하고 저녁에 만나면 식사 겸 반주도 곁들이기 마련인데 체질상 술을 못 하는 이 단장은 조금씩 받아마시며 가랑비 옷 젖는 줄 모르듯 얼굴이 붉어지면서도, 동고동락 하였다.

이 청장은 심대평 지사께서 진행한 맞춤식 보상 방침과 주민설문 조사결과를 100% 수용하여 그대로 보상을 진행시키기로 하였다. 그리고 원주민 생활 안정을 위해 이 제도를 더욱 발전시킨 후속 대안을 내놓았다. 그것이 ‘주민생계조합’을 설립 운영하는 것이었다.



주민들로 하여금 생계조합을 구성케 하여 원주민들이 충분히 해낼 수 있는 가옥철거, 묘지 이장, 수목 이전사업 등을 생계조합과 수의계약을 체결해 일거리를 제공함으로써 주민 일자리도 마련해주고 소득도 높여 주는 방안이었다.

이춘희 청장은 관련 법령을 바꾸었다. 행정중심복합도시 건설사업 중 ‘생계조합’과 계약을 체결할 경우 수의계약 금액 한도 규정을 없앤 것이다.

이춘희 청장의 대단한 제도개혁이고 행정 혁신이었다. 편입되는 원주민들부터 큰 환영을 받았다. 토지공사도 손해 볼 일이 없고, 정부도 반대할 이유가 없었다.

이 제도개혁은 이후 전국 혁신도시 조성에도 파급 적용되어 원활한 보상추진과 편입되는 원주민 생계에도 적지 않은 도움을 안겨주고 있다. 충남도청 이전지역 보상의 경우도 이 방식을 적용하여 주민들 저항 없이 원만한 보상이 이루어진 바도 있다.

이춘희 청장의 다른 또 한 가지는 원주민들에게 직업훈련을 시켜 행정중심복합도시 건설현장에 취업시킨 일이다. 이 시책도 주민들의 상당한 호응을 얻은 모범사례로 회자되고 있다. 도시를 건설하는 과정에서는 건설과 관련된 여러 가지 일자리가 생긴다.

고용노동부의 직업훈련 프로그램을 도입하여 포크레인, 도배, 중장비운전, 건축·목공, 도배, 미용·제빵 등 원주민들에게 여러 종류의 직업훈련에 참여케 하여 일자리를 마련해준 일이다. 참 좋은 아이디어로 궁즉통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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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정도시건설은 국가대사로 그만큼 브리핑 할 기회도 많았다. 사진=김용교 제공
2) 은하수 공원 조성, 화장장 설치

한 가지 더 남기고 싶은 이야기는 세종시 도심 속에 화장시설 ‘은하수 공원’을 조성한 것이다.

그 당시만 해도 서울의 화장장 시설이 부족하여 화장 대기자가 많아서 3일 장은커녕 5일 장, 7일 장까지 이어졌다.

대단한 국민 불편사항이었다.

고인이 되신 최종현 선경그룹 회장이 생전에 화장장 설치를 위해 서울시에 상당 금액을 기부하였는데 시민들의 반대로 화장장 시설 적지를 마련하지 못하여 묵히고 있던 중 이춘희 청장이 이를 알고 이 돈으로 세종시에 은하수 공원이라는 현대식 화장시설을 갖춘 것이다.



(8) 이춘희 행정중심복합도시 건설청장 내정자, 김용교를 ‘행복청 주민지원 본부장’으로 제안하다

2005년도는 참으로 바쁘게 보내고 있었다. 행정중심복합도시건설청(이하 행복청이라 한다)을 국가기관으로 설치하게 되면서 이춘희 중앙 단장과 김용교 지방 단장은 행복청 사무실을 물색하러 다녔다.

사무실 부지를 찾던 중 (나로서는)우연히 편입구역 안에 충남도 소유 양묘장 부지가 있음을 알게 되었다. 그런데 그 위치도 절묘하였다.

나는 이 부지에 행복청 건물을 짓기로 하고 이춘희 단장께 보고드리니 매우 흡족해 하셨고 심대평 지사께 보고를 드리니 즉석에서 흔쾌히 승락해주셨다.

2004~2007년까지 4년간 나는 라디오, TV, 신문 등과의 인터뷰에 수없이 출연했다. 거의 매일 빠지는 날이 없을 정도였다. 특히 TV 인터뷰는 10초 이내가 가장 많았다.

1년에 150회만 잡더라도 600회는 넘었으리라. 하루는 KBS TV에 이춘희 단장, 김용교 단장이 공동출연한 후 이 단장께서 "지사님 뵐 수 있을까?" 여쭈셔서 비서실에 알아보니 가능하시다고 하여 함께 집무실로 가서 지사님을 뵙고 대화가 오가던 중 이 단장께서 "김용교 단장이 말을 참 잘하신다. 중앙부처 고위공무원단을 능가하는 수준이다"라는 칭찬과 격려의 말씀을 해 주셨다. 나는 의례적 말씀으로 받아들였다. 그런데 일은 그 후에 일어났다.

열흘쯤 지났을까, 이춘희 단장께서 행정중심복합도시 건설청장으로 내정된 후 행복청 인적구성을 은밀하게 진행하면서 보상업무를 전담할 주민지원본부장에 김용교를 염두에 두고 "함께 근무를 하였으면 한다"는 말씀을 하시는 것이 아닌가?

나는 꿈에도 생각지 않은 일이어서 크게 당황하였고, 고민이 거듭되었다. 한마디로 "이를 어찌해야 한다는 말이오?"였다.



① 보상 업무를 수행해야 한다는 점에서는 충남도에 근무하나 행복청에 근무하나 사명감을 갖고 국가에 충성한다는 것은 마찬가지였다.

② 충남도의 경우, 심대평 지사께서 민선 3기 임기를 마치기 전인 2006년 3월경, 임기 만료에서 3개월 정도 앞당겨 퇴임하여 새로운 정당을 창당하고, 2006. 6월 지방선거에서 광역·기초 단체장과 의회 의원들을 공천할 예정으로 정치 활동을 공식화 해 나가고 있었다. 도지사의 레임덕 현상도 느껴지고 있었고, 충남도청 공직사회의 인심변화도 읽을수 있었다

③ 2005년 당시 충남도의 최대 현안으로는 도청 이전 후보지 결정을 더 이상 미룰 수 없었고, 심 지사 퇴임 전 후보지를 확정해야 하는 중대 과제를 안고 있었다.행복도시 보상업무가 국가대사(國家大事)라면 도청 이전 후보지 확정은 ‘충남도정사(忠南道政史)’에 큰 획을 긋는 중대사(重大事)였다.

④ 김용교가 떠나더라도 후임자가 있고 밑에서 받쳐주는 조직들이 있지 않느냐? 고 반문할 수도 있겠지만 일이라는 것이 꼭 그렇지 않은 경우도 허다하다. 일에는 맥락과 경중과 완급과 연계성 여부가 영향을 미친다.

⑤ 행복청 주민지원본부장을 맡게 되면 신분상 어떠한 변화가 있게 될 것인가? 인사에는 변수가 있는 경우가 있어 장담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그럼에도 행복청장 비서관 B씨는 “이해찬 실세총리가 계신데다 이춘희 청장 성품상 최대 국책사업인 보상업무를 잘 마무리하면 승진과 영전은 틀림없을 것이라고 귀띔하기도 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여러 정황을 감안하고 고민하며 종합적으로 판단한 결과 16년째 이끌어온 도청 이전 후보지가 결정됐다면 지사님께 말씀을 드리고 자리를 옮길 수도 있었지만 이같은 충남도정의 대사를 앞두고 빠져 나간다는 것은 마음이 허락되질 않았다.

나는 결국 고심끝에 ‘나를 내려놓고, 일을 택하기로 하고 충남도에 머무는 것으로 결심’하였다.

그리고 이춘희 청장님께 나의 의중을 말씀 올렸다. 2006년 1월 1일 행정중심복합도시건설청 개청을 앞두고 인사발표가 있었고 주민지원본부장에 이병훈 문화관광부 간부 (후에 21대 광주지역에서 국회의원 역임)가 맡게 되었다.

나는 이춘희 청장의 이 같은 제안에 대하여 심대평 지사님께 일체 함구하고 있었다. 보고를 드릴 경우 지사님 성품상 본인 발전을 위해 흔쾌히 보내 주실 것이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결국은 들통나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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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정도시는 대전.충남.충북도 공조체제로 추진되었다. 사진=김용교 제공
행복청이 개정된 후, 1월 10일경 심대평 지사는 청장·차장, 행복청 4개 본부장과 과장급 16명 등 간부 전원을 편입구역 내의 식당에 초청하여 격려해주는 자리에서 이춘희 청장이 지사님께 "김용교 단장을 행복청 주민지원 본부장으로 임용하려고 본인에게 제안을 했는데 김 단장께서는 불사이군(不事二君 : 두 임금을 섬기지 아니함)의 정신으로 고사하셨다"고 말씀을 드렸다. 지사님께서는 "그런 일이 있었어요?" 깜짝 놀라시며 "아주 아깝게 되었다"며 안타까운 심정을 피력하셨다.

혹자는 "김용교 당신 참 잘났다"고 조롱섞인 말을 던질줄 모르나 나는 이같은 조롱이 있다면 단호히 배격하는 입장이었다.

그런데, 2006.7.1. 민선 4기 충남지사로 취임한 이완구 지사께서 충남도정의 최대과제는 "도청 이전 업무로 ‘전쟁 중에 말을 바꾸지 않는다’는 고사가 있듯이 김용교 행정도시 지원단장 겸 도청이전본부장은 2007년 그 자리에서 1년간 더 봉사하고 2008년에 부단체장으로 나가도록 방침을 정하여서 ‘충청남도 행정중심복합도시 건설추진지원단장 겸 충남도청 이전본부장’직을 3년 반에 걸쳐 맡게 되었고, 그러다 보니 명예 퇴임 시기와 관련, 2008년 1년간 아산시 부시장을 끝으로 공직을 마무리하게 되었다.

나의 관운은 거기까지였던 것이다.

김용교(前 충남도정책기획관/前 아산시 부 시 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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