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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흥채 한국생명공학연구원 바이오파운드리사업단 책임연구원·사무국장 |
답은 총량이 아니라 흐름에 있다. 상반기 벤처투자액의 51.2%가 ICT 제조·ICT 서비스·전기·기계·장비 세 업종에 몰렸다. AI와 반도체, 로봇에 직간접으로 연결된 업종들이다. 대형 거래의 편중은 더 뚜렷하다. 100억 원 이상을 유치한 초기기업 16곳의 투자액 4218억 원 가운데 3153억 원, 즉 4분의 3이 AI·로보틱스 기업 9곳의 몫이었다. 소수의 대형 거래가 전체 숫자를 끌어올린 셈이다.
바이오 안에서도 같은 쏠림이 나타난다. 투자자들은 임상 데이터가 쌓인 후기 단계 기업, 시장성이 검증된 적응증, 그리고 'AI'라는 이름표를 단 기업을 선호한다. 글로벌 시장도 다르지 않다. 올해 상반기 글로벌 바이오 벤처캐피털 자금의 40% 이상이 항암제와 면역질환 치료제 개발사로 향했다는 분석이 있다. 1분기 글로벌 바이오제약 VC 투자는 72억 달러로 직전 분기보다 약 29% 줄었고, 건수도 374건에서 265건으로 감소했다. 그러나 자금이 사라진 것은 아니다. 기업공개(IPO)와 빅파마의 인수합병 시장, 즉 이미 검증을 마친 기업 쪽으로 옮겨 갔을 뿐이다.
결국 가장 목마른 곳은 아직 증명할 데이터가 부족한 초기 플랫폼 기업, 그리고 수도권 투자자의 시야에서 멀리 떨어진 지역 바이오벤처다. 신약 개발은 10년이 넘게 걸리는 장거리 경주다. 출발선의 기업들이 버틸 자금을 구하지 못하면, 몇 년 뒤 기술이전과 상장으로 이어질 파이프라인 자체가 말라 버린다. 돈이 없는 것이 아니라 돈이 지나가는 길이 좁아진 것이고, 그 좁은 길은 대개 출발선에서 가장 멀리 있다.
그렇다면 무엇을 해야 하나. 첫째, 'AI 대 바이오'라는 대립 구도에서 벗어나야 한다. 바이오는 AI가 가장 큰 가치를 낼 수 있는 응용 분야다. AI는 신약 후보 발굴을 넘어 공정 개발과 생산 효율화로 영역을 넓히고 있다. AI 모델의 성능은 결국 학습 데이터의 질이 좌우한다. 정제된 실험 데이터와 이를 검증할 실험 역량을 가진 바이오 기업이야말로 AI 시대의 핵심 자산이다. 이 점을 투자자의 언어로 설명하는 것이 바이오 기업의 새로운 숙제다.
둘째, 회수 경로를 넓혀야 한다. 코스닥 상장만 바라보는 구조로는 투자 혹한기를 버티기 어렵다. 상장 문턱이 높아지고 공모 시장이 얼어붙을수록 초기 투자자는 지갑을 닫는다. 다행히 글로벌 인수합병과 기술이전 시장은 되살아나고 있다. 창업 초기부터 글로벌 파트너가 요구하는 수준의 데이터 패키지와 특허 전략을 설계하는 것, 그것이 곧 투자 유치 전략이다.
셋째, 정책자금은 시장의 쏠림을 따라가서는 안 된다. 민간 자본이 이미 몰리는 곳에 공공 자금까지 얹는 것은 효율이 낮다. 모태펀드와 지자체 펀드는 민간이 외면하는 전임상·초기 임상 단계에 들어가야 하고, 회수 기간도 일반 벤처펀드보다 길게 허용하는 '인내 자본'이어야 한다.
신약개발 바이오벤처 창업도시 대전에게 이 문제는 남의 일이 아니다. 대전 소재 바이오헬스 기업의 시가총액은 약 30조 원에 이르고 대전은 초기 창업기업이 가장 많은 곳 중 하나이다. 알테오젠, 리가켐바이오사이언스, 오름테라퓨틱 등 대덕의 연구 역량이 세계 시장에서 통한다는 사실은 이미 증명됐다. 남은 과제는 이 성공이 만든 자본과 경험이 지역 안에서 다시 돌게 하는 것이다. 성공한 창업자와 임직원이 후배 기업의 엔젤 투자자이자 멘토가 되고, 기술이전 수익이 지역 펀드로 돌아오는 선순환이 자리 잡아야 한다. 투자의 계절은 늘 바뀐다. 지금 AI로 몰린 돈도 언젠가는 실제 산업 성과를 낼 곳을 찾아 나설 것이다. 그때 그 돈을 받아낼 수 있는 것은 준비된 기업과 준비된 클러스터뿐이다. 소외를 탓하기보다 다음 계절을 준비할 때다. /정흥채 한국생명공학연구원 바이오파운드리사업단 책임연구원·사무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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