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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오디세이] 경력을 묻기 전에 기회를 주었는가?

김정태 배재대학교 글로벌융합학부 교수

김성현 기자

김성현 기자

  • 승인 2026-10-19 10:11

신문게재 2026-10-20 1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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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태 배재대학교 글로벌융합학부 교수
내가 영어를 가르쳤던 졸업생 철수(가명)는 지난 1년 동안 20여 곳에 입사지원서를 냈다. 공고에는 '신입'이라고 적혀 있었지만, 우대사항에는 '유관 업무 경력 2년 이상', '즉시 투입 가능자'라는 조건이 붙었다.

전공 공부와 자격증을 준비했지만 면접관은 "실제 고객을 상대해보았습니까?"라고 물었다. 배우면서 적응하겠다는 대답에는 곧바로 투입할 사람이 필요하다는 설명이 돌아왔다. 인턴 자리에서도 경력자와 경쟁했다. 철수는 "도대체 어디서 경험을 쌓으라는 것인지 모르겠다"며 한숨을 쉬었다.

청년들의 어려움은 통계에서도 드러난다. 국가데이터처의 '2026년 5월 경제활동인구조사 청년층 부가조사'에 따르면, 최종학교를 졸업·중퇴·수료한 뒤 미취업 상태인 15~29세 청년은 124만 3000명이었다. 그중 48.6%인 60만 5000명은 미취업 기간이 1년 이상이었다. 모두가 적극적인 구직자는 아니지만, 학교에서 일자리로 넘어가는 과정의 어려움을 보여준다.

첫 취업의 지연은 소득과 독립, 결혼, 가족계획에도 영향을 미친다. 1995년 내가 삼성전자에 입사하던 시절은 달랐다. 한 달 동안 신입사원 연수를 받았고, 이후 2년 동안은 고과를 면제받았다. 내게 그것은 당장의 성과보다 일을 배우는 시간을 보장하겠다는 뜻이었다.



회사는 신입사원을 시간을 들여 키울 사람으로 보았다. 삼성 창업주 이병철 회장의 '사업보국' 곁에는 '인재제일'이라는 철학이 있었다. 정주영 현대 창업주도 신입사원들과 씨름하고 직원들과 막걸리 잔을 나누었다고 한다. 대규모 공채로 들어온 청년들을 현장에서 가르치는 OJT, 곧 직장 내 훈련은 자연스러운 과정이었다.

변화의 큰 분기점은 1997년 외환위기였다. 한국노동연구원 분석을 인용한 당시 보도에 따르면, 조사 대상 주요 기업의 경력직 채용 비율은 1996년 26.2%에서 2001년 57.3%로 높아졌다. 이후 주요 그룹은 정기 공채를 수시 채용으로 전환했다. 수시 채용이 곧 신입 채용의 폐지는 아니다. 그러나 경력자를 선호하는 흐름 속에서 초보자를 누가 받아들이고 키울 것인지는 중요한 질문이다. 기업이 교육에 드는 시간과 비용을 줄이려는 사정은 이해할 수 있다. 하지만 모두가 다른 회사에서 길러낸 사람만 찾는다면 인재를 키우는 토대는 무너진다.

그렇다면 대학은 무엇을 해야 하는가? 산업 변화에 맞춰 교육을 개선하고 취업을 도와야 한다. 그러나 특정 기업의 경력사원을 만들어 졸업시킬 수는 없다. 대학은 고등사고, 전문지식과 판단력, 협력하는 태도, 새로운 기술을 배우는 힘을 기르는 곳이다. 경험은 주문해 받아오는 물건이 아니다. 고객의 요구와 비용, 납기의 압박 속에서 일을 맡고 실수를 바로잡는 시간이 쌓여야 한다. 그 배움을 완성하는 데에는 일터의 역할이 필요하다.



AI는 이 과제를 더 어렵게 만든다. 신입사원의 배움터였던 자료 정리와 기초 코딩을 AI가 수행하기 때문이다. 숙련자로 성장하던 사다리의 첫 칸이 사라질 수 있다. 처음부터 복잡한 판단을 잘하는 사람은 없다. 기업은 현장 과제와 멘토링으로 새로운 배움의 길을 설계해야 한다. 오늘 경험의 기회를 주지 않으면서 10년 뒤 숙련 인재가 부족하다고 탄식한다면 스스로 만든 결과일 것이다.

정부가 손을 놓고 있지는 않다. 고용노동부는 올해 청년 일경험 지원 규모를 4만 5000명으로 발표했다. 미래내일 일경험은 기업 인턴십과 프로젝트 수행을 지원한다. 일·학습병행은 먼저 채용한 청년에게 현장훈련과 이론교육을 제공하도록 돕고, 청년일자리도약장려금은 채용과 고용 유지의 부담을 덜어준다. 대상과 집계 기준이 달라 이 규모를 앞의 미취업자 수와 직접 비교할 수는 없지만 정부 지원이 너무도 부족하다. 더 중요한 것은 청년들에게 충분한 기회가 제공되는지, 그 경험이 다음 일자리로 이어지느냐이다.

이를 위해 네 가지를 제안한다. 첫째, 정부는 청년 일경험 지원을 대폭 늘려야 한다. 현재의 미봉책으로는 청년들의 미래를 준비할 수 없다. 둘째, 경험의 질을 점검해야 한다. 수료증 숫자를 넘어 실제 과제 수행과 지도자의 피드백, 후속 취업과 고용 유지를 평가해야 한다. 셋째, 가르치는 비용을 나눠야 한다. 선배 직원의 지도 시간과 훈련 비용을 지원하고, 지역 대학·기업·공공기관이 교육과 실무 과제를 함께 설계해야 한다. 넷째, 기업의 책임을 분명히 해야 한다. 청년을 값싼 인턴으로 반복 교체하는 운영은 막고, 제대로 가르쳐 고용을 유지하는 기업에는 지원을 강화하고 신입사원을 채용하여 키우는 문화를 부활시켜야 한다.

신입사원에게 경력을 묻기 전에 우리부터 답해야 한다. "이 청년에게 처음의 경험을 쌓을 기회를 주었는가." 사람을 키우지 않는 경제에는 오래 지속될 미래도 없다. /김정태 배재대학교 글로벌융합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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